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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부음은 무엇인가?

 기름부음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의 말, 생각, 이해, 손, 행동, 기도에서 흘러나오는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육체를 통해 그분의 능력을 나타내시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하나님 나라의 태도는 기쁨이다

하나님 나라의 태도는 기쁨이다 (시 16:11, 새번역) 주님께서 몸소 생명의 길을 나에게 보여 주시니, 주님을 모시고 사는 삶에 기쁨이 넘칩니다. 주님께서 내 오른쪽에 계시니, 이 큰 즐거움이 영원토록 이어질 것입니다. (벧전 1:8, 새번역)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본 일이 없으면서도 사랑하며, 지금 그를 보지 못하면서도 믿으며,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즐거움과 영광을 누리면서 기뻐하고 있습니다. 1 세기 교회는 극심한 박해를 겪었다. 신약의 성도가 되다는 것은 순교를 예상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당대에 뻗어갔다. 그들은 예수 이름을 위해 고난받는 것을 모든 기쁨으로 여겼다. 행복과 기쁨의 차이 세상은 행복으로 좌우되지만, 교회는 기쁨으로 좌우된다. 행복은 사건과 상황의 결과이다: 집, 직업, 질병, 고난 등등. 이 모두가 우리가 행복한지 슬픈지를 결정한다. 그러나 기쁨은 오직 성령으로부터 온다. 세상은 그것을 줄 수 없고, 세상은 그것을 빼앗을 수 없다. 기쁨은 슬픔의 부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이다. 부정적이고, 불평하고, 징징대는 리더들은 결코 믿음이나 영적 성장을 격려하지 않는다. 리더들이 자신이 이끄는 사람들이 하나님은 무엇이든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믿기를 원한다면, 자신들의 태도를 통해 그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리더들이 그렇게 행동하고, 그렇게 설교하고, 그렇게 예배하고, 그렇게 기도하고, 그렇게 주고, 그렇게 살아야 한다. 기쁨은 우리에게 힘을 준다 - “... 주님을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다.” (느헤미야 8:10) 하나님의 성도는 고난을 당해도 여전히 기뻐하고, 몸이 아프더라도 여전히 기뻐하고, 박해를 받아도 여전히 기뻐한다. 리더는 가장 극심한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기쁨의 태도를 나타내야 한다. “...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마태복음 5:10-12)

리더십

리더십 정의 이끌다: 미리 가서 길을 보여주기 위해, 영향력으로 인도하기 위해, 경로 역할을 하기 위해; 본보기가 되어 통로나 도관이 되기 위해, 행동이나 의견을 인도하기 위해; 유도하다, 행실에 영감을 주기 위해. 영향력 :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힘.” 간단히 말해서, 성경적 관점에서 정의된 리더십은, 본보기에 의한 영향력이다. 하나님은 힘으로 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영향력으로 하신다. 하나님은 강압적인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이끄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성령은 우리가 올바르게 살고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도우시는 하나님의 영향력이다. 사람들이 리더의 본보기에 영향을 받을 때에만 비로소 참된 리더십이 발휘된다.

목자

목자가 되는 것 다윗은 시편 23:1 에서,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 없어라.”고 하였다. 목자들은 세 가지 주요 책임이 있다: 먹인다, 인도한다, 보호한다. (마 9:35-38, 새번역) 예수께서는 모든 도시와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유대 사람의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며,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며, 온갖 질병과 온갖 아픔을 고쳐 주셨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 그들은 마치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에 지쳐서 기운이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다. 그러므로 너희는 추수하는 주인에게 일꾼들을 그의 추수밭으로 보내시라고 청하여라.” 그들은 목자 없는 양과 같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추수할 일꾼을 더 많이 보내달라고 주님께 기도하라고 부탁하셨다. 양들은 목자가 필요하다.

올바른 기초

(눅 6:47-49, 새번역) “내게 와서 내 말을 듣고 그대로 행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과 같은지를 너희에게 보여 주겠다. 그는 땅을 깊이 파고, 반석 위에다 기초를 놓고 집을 짓는 사람과 같다. 홍수가 나서 물살이 그 집에 들이쳐도, 그 집은 흔들리지도 않는다. 잘 지은 집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말을 듣고서도 그대로 행하지 않는 사람은, 기초 없이 맨 흙 위에다가 집을 지은 사람과 같다. 물살이 그 집에 들이치니, 그 집은 곧 무너져 버렸고, 그 집의 무너짐이 엄청났다.” 기초의 중요성 무너지지 않고 그대로 서 있는 집과 무너진 집의 유일한 차이점은 기초였다! 부흥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리더의 올바른 기초 위에서 시작한다. 부흥은 리더가 이끄는 사람들에게 집단적으로 임하기 전에, 리더 개인의 마음과 삶에서부터 시작한다. 하나님이 부르시고, 기름 부으신 리더들은 하나님이 교회를 부흥으로 인도하기 위해 사용하시는 수단이다. 성경 전반에 걸쳐, 사람들이 실패했을 때, 그것은 리더 때문이었다. 나라, 도시, 교회 또는 가족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그것을 이끄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 예수님은 “눈 먼 사람이 눈 먼 사람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진다”고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15:14) 리더십은 무엇이든지 성공하거나 실패하는 것의 기초이다. 모퉁잇돌 (엡 2:19-22, 새번역) “그러므로 이제부터 여러분은 외국 사람이나 나그네가 아니요, 성도들과 함께 시민이며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이 놓은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며, 그리스도 예수가 그 모퉁잇돌이 되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건물 전체가 서로 연결되어서, 주님 안에서 자라서 성전이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도 함께 세워져서 하나님이 성령으로 거하실 처소가 됩니다.” 모퉁잇돌은 기초의 나머지 부분이 세워지는 돌이다. 모든 것은 모퉁잇돌로부터 수평과 수직으로 세워진다. 건물이 높이 올라갈 수 있는 것은 기초의 강도와 크기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 모든 것이 예수님으로부터 세워지고

거룩함의 반대는 평범함이다

 그가 이렇게 성전의 사방을 재니, 사방으로 담이 있어서, 길이가 각각 오백 자였다. 그 담은 거룩한 곳과 속된 곳을 갈라 놓았다. (겔42:20, 새번역) ------ 에스겔의 환상 속 성전은 사방의 담으로 거룩한 곳과 속된 곳을 구별/분리한다  하나님의 임재(지금 여기 계시다)가 있는 성전은 거룩하다. 일상의 하루하루가 있는 나머지 땅은 모두 속되다. 악한 것의 반대가 거룩한 것이 아니다  일상 평범함의 반대가 거룩함이다. 에스겔의 환상 속에서 하나님은 장소로 가르치신다. 그리고 이제는 그 본질인 임재로 구별하신다. 에클레시아(교회)는 각 가정에서 공적인 곳으로 부름받은 사람들이다. 사적인 평범함에서 기도하는(예배하는) 공적인 것으로 부름 받은 사람들. 두세 사람의 모임이라도 그 속에 예수를 모신 사람들이 오늘의 교회이다. 여전히 장소가 필요하지만, 이제는 장소의 문제가 아니다. 그 속에 무엇을 모셨느냐의 문제이다. 일상을 하나님 나라로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 그저 땅의 것만을 위하는 평범한 삶으로는 주를 볼 수 없다. 그러므로 예수는 우리에게서 비범함, 탁월함, 남다름을 찾으신다. 속된 것과 구별된 거룩한 것을 찾으신다. 진리로 그들을 거룩하게 하여 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요17:17, 새번역) 이제 여러분은 죄에서 해방을 받고, 하나님의 종이 되어서, 거룩함에 이르는 삶의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그 마지막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롬6:22, 새번역) 형제자매 여러분,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힘입어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드릴 합당한 예배입니다. (롬12:1, 새번역) 하나님은 세상 창조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시고 사랑해 주셔서,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엡1:4, 새번역)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참 의로움과 참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십시오. (엡4:24, 새번역) 티나 주름이나 또

열매 맺지 못 하는 나무 (열매 없는 나무)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아, 포도나무 곧 삼림 가운데 있는 그 덩굴이, 다른 모든 나무에 비해 나은 점이 있느냐? 거기에서 무슨 물건을 만들 목재가 나오느냐? 그것으로 나무 못을 만들어서 무슨 물건을 거기에다 걸어 둘 수 있느냐? 그것은 땔감으로 불 속에나 던져 버릴 것이다. 그 양쪽 끝은 타 없어졌고, 그 가운데 부분도 그을었는데, 그것이 물건을 만드는 데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그 포도나무가 온전할 때에도 무슨 물건을 만드는 데 쓰일 수 없었거늘, 하물며 그것이 불에 타고 그을었으니, 무슨 쓸모가 더 있겠느냐? 그러므로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삼림 가운데 있는 포도나무를 내가 불 속에 땔감으로 던져 넣듯이, 예루살렘의 주민을 불 속에 던지겠다. 내가 그들을 대적하겠다. 비록 그들이 불 속에서 피하여 나온다 해도, 불이 다시 그들을 삼킬 것이다. 내가 그들을 대적하면, 그 때에야 비로소 너희는, 내가 주인 줄 알 것이다. 그들이 크게 배신하였기 때문에, 내가 그 땅을 황무지가 되게 하겠다.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겔15:1-7, 새번역) 목재로는 쓸모 없는 포도나무. 포도나무는 포도(목적)를 맺을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 열매 없는 포도나무는 쓸모 없다. 땔감만 될 뿐이다. 이튿날 그들이 베다니를 떠나갈 때에, 예수께서는 시장하셨다. 멀리서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시 그 나무에 열매가 있을까 하여 가까이 가서 보셨는데, 잎사귀 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무화과의 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그 나무에게 말씀하셨다. "이제부터 영원히, 네게서 열매를 따먹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제자들이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막11:12-14, 새번역) 무화과의 철이 아닌데 무화과를 찾으시는 예수님.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알면 이해할 수 있다. 배가 고파서 무화과 나무에 화풀이를 하시는 것인가? 결코 아니다. 예수님의 성품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예레미아서에서 끊임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