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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나라는 어디에 있는가

 하나님의 나라는 어디에 있는가? 오늘날 교회로 번역되는 신약성경의 ‘에클레시아’는 당시 ‘소집된 사람들의 모임’을 뜻했다. 사람들이 소집되려면, 장소의 이동이 필수적이다. 즉, 곳곳에서 특정한 한 곳으로 소집되어 모여야 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에클레시아의 주인이 바로 당신이라고 말씀하셨다(마태복음 16:18). 우리를 소집하는 주인은, 우리를 어느 곳에서 어느 곳으로 모으시는가? 그것은 ‘흑암(음부)의 권세’ 혹은 ‘세상 나라’에서 ‘하나님 나라’로의 소집이다(골로새서 1:13). 모두가 알다시피, 사도행전에서 교회로 언급될 때는 특정한 장소에 모이는 사람들을 가리켰지 특정 건물은 아니었다. 사도행전에서 보게 되는 교회의 성장은 ‘주께서(주인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는 것이었다(사도행전 2:47). 그렇다면, 여기서 더해진 사람은 무엇을 했는가? 혹은 하나님의 나라에 어떻게 참여했는가? 그리고 그 하나님의 나라는 어디에 있었는가? 사람이 소집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는 경청하고 그 소집에 그대로 순종해야 한다(요한복음 5:25).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으니(요한복음 3:5), 이를 경청하고 그 소집에 그대로 순종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날마다 더해지는 그 사람들은 침례를 받고(사도행전 2:41), 그 아들 안에서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다(골로새서 1:14). 그리고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썼다(사도행전 2:42). 그들은 어떤 기도를 했을까? 사도들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모든 것을 지킬 수 있도록 말씀과 성령의 능력을 구하며 제자 되기를 기도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마태복음 28:19, 20). 침례 요한도 예수님도 그 사역의 시작은 흑암을 향하여 (혹은 세상 나라를 향하여)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라고 선포하시는 것이었다(마태복음 3:1-2, 4:16-17). 세상은 “회개하라!”는 말씀을 ...

열매 맺지 못 하는 나무 (열매 없는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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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아, 포도나무 곧 삼림 가운데 있는 그 덩굴이, 다른 모든 나무에 비해 나은 점이 있느냐? 거기에서 무슨 물건을 만들 목재가 나오느냐? 그것으로 나무 못을 만들어서 무슨 물건을 거기에다 걸어 둘 수 있느냐? 그것은 땔감으로 불 속에나 던져 버릴 것이다. 그 양쪽 끝은 타 없어졌고, 그 가운데 부분도 그을었는데, 그것이 물건을 만드는 데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그 포도나무가 온전할 때에도 무슨 물건을 만드는 데 쓰일 수 없었거늘, 하물며 그것이 불에 타고 그을었으니, 무슨 쓸모가 더 있겠느냐? 그러므로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삼림 가운데 있는 포도나무를 내가 불 속에 땔감으로 던져 넣듯이, 예루살렘의 주민을 불 속에 던지겠다. 내가 그들을 대적하겠다. 비록 그들이 불 속에서 피하여 나온다 해도, 불이 다시 그들을 삼킬 것이다. 내가 그들을 대적하면, 그 때에야 비로소 너희는, 내가 주인 줄 알 것이다. 그들이 크게 배신하였기 때문에, 내가 그 땅을 황무지가 되게 하겠다.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겔15:1-7, 새번역) 목재로는 쓸모 없는 포도나무. 포도나무는 포도(목적)를 맺을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 열매 없는 포도나무는 쓸모 없다. 땔감만 될 뿐이다. 이튿날 그들이 베다니를 떠나갈 때에, 예수께서는 시장하셨다. 멀리서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시 그 나무에 열매가 있을까 하여 가까이 가서 보셨는데, 잎사귀 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무화과의 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그 나무에게 말씀하셨다. "이제부터 영원히, 네게서 열매를 따먹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제자들이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막11:12-14, 새번역) 무화과의 철이 아닌데 무화과를 찾으시는 예수님.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알면 이해할 수 있다. 배가 고파서 무화과 나무에 화풀이를 하시는 것인가? 결코 아니다. 예수님의 성품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예레미아서에서 끊임없이...

성경적인 거듭남 - 제1장 정직한 질문

 제1장 정직한 질문 “형제들이여,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행2:37, 새번역) “두 분 사도님,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행16:30, 새번역) 모든 사람은 죄인이며 구원이 필요하다. “내가 어떻게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기독교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베푸셨다고 선언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푸신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우리는 성경이 이 간단하고도 중대한 질문에 해답을 주고 있음을 믿는다.  구원의 보편적 필요성 성경은 모든 인류가 죄인임을 강력히 선언한다. 로마서는 유대인이나 헬라인 둘 다 하나님 보시기에 범죄하였음을 확언하고 있다. 모세의 율법이 없는 자들은 양심에 의해 심판을 받고, 모세의 율법을 가진 자들은 율법으로 심판을 받는다(롬 2:12-16). 모든 인류는 죄 아래 있다(롬 3:9).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 3:10; 시 14:1-3). 모든 세계가 하나님 앞에 죄가 있다(롬 3:19).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이 때문에 모든 인류는 사망의 심판 아래 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롬 6:23).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온다 각 사람은 구원이 필요하나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선행을 많이 하고 율법을 지키는 것이 사람을 구원하지 못한다. 에베소서 2:8-9. 이것은 구원이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신 선물이라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장사, 부활이 이 값없이 주신 구원의 선물을 얻을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리고 오직 구원을 얻는 길은 그리스도와 그의 온전한 희생을 믿는 것이다.  물론, 구원을 얻는 믿음은 복음에 순종하고 그 복음을 우리의 삶에 적용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우리는 구원이 오직 믿음을 통해서 올 수 있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