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인 거듭남 - 제1장 정직한 질문

 제1장 정직한 질문


“형제들이여,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행2:37, 새번역)

“두 분 사도님,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행16:30, 새번역)


모든 사람은 죄인이며 구원이 필요하다. “내가 어떻게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기독교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베푸셨다고 선언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푸신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우리는 성경이 이 간단하고도 중대한 질문에 해답을 주고 있음을 믿는다. 


구원의 보편적 필요성

성경은 모든 인류가 죄인임을 강력히 선언한다. 로마서는 유대인이나 헬라인 둘 다 하나님 보시기에 범죄하였음을 확언하고 있다. 모세의 율법이 없는 자들은 양심에 의해 심판을 받고, 모세의 율법을 가진 자들은 율법으로 심판을 받는다(롬 2:12-16). 모든 인류는 죄 아래 있다(롬 3:9).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 3:10; 시 14:1-3). 모든 세계가 하나님 앞에 죄가 있다(롬 3:19).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이 때문에 모든 인류는 사망의 심판 아래 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롬 6:23).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온다

각 사람은 구원이 필요하나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선행을 많이 하고 율법을 지키는 것이 사람을 구원하지 못한다. 에베소서 2:8-9. 이것은 구원이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신 선물이라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장사, 부활이 이 값없이 주신 구원의 선물을 얻을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리고 오직 구원을 얻는 길은 그리스도와 그의 온전한 희생을 믿는 것이다. 

물론, 구원을 얻는 믿음은 복음에 순종하고 그 복음을 우리의 삶에 적용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우리는 구원이 오직 믿음을 통해서 올 수 있으며 믿음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함을 강조해야 한다(요 14:6). 우리는 그분이 우리의 구주로서 분명히 육신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요 8:24).

왜 그리스도에 대한 신뢰가 절대적으로 필요한가? 

모든 사람은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거룩함은 그분이 스스로를 죄인에게서 구별되시기를 요구했고 사람에 대하여 죄값으로 사망을 요구하게 되었다. 피흘림이 없이는 죄사함이나 형벌을 면할 수 없고(히 9:22) 거룩하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킬 수 없다. 엡 2:13-17; 골 1:19-22. 인간은 하나님의 영적, 지적, 도덕적인 형상을 따라 창조되어 짐승보다 훨씬 위대하기 때문에 짐승의 죽음으로는 인간의 죄를 사하기가 충분하지 못하다(히 10:4). 그리고 모든 사람은 자신의 죄로 인하여 영원한 죽음을 당하는 것이 마땅하기에 보통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하여 대속적 희생물이 될 수 없다. 

하나님은 합당한 대속물을 주시기 위하여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육신으로 자신을 나타내셨다. 그리스도만이 죄가 없으신 분이며, 죄가 없으므로 죽을 필요가 없으신, 완전한 대속물이 될 수 있는 유일한 분이셨다. 그러므로 그분의 죽음이 화해, 혹은 속죄를 이루셨는데 그 죽음은 하나님이 자신의 거룩함과 의를 거스르지 않고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 수단이 된 것이다(롬 3:23-26).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그냥 용서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죄값을 죄가 없으신 그리스도에게 지우셨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복음을 우리의 삶에 적용할 때 이 대속물은 우리에게 효력을 나타내게 된다. 

이러므로 (1)인간의 죄악과 (2)하나님의 거룩함 (3)죄의 형벌로써 죽음을 요구하는 하나님의 법으로 인해 그리스도의 속죄를 위한 대속적 죽음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 밖에서는 구원이 있을 수 없다는 이유인 것이다. 


구원이란 무엇인가?

구원은 ‘구출, 보호, 혹은 해방’과 같은 것들을 가리킨다. ‘죄의 능력과 영향으로부터’ 구출되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의 구원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적인 측면들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구원받았다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 것은 우리가 과거의 시점에서 죄를 용서받고 또한 죄의 지배로부터 자유를 얻어 하나님을 위해 살 수 있는 능력을 받았음을 의미한다(딛 3:5).

우리는 또한 구원받는다라고 말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우리가 현재에 죄의 용서와 하나님을 위해 살 수 있는 능력과 죄의 권세와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를 누리며 기뻐하기 때문이다(엡 2:5).

그리스도의 부활과 생명은 현재의 구원을 이룬다. 그의 죽음이 죄로부터 과거적 구원을 획득하게 하신 것 뿐 아니라 그의 생명이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그의 성령을 통하여 죄에 대한 현재적 승리를 공급해 준다(롬 5:10; 요일 1:4). 

그러나 또 다른 의미에서 구원은 여전히 미래적이다. 우리는 아직 모든 죄의 저주로부터 최종적으로 완전히 건짐을 받지는 못했다. 우리는 아직도 이 죄악되고 불완전한 세상에서 살고 있고, 죽을 육체를 가지고 있으며, 우리 안에 죄성을 가지고 있고, 유혹을 받고, 죄를 지을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구원은 오직 우리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같이 영광을 입음으로 죽지 아니할 몸을 얻을 때 완성될 것이다(롬 8:23; 빌 3:20-21).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재림하실 때 그 일이 있게 될 것이다(살전 4:14-17; 요일 3:2).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구원 사이의 연관성

미래의 구원은 오직 현재의 삶 속에서 과거와 현재의 구원을 경험해 온 사람들에게 주어지게 될 것이다. 현재 구원을 받은 사람들만이 미래에 이루어질 온전한 구원의 보증을 갖는다. 그러나 단지 거듭났다는 과거의 경험이 자동적으로 미래의 구원을 보증해 주지는 않는다. 우리는 끝까지 우리의 구원을 지킬 책임이 있다. 그러므로 과거와 미래의 구원 사이의 연결선은 현재의 구원을 지속시키는 것이다.

예수님은 절대적으로 그분 안에 거하고 그분의 계명들을 지켜야 할 필요성을 가르치셨다(요 15:1-14). 구원은 모든 것을 믿음으로 행하며 계속해서 믿음으로 사는 자에게 올 것이다.

바울은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 2:12)고 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우리의 계획으로 우리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거나 우리 자신의 구원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의식적으로 우리가 우리의 구원 안에 거하고 지켜야 함을 의미한다. 우리는 경외심을 가지고 구원을 보아야 하며 우리가 구원을 소중히 하지 않으면 그것을 잃을 수도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는 아직 구원의 모든 영원한 은혜들을 받지 못하였으므로 미래의 구원은 아직 희망사항이다. 그러나 미래의 구원의 소망은 단순한 바람 이상의 것인데, 그 이유는 우리가 계속해서 복음 안에서 행할 때 구원의 약속과 보증을 갖기 때문이다. 영원한 구원을 얻는 한가지 방법은 현재의 삶 속에서 죄로부터 현재의 구원을 찾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이와 같은 질문을 가져다 준다. “우리는 현재의 삶 가운데서 어떻게 죄로부터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니고데모에게 대답하신 주님의 말씀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곧 나타나게 될 새 시대라는 것과, 그 나라에 들어가기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거듭나야 하리라는 것을, 즉 물과 성령으로 나야 한다는 것을 지적하고 계셨다.


하나님의 나라

이 단어 자체가 우주 안에서의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를 나타낸다. 하나님의 나라가 구원과 마찬가지로 현재와 미래의 두 가지 면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현재의 하나님 나라는 사람의 마음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통치이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왔다고 증거하셨다(막 1:14-15).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성령이 믿는 자의 마음 안에 거하시게 될 때 존재하게 된다. 이러므로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고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 14:17)고 말했다. 하나님의 나라의 현재적인 면은 성령을 통하여 일시적으로 이 세상에 임한 그의 영원한 나라의 부요함으로 이루어져 있다.(엡 1:13-14; 히 6:4-5).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그의 통치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을 제거하시고 만유 안에서 그의 왕권을 나타내실 심판에 대한 미래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 그의 나라는 그리스도의 천년 통치로 이 땅에 나타날 것이다(계 20:4-6). 모든 죄인의 심판과 죄가 없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에 의해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히 서게 될 것이다.(계 20:4-6). 모든 죄가 심판을 받고 제거될 때 하나님의 나라는 완전하게 나타나게 될 것이다(계 11:15). 

요한복음 3장은 사람이 일시적이며 현재 나타난 나라 혹은 영원히 나타날 나라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기까지는 아무도 하나님의 영적인 통치권 안에 들어갈 수 없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기 전까지는 아무도 진정한 의와 평강과 희락을 가질 수 없다. 오늘날에도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않는다면 아무도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 -새 하늘과 새 땅- 에 들어갈 수 없다.

현재의 구원은 죄의 지배와 형벌으로부터의 자유로 이루어지며, 이것은 단순히 하나님 나라의 현재적인 면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그의 통치에 복종하고 그의 의를 얻는 것).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라는 질문은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라는 질문과 동일하다. 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이것이다. “너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느니라.”


오순절날 베드로의 대답

사도행전 2장은 유대인의 명절인 오순절 날에 약속하신 성령침례가 임한 것을 기록하고 있다. 

베드로는 다른 열한 사도와 같이 서서 방금 무슨 일이 벌어졌었는지를 설명하기 시작했고 예수에 대해 증거하여 나아갔다. 베드로는 그들이 십자가에 못박은 나사렛 예수는 주와 그리스도(메시아)라고 군중에게 선포했다. 그들은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행 2:37)라고 물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질문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해야 우리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해야 예수님을 주와 메시아로 영접할 수 있습니까?”

구원의 본질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의 용서함을 받는 것이기에 그들의 질문은 간단히 말해 “우리가 구원을 받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합니까?” 라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해 모든 사도들이 지지와 함께 베드로가 해 준 대답은 이렇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 2:38). 

이것은 모든 사도들의 완전한 보증을 갖고 있던 답이다. 이것은 신약 교회 최초의 설교 -성령 부어주심 후에 했던 최초의 설교- 의 절정이다. 이 구절 안에는 인간과 하나님에 대한 기독교 교리가 요약되어 있다.


빌립보 간수에게 한 바울의 대답

간수는 바울과 실라를 데리고 가서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라고 질문했다. 바울과 실라는 간수에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지이 구원을 얻으리라”(행 16:30-31)고 대답했다.

아마 그 간수는 이방인이었을 터이고 하나님에 대하여 잘 몰랐을 것이다. 오순절날의 유대인들과는 달리 그는 아마도 회개, 침례, 성령 등과 같은 용어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더우기 그 때는 긴 설교나 상세한 설명을 할 시간이 없는 긴박한 상황이었다.

이에 간수는 그들을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가서 그의 온 가족에게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그들은 상세히 주의 말씀을 증거했다. 그들이 전한 메시지로 간수는 바로 그 밤 그 시에 침례를 받고 참으로 기쁜 체험을 얻게 되었다. 그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말씀을 믿을 때 이 모든 일들이 발생했다. 

이 구절에서 ‘믿는다’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단지 정신적인 이해와 동의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신뢰와 지지를 주장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과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포함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구절이 실제로 의미하는 것은 ‘구세주로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절대적인 인격적 신뢰를 갖는 것’이다. TAB(상술성경)은 사도행전 16:31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였다. “그리고 그들이 대답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신뢰하라. 즉, 너 자신을 그분에게 바치라. 네 자신의 보호로부터 너를 끌어내고 네 자신을 그분의 보호하심에 맡기라. 그리하면 너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너와 네 가족에게도 해당된다.”


세 답변의 비교

예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실 때 구원에 대한 직접적인 질문에 대답하고 계시지는 않았다. 

대신에 그는 곧 존재하게 될 미래의 신약 교회를 위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설명하고 있었다.

오순절날의 상황은 베드로가 구원에 관한 직접적인 질문에 대해 직접적인 답을 준 것에서 다른 점이 있다.

사도행전 16장에서는 바울과 실라가 하나님에 관하여 거의 아는 바가 없는 한 남자를 만났는데 그는 금방이라도 자살할 위험에 놓여 있었다. 그는 갑작스런 지진의 공포에서 정신을 차려 그 초자연적 현상 앞에 두려워 떨었다. 바울과 실라는 이해하기 쉽고 그를 안심시킬 수 있는 간단하고 평이한 방법으로 그의 질문에 대답해야 했다. 따라서 그들은 우선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얻는 것임을 그 간수에게 알게 했다. 그 후 간수와 그의 가족들에게 복음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우리가 이 세 가지 내용들로부터 내릴 수 있는 결론은, 구원은 오직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게 된다는 것이다. 회개와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하는 물침례(물로 거듭남)와 성령침례(성령으로 거듭남)로 이끌어 줄 것이다.

우리의 구원에는 (1)최소한의 요구, 즉 거듭남이 있다는 것과 (2)구원은 믿음과 거룩함의 지속적인 삶을 통하여 점진적으로 채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과정이라는 - 모순된 것이 아닌 보충적인 관점들로부터 구원을 이해할 수 있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우리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위에 있다. 우리가 그를 믿는다면 죄를 회개하고 그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성령을 받게 될 것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우리는 죄로부터 현재적 구원을, 그리고 영원한 죄의 결과로부터 미래적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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