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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집 짓기

하나님의 집 짓기 살아 있는 돌과 같은 존재로서 여러분도 집 짓는 데 사용되어 신령한 집이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십니다. (벧전2:5, 새번역) 교회는 물리적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들의 모임이다. 거듭남은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사람들은 고립된 상태가 아니라 교회의 지체로서 구원 받는다. 각각의 신자들은 살아 있는 돌이며 교회는 그 돌들로 지어진 성전이다. 돌은 강하고 견고하며 안정적이고 내구성이 있어 좋은 건축 자재이다. 마찬가지로 신자들은 믿음 안에 굳건히 자리잡아 하나님의 말씀에서 힘과 형상을 얻어야 한다. 물리적인 돌은 생명이 없고 기력이 없지만 우리는 “살아있는 돌”이다. 우리는 생명력과 감수성, 영적 생명을 가져야 하는데 하나님의 성령으로부터 오신다. 돌은 개별적으로 존재하지만 그 자체로는 거의 유용하지 않다. 그들의 중요성은 대부분 결합에 있다. 돌무더기는 기능이 없다. 들판에 흩어져 있는 돌멩이는 방해가 된다. 그러나 돌을 벽에 결합하면 건물의 중요한 구성 요소가 된다. 그들의 가치는 하나됨에서 나온다. 건물의 각 부분은 그 자체로 쓸모없고, 완성되지 못한 건물도 마찬가지이다. 단독 기초나 단일 벽은 기능이 없다. 기초가 없는 건물은 오래 버틸 수 없다. 벽이나 지붕이 없는 건물은 적절한 피난처를 제공할 수 없다. 건물에는 구조가 필요하고 모든 구성 요소가 함께 결합되어 완전한 구조를 형성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교회가 하나님의 집이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교회 행정이 있어야 하고, 모든 성도들이 그 구조와 조화롭게 일해야 한다. 구조는 행정 및 영적 리더십을 모두 포함한다. 물론 이러한 역할은 종종 겹치고 일치할 수 있다. 교회라는 용어는 신자들의 전체 몸(마 16:18)과 지역 모임들을 모두 가리킨다. 하나님은 바울에게 영감을 주셔서,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에 이 편지를 씁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여러분...

성경적인 거듭남 - 제7장 침례식문 :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제7장 침례식문 :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행 2:38)  기독교에서 침례는 '예수 이름으로' 시행되어야 한다. 이것은 물침례를 받을 때 예수 이름을 구두적으로 부르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의 기록 성경 어느 곳에서도 실제 침례를 베풀 때 어떤 다른 이름이나 다른 식문을 언급한 곳이 없지만 사도행전은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준 5가지의 예들을 보여 주고 있다.  (1)베드로는 신약 교회에 있어서 첫 설교를 하고난 후 다른 사도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사람들에게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받도록 명했다(행 2:14; 37-38). 그의 메시지를 받아들인 사람들은 이같은 명령을 따라 침례를 받았다. 즉,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받은 것이다(행 2:41). (2)사마리아 사람들도 빌립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하는 말씀을 믿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다(행 8:12, 16). (3)이방인 고넬료와 그의 가족들이 성령을 받았을 때 베드로는 그들에게 '주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라'고 명했다(행 10:48).  (4)바울이 에베소에서 침례 요한의 어떤 제자들을 만나 무슨 침례를 받았는지 질문했다. 바울은 그들이 단지요한의 침례만 받은 것을 알고서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다시 침례를 주었다(행 22:16). (5)바울 자신도 예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는데 왜냐하면 아나니아가 그에게 말하기를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고 했기 때문이다(행 22:16). (6)사도행전에 기록된 이 다섯 가지의 이야기 뿐만 아니라 고린도전서에서도 고린도에 있는 이방인 신자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다고 기록한다. 고린도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문자적으로는 그리스도 '안으로')침례를 받았기에 그들은 그리스도께 ...

교제와 연합

교제와 연합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엡 5:11)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고후 6:14) 세상과의 교제 세상으로부터의 구분은 진정한 거룩함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1장, 4장 참고). 앞의 여러 장들에서 우리는, 거룩함은 우리를 더럽힐 수 있는 세상의 것들을 피할 것을 요구한다는 것을 보았다. 지금부터 우리는 거룩함을 추구하기 위해서 일단의 사람들을 피해야 하는 경우를 살펴보고자 한다. 성경은 우리가 어떤 사람들과 사귀느냐 하는 문제를 중요시하고 있다. 잠언 22:24-25절은 "노를 품는 자와 사귀지 말며 울분한 자와 동행하지 말지니 그 행위를 본받아서 네 영혼을 올무에 빠칠까 두려움이니라" 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성경구절들은, 누구든지 원하는 사람과 교제하면서도 거룩함을 지켜갈 수 있다고 하는 이들의 주장을 반박한다. 명백히, 당신이 교제하는 사람의 태도와 영혼은 당신에게 영향을 끼치게 된다. 바울은 강한 어조로 말했다.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고전 15:33). 다른 말로, 악한 친구들은 도덕성을 떨어지게 만든다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악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지속하기를 계속 고집한다면, 당신이 악한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것은 성경이 보장하는 바이다. 이것이 우리가 모든 죄인들을 피해야 한다는 이야기인가? 아니다. 성경은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없는지에 관한 두 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예수께서 세리와 죄인과 함께 식사를 하신다고 비난 받으셨을 때에, 그는 그들을 구원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설명하셨다(눅 5:30-32). 마찬가지로, 우리가 영혼을 얻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그들과 어느 정도는 관련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영혼을 얻는 가장 좋은 방법은 친구가 되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죄인들과 상대하고 대화하는 것은 생활의 일부로서...

오순절교와 연합 운동

오순절교와 연합 운동 ---L.A. BERNARD--- 과거 수세기 동안 신학자들은 “교회 연합” 이라는 말을 해왔다. 그러나 최근에 이르기 전까지는 이“교회 연합운동”이라는 말을 별로 사용치 않았다. 그런데 오늘날은 기독교인의 눈길이 이 말에 집중되고 있다. 우리 이 문제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진정한 연합의 정신은 그리스도께서 기도하실 때 “아버지가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한17:21)라 하신 말씀에 나타났습니다. 이 기도는 온 세계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게 하기 위한 기도였습니다. 이는 또한 그리스도의 교회를 향한 이상이었습니다. 세계는 우리 주께서 사용하신 그 말씀을 사용하면서“우리들이 다 하나가 됩시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외치는 소리의 밑바닥을 볼 것 같으면 아주 다른 면을 보게됩니다. “당신의 진리로 그들을 거룩하게 하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이니다”(요한17:17).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구별되어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기 위하여 말씀으로 정결하여졌습니다. 그러므로 하나가 되는 유일한 길은 한 토대와 초석이 되는 말씀으로 말미암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와는 덩 반대로 오늘날의 하나가 되고자 하는 기초는 교리를 잊어버리자는 것입니다. 세계 교회의 강한 통제하에 교회를 합하는 것입니다. 이는 곧 각 교파들이 이 세계 교회에게 지배권과 책임을 주는 것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한 “세계교회”입니다. 이 계획에는 신학적이나 교리적 차이가 언급되지 않을 것입니다. 교리가 중요하지 않은 것일까요? 사도들에게는 분명히 중요했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이 무엇을 얻었습니까? 오순절 교인들은 이 연합문제에 대하여 선포(증거)할 과업을 받았습니다. 성령과 교리의 면에서 본 교회는 오래전에 이 연합문제에 대하여 선포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를 보다 분명히 하고 재확인하려는 의도에서 다시 여기서 언급하고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