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베푸신 구원


하나님이 베푸신 구원
 
 
제1과 속죄
 
A. 속죄(ATONEMENT)
“피 흘림이 없은즉 죄사함이 없느니라” (히브리서 9:22)
구원의 모든 교리는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성취된 속죄 위에 세워진다. 사람이 다른 방법으로 구원받을 수 있었다면 주님은 갈보리에서 결코 속죄를 위한 죽음 당하시지 않았을 것이다. 제 7 단원에서 우리는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공부할 것이다. 4복음서에는 주님이 행하신 기사와 성육신, 그리스도의 지상 사역, 죽음, 장사 그리고 부활이 나타나 있다.
 
B. 속죄의 기원
1. 하늘에서 정해졌다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계시록 13:8). [KJV에는, “창세 이후로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in the book of life of the Lamb slain from the foundation of the world.)" 로 되어 있다: 역자 주]
“그는 창세전부터 미리 알리신바 된 자나…” (베드로전서 1:19-20).
바로 태초부터 하나님의 계획과 마음속에는 갈보리가 있었다.
2. 땅에서 제정되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창세기 3:21).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입히셨을 때 피 흘림이 있었다. 성경 전체에 흐르고 있는 희생의 붉은 핏줄기는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C. 속죄의 필요성
1.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인간의 죄악 때문이다: 속죄의 필요성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인간의 죄악 때문이다. 인간의 죄악에 대해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일으키는 반응은 진노(震怒)다. 이 진노는 속죄로써 막을 수 있다.
남편과 아내가 지켜야 될 언약을 불성실함으로써 파괴하듯이, 죄는 하나님과 인간이 지켜야 할 법을 어기는 것이다. 죄는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존귀하심과 거룩하심을 침해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반역이다. 왜냐하면 의도적으로 죄를 짓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보다는 한 동한 자신에게 법이 될 자신의 뜻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하나님께서 그의 존귀하심이 침해받도록 허용하신다면 더 이상 하나님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존귀하심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의 멸망을 요구한다. 주님의 의 (義)는 위반한 법에 대한 응분의 대가를 요구하며, 그의 거룩하심은 죄를 대적하는데 이 반응을 하나님의 진노라고 한다. 하나님은 깊이 숙고하심으로 진노를 자제하신다. 주님은 당신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서둘러 멸하시지 않는다. 그는 인간을 변호하신다. 그는 자비로우셔서 기다리신다. 그는 심판을 미루시고 그의 선하심이 죄인을 회개에 이르게 하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하고 꾸물거리고 심판에 대한 믿음을 비웃는다.
십자가의 고난은 죄의 심각성을 나타내며 무서운 형벌을 그린 것이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선언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은 인간의 죄에 대하여 이전에도 지금도 무관심하지 않으시며 또한 결코 무관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2.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이사야 59:2).
하나님은 거룩한 속성을 가지고 계시는데, 이 속성은 성품과 행위가 의롭다는 뜻이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계속되려면 거룩함은 필수다. 속죄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시킨다.
3.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이다: 죄의 심판은 사망이다. 생명은 피에 있는데 피를 흘릴 때 생명이 드려진다. 이는 죄사함을 위해 피흘림이 필요하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관련구절 로마서 2:4; 3:25 갈라디아서 6:7 전도서 8:11 베드로후서 3:9
 
D. 구속(REDEMPTION)
신․구약에서 “구속한다”는 말은: (1)값을 지불하고 되산다; (2)값을 지불하고 속박에서 풀어주다; (3)시장에서 사거나 취하다 라는 의미를 갖는다.
예수는 구속자이므로 그의 속죄 사역은 구속으로 묘사된다. 구속자는 다음과 같은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 (1)친족이어야 한다; (2)구속하거나 되살 의사가 있어야 한다; (3)값이 있어야 한다. 예수님은 이 세 가지의 모든 자격을 갖추셨다.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고린도전서 6:19-20).
우리는 값으로 산 바 되었다. 값은 무엇이었나?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라.” (베드로전서 1:18-19).
¶관련구절 레위기 25:47-49 마태복음 20:28 갈라디아서 3:13 디도서 2:14 계시록 5:9
 
E. 화목(RECONCILIATION)
바울이 말한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과 화목하셨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인간을 화목하게 하기 위해 무엇인가 하셨다는 것이다. 이 화목의 행위가 완성된 사역이다. 이것은 인간들을 위해 이루어졌던 사역이므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온 세상은 이미 화목하게 되었다. 이제 전도자가 그것을 선포하고 각 개인이 받아들이는 것이 남았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전 인류가 화목하게 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각 개인은 이것이 실제로 이루어지도록 받아들여야 한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 (고린도후서 5:18-19).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로마서 5:10).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골로새서 1:22).
 
F. 속죄의 효력
“효력이 있다(efficacious)”는 뜻은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 내거나 만들 수 있다”는 의미이다. 속죄는 무슨 결과를 만들어 내는가?
1. 죄의 용서
¶관련구절 요한복음 1:29; 5:24 에베소서 1:7 히브리서 9:22-28 계시록 1:5
2. 죄로부터의 자유: 죄 뿐만 아니라 죄의 권세에서 자유로워진다. 로마서 6:14
3. 죽음으로부터의 해방: 죽음은 죄의 결과이다.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히브리서 2:9)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한복음 11:26)
4. 영생의 선물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복음 3:14-16)
5. 승리하는 삶: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사단을 정복하셨다. 그리스도인은 마귀를 대하여 승리하는 한 계속 승리한다.
¶관련구절 누가복음 10:17-20 히브리서 2:14-15 골로새서 2:15 계시록 12:11
 
G. 속죄의 성격
히브리어로 “속죄(贖罪)”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덮는다”라는 뜻을 갖는데 영어 공인 성경(Authorized Version)에는 다음과 같이 번역되어 있다: 속죄하다(make atonement), 깨끗케 하다(purge), 제거하다(purge away), 화목케 하다(reconcile), 속죄(구속, 영속)하다(make reconciliation), 쉬게 하다(pacify), 용서하다(pardon), 긍휼히 여기다(to be merciful), 연기하다(put off).
속죄는 죄와 죄인 모두를 덮는 것이다. 죄를 속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보실 수 없도록 죄를 덮는 것이다. 그리하여 죄는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키는 힘을 상실한다(시편 78:38; 시편 79:9; 레위기 5:18).
제사장에 의해 피가 제단에서 흘려질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들에게 하신 언약이 그들을 위해 실현되리라 확신했었다.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출애굽기 13:13)
속죄 또는 덮는 것의 효력은 무엇이었는가?
1. 도말(塗抹)됨 (예레미야 18:23; 이사야 43:25).
2. 제하여짐 (이사야 6:7).
3. 가림 (시편 32:1).
4. 깊은 바다에 던짐 (미가서 7:19).
5. 주의 등 뒤에 던짐 (이사야 38:17).
6. 용서하심 (시편 78:38).
 
H. 대속(SUBSTITUTION)
구약의 제물은 성격상 대속적인 것이었다. 그것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스스로 할 수 없는 것을 대신해서 제단에 드려지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우리가 스스로 할 수 없는 것을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해 행하셨다. 인성(human nature)을 취하시고 사람이 되시어 사람의 죄값을 치르실 수 있었다. 그는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다. 그리고 우리가 그 형벌을 피할 수 있도록 우리의 형벌을 지셨다. 날 때부터 죄가 없으셨고 사시는 동안 결코 죄를 범하지 않으신 분이 죄인이 되셨다(죄인의 자리에 서셨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고린도후서 5:21).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베드로후서 2:24).
모리아 산에서 덤불에 걸린 수양이 이삭의 대속물이었던 것처럼 그리스도는 우리의 대속물이셨다. 바라바가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풀려난 것처럼 우리도 풀려나게 된다. 이사야 53장을 주의 깊게 읽고 연구하라.
 
I. 화해(PROPITIATION)
“화해”라는 말은 “가까이”를 뜻하는 “PROPE(프로페)"라는 라틴어에서 유래되었다. 화해의 제물은 인간을 하나님과 가깝게 해주며 그 분의 은총과 은혜를 얻어 속죄함을 얻게 함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한다. 그리스도는 그러한 화해 제물(화목 제물)로 묘사되어 있다(로마서 3:25; 요한일서 2:2; 요한일서 4:10). 죄는 인간을 하나님과 멀리 떼어놓는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인간을 위해 죄를 처리하시므로 인간은 이제“그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로마서 3:25에 있는 “화목(화해)”이라는 말은 “속죄소(mercy seat)”라는 말을 번역하기 위해 사용된 헬라어와 같다. 헬라어와 히브리어에서는 모두 그 말이 속죄 제물의 뜻을 나타낸다.
일관된 성경의 관점은 인간의 죄가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그 진노는 오직 그리스도의 속죄 제물에 의해서만 가라앉는다. 이러한 입장에서 아마 그의 구원 사역을 화해라고 부르는지 모른다.
모든 죄는 심판을 받아야 하지만 여기에서 모든 인류의 죄는 심판을 받았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의 죄를 위해 모든 대가를 치르셨다. 우리의 죄가 여기에서 심판받지 않는다면 백보좌 심판대에서 심판 받게 될 것이다. (계시록 20:11-15).
 
 
제2과 속죄에 관한 보다 상세한 고찰
 
A. 속죄의 중요성
성육신(incarnation)은 속죄의 목적을 위한 것이었다. 예수님은 죽으시기 위해 혈육에 참여하셨다. 그는 우리의 죄를 없이하려고 나타난바 되셨다(요한일서 3:5; 히브리서 2:14). 주님은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서 그의 생명을 주시기 위해 세상에 오셨다(마태복음 20:28). 속죄의 믿음은 성육신의 믿음을 전제로 하고 있다. 성육신은 분명히 세상을 구원할 목적을 예수님 쪽에서 선언한 것인데 속죄를 통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세상이 구원받도록 되었겠는가? 속죄는 성경 전체에 매 장마다 흐르고 있는 붉은 줄이다. 성경 어디든지 베어보면 피가 흐른다. 신약의 매 44구절 중 한 구절마다 속죄를 말하며 175회나 그리스도의 죽음을 언급한다. 모세와 엘리야는 그리스도의 죽음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누가복음 9:30-31). 구약의 선지자들은 이 위대한 주제를 탐구하였다(베드로전서 1:11). 하늘의 주제 음악은 그리스도의 죽음이다(계시록 5:8-12).
 
B. 그리스도 죽음에 관한 비성경적 관점
어떤 이들의 생각에는 그리스도의 죽음이 단지 순교자의 죽음일 뿐이다. 어떤 이에게는 그의 죽음이 죄악된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의 표현이었다. 그는 어떤 한 “예(例)”에 불과하다. 여전히 어떤 이들은 거룩한 하나님이 죄를 싫어하심을 세상에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갈보리의 주님께 진노를 내리셨다는 사실에 비추어 이해한다. 현대적 사상은 예수님의 죽으심의 필요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스데반은 순교자의 죽음을 당하였고 다소의 사울은 이를 지켜봤지만 바울이 스데반의 죽음을 통하여 죄사함을 전파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행 13:38). 속죄에 대한 경박하고 잘못된 관점은 죄에 대한 경솔하고 그릇된 관점에서 비롯된다. 우리가 죄를 단지 사람에게 범한 죄나 인성(人性)의 약점 내지 단순한 질환(疾患)으로 간주한다면, 당연히 속죄의 필요성을 깨닫지 못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성경이 묘사하는 것, 즉 죄가 관영하며,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속죄가 필요한 죄악을 이해해야만 한다. 오직 이것을 이해할 때에야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이유를 깨달을 것이다.
 
C. 그리스도의 죽음이 우주에 미치는 영향
모든 세상이 인간의 타락으로 영향을 받은 것 같이, 그리스도의 죽음은 전 우주에 미치는 영향을 가지고 있다. (로마서 8:19-23). 예수 그리스도는 우주의 중심이시며 이 우주가 그의 죽음으로 이제 화목 되었다.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골로새서 1:20)
죄가 미치는 한 화해는 우주의 가장 먼 지경까지 미친다. 바꾸어 말하면 치료는 필요에 상당하다.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사단의 권세는 무력화되었다(전혀 효력을 갖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들린 것은 사단의 넘어짐을 뜻했다. 인간은 더 이상 죄의 종일 필요가 없다. 갈보리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죄를 사해 준다. 이제는 내 죄를 어찌해야 하는가? 라는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과 무엇을 할지가 문제이다.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골로새서 1:20).
¶관련구절 요한복음 12:31-32 로마서 3:25-26 히브리서 9:26
 
 
제3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A.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 구원에 필수적이다. 기독교는 창시자의 부활을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는 유일한 종교이다.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바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는 사실 그대로의 진리를 위한 기독교의 생명에 대하여 기독교가 대답하도록 만든다.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고린도전서 15:13-19).
그리스도의 몸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지 못한다면 모든 것이 헛것이다. 바울의 복음에서 부활을 제거한다면 그의 메시지는 사라져 버린다. 초대교회는 항상 부활을 확신했다. 사도들은 극렬한 반대 세력들의 면전에서도 부활을 전파하였다.
부활은 신약에서 100여 차례 이상 언급되어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무덤에 그대로 묻혀 있었다면 그의 생애와 죽음의 이야기도 그와 함께 여전히 묻혀 있었을 것이다. 신약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결과이다. 부활이 주님의 생애에 관한 이야기에서 전개되어 나온 것이 아니라 그의 아름다운 생의 이야기가 부활의 사실에서 비롯되어 나타난 것이다. 신약은 부활의 책이다.
즉, 무덤에서 주님의 몸이 부활한 것은 예수의 신성과 죄인을 구원할 속죄의 효력을 입증한다.
¶관련구절 사도행전 2:24; 3:15; 4:10; 10:40; 13:30 -34; 17:31 고린도전서 15장 빌립보서 3:21 베드로전서 1:21-23
 
B. 부활의 증거
부활의 증인들은 많았다. 그들의 증거의 비중은 상당히 결정적이다. 동료들과 적들 모두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 했다: 여인들, 제자들, 천사들, 로마 파수군들.
군병들은 뇌물을 받고 무덤에서 시체가 도둑맞았다고 말했다(마태복음 28:11-15). 13절을 주목하라. 군병들이 잠들어 있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어떻게 알 수 있었겠는가?
예수님께서 미리 말씀하신 대로 그가 살아나셨다는 천사의 증언이 있다(마태복음 28:8; 마가복음 16:6).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부활을 목격한 여러 증인들을 열거하고 있다: 베드로, 열두 제자, 500여 형제, 야고보, 사도들, 마지막은 다메섹 도상에서 목격한 바울 자신.
 
C. 부활의 개인적 증거
부활에 관해 필요한 모든 증거들은 예수께서 오늘날 죄인을 구원하며 병든 몸을 치유하며 그의 성도들의 마음속에 내주(內住)하신다는 사실이다. 그는 다메섹 도상에서 다소의 사울에게 뿐만 아니라 그의 피로 씻음을 받은 자녀들에게도 그들 개개인의 여정 중에 나타나신 것이다. 부활의 실제는 현재에도 그의 살아 있는 임재의 실제에 의해 증거된다. 애클리(Ackley) 목사님의 말씀을 음미해 보자: “그가 살아 계신 것을 내가 어떻게 아는지 묻습니까? 그는 내 마음속에 살아 계십니다.”
오늘도 우리의 생활 속에서 그의 부활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다. 사실, 우리가 그의 교회의 지체가 되며 그의 나라에 속하게 된다면 이것을 분명 경험하게 된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속죄의 능력이 나타나도록 했다. 주님의 죽음과 장사와 부활은 우리를 위한 구원을 베풀었다. 이와 같이 우리를 위해 예비된 구원의 수여자가 되기 위해 우리 측에서는 죽음과 장사와 부활을 취한다.
 
D. 부활 이후 그리스도의 출현
사복음서에서 부활의 기사를 읽고 그의 출현이 발생했던 대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이 필요하다. 분명 그의 출현은 다음과 같다:
1. 무덤에서 여인들이 천사들을 보다.
2. 여인들은 서둘러 제자들에게 가서 말하다. 베드로와 요한은 아주 가까운 곳에 살았다; 다른 제자들은 무덤에서 보다 먼 곳에 있었다.
3. 베드로와 요한이 무덤으로 달려가다. 요한은 젊기에 베드로를 앞질렀다.
4. 마리아도 따라 무덤으로 가서 서성대다 예수를 보다.
5. 예수께서 엠마오의 제자들에게 나타나시다.
6. 베드로에게 나타나시다.
7. 도마가 없을 때 사도들에게 나타나시다.
8. 도마가 있을 때 사도들에게 나타나시다.
9. 산 위에서 사도들과 무리에게 나타나시다.
10. 갈릴리 호숫가에서 사도들에게 나타나시다.
11. 야고보에게 나타나시다.
12. 승천 때에 사도들에게 나타나시다.
13.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에게 나타나시다.
 
E. 빈 무덤의 기사
수건과 수의는 빈 무덤의 가장 위대한 기사 중 하나를 말해 준다(요한복음 20:6-7). 나사로가 부활할 때는 수의로 손과 발이 묶인 채 무덤에서 나왔다. 나사로에게는 누군가 수의를 풀어 주어야 했다(요한복음 11:44).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심히 놀란 것은 시신이 안치 될 때 있었던 손도 대지 않은 상태 그대로 그 자리에 수건과 수의가 있었지만 그의 몸은 사라지고 없었기 때문이었다. 주님이 살아나실 때는 수의를 풀 필요가 없었다. 그는 간단히 수의 밖으로 나오셨다. 이와 같이 무덤의 돌을 굴릴 필요도 없었다. 돌이 굴려진 것은 부활하기 위해서가 아닌 세상에 빈 무덤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F. 부활의 성격
1. 주님은 실제로 무덤에서 살아나셨다. 그 몸은 무덤에 안치되었던 바로 그 동일한 몸이었다(요한복음 20:27; 누가복음 24:37-39).
2. 그리스도의 실제의 몸이 살아난 것이지 귀신이나 유령은 아니었다. 그것은 살과 뼈로 이루어진 몸이었으며(누가복음 24:36-43) 만질 수 있었다(요한복음 20:20).
3. 그의 몸에는 고난의 흔적이 있었다(요한복음 20:24-29).
4. 주님은 제자들 앞에서 먹고 마셨다(사도행전 10:41).
5. 그는 닫힌 문을 통과하거나 사라질 수 있었다(요한복음 20:9).
6. 그리스도의 몸은 더 이상 죽음을 맛보실 수 없다(로마서 6:9-10).
7. 그리스도는 부활의 첫 열매였다(고린도전서 15:20).
 
G. 부활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
1. 부활은 칭의(justification)의 확신을 가져다준다.
“예수는 우리의 범죄 함을 위하여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의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 나셨느니라” (로마서 4:25).
백성들은 대제사장이 성소에서 나오기를 밖에서 기다렸다. 왜냐하면 그들의 모든 죄가 없어졌음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의 대제사장은 무덤에서 나오심으로 우리는 우리의 죄가 사하여졌음을 안다.
2. 주님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에도 확신을 준다.
3. 주님의 부활은 오는 심판을 확인한다.
4. 부활은 영원한 생명을 확인한다(요한복음 14:19).
 
 
제4과 이중적 치유
 
A. 속죄 가운데 주어진 신유
1. 정의: 신유(Divine healing)는 모든 치료 요법과는 별개의 육체의 치유이다. 그것은 치유의 기적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이며 우리의 죽을 몸을 살리라는 것은 하나님의 영이다.
2. 이중적 치유: 예수께서 죽으셨을 때 우리의 죄악뿐만 아니라 또한 병까지도 담당하셨다. 속죄 안에는 영혼의 구원과 육체의 치유가 포함되어 있다. 이를 이중적 치유라고 한다. 즉 구원과 치유이다.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마태복음 8:17).
좋은 한 예를 마라에서 보게 된다(출애굽기 15:23-26). 쓴 물에 던져진 나무는 갈보리 십자가의 예표이다. 쓴 물은 죄의 예표이다. 물을 달게 하심과 함께 건강과 치유의 약속이 주어졌던 것이다.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출애굽기 15:26).
 
B. 병의 원인
1. 일차적인 원인: 태초에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완전한 건강을 주어 창조 하셨다. 죄와 사망을 알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했다면 축복된 조건을 영구히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불순종의 결과로 사망이 인류에게 들어왔고 사망과 함께 병도 들어왔다. 여기서 근본적인 병의 원인을 보게 된다.
2. 이차적인 원인들
(a)때때로 병은 죄 때문에 찾아온다. 신명기 28:58-61에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으면 그들에게 임할 죄가 언급되어 있다.
(b)사단의 힘으로 병이 올 수 있다(욥). “십팔년 동안 사단에게 메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누가복음 13:16).
(c)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기 위해 병이 주어진다.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요한복음 9:3).
 
C. 신유에 대한 성경의 근거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출애굽기 15:25-26).
욥. 그에게서 병의 근원과 병고침을 주는 행동 과정을 볼 수 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시편 103:2-3).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이사야 53:4-5).
“…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마태복음 8:16-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마가복음 16:15-18).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 할지니라” (야고보서 5:14).
 
D.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히 동일하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히브리서 13:8).
예수 그리스도는 변함이 없으시다는 사실은 주께서 오늘도 병을 고치신다는 가장 큰 증거 중에 하나이다. 지상 사역 동안에 그는 자신에게 데려온 모든 병자들을 고치셨다(마태복음 8:16). 주께서 자신의 몸에 우리의 고통을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리셨다면 이 땅에 계셨을 때처럼 오늘도 그의 자녀들을 위하여 신유를 베푸실 것이다. 히브리서 13:8은 우리 각자가 그를 위대한 의사로 인정하기에 충분한 증거가 된다. 우리가 주님을 인정할 때 병고침을 받을 준비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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