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0.21. 금요기도 말씀
[본문] (마 7:15-20, 개정) 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16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20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주제]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라는 말이 있다. 그 원인에는 그에 걸맞는 결과가 나오기 마련이다는 것이다. 콩을 거두었다면 "콩을 심었구나"라고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뿌린 것과 거둔 것에 대해서 새뮤얼 스마일즈(Samuel Smiles)는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생각의 씨를 뿌리면 행동을 거둬들일 것이요
행동의 씨를 뿌리면 습관을 거둬들일 것이요
습관의 씨를 뿌리면 성품을 거둬들일 것이요
성품의 씨를 뿌리면 운명을 거둬들일 것이다.
결국 생각의 작은 씨앗이 운명의 수레바퀴를 돌린다고 할 수 있겠다.
우리는 어떤 씨앗을 뿌리고 있으면, 어떠한 열매를 맺고 있는가?
본문의 말씀은 선지자에는 거짓 선지자와 참 선지자가 있다는 것이다.
이 시대에 목회자, 사역자, 리더자 등으로 불리는 사람을 가리킨다.
지금 나는 평신도인가? 하지만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가 재생산을 통하여 세계비전을 감담해야 할 후보생들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에.
우리 모두가 예비 사역자란 말이다. 그러니 이는 현재 목회자에게만 해당하는 말씀은 아니다. 앞날의 우리 모두에게 주신 말씀이다.
말씀에서 거짓 선지자는 겉은 양이지만, 속은 이리이다. 겉과 속이 다르다.
물론 겉이 이리이고 속도 이리라면, 겉과 속은 같지만 이들은 명벽한 거짓 선지자이다.
그렇다면 참 선지자는 당연히 겉도 양이고 속도 양인 자이다.
그런데 겉은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지만 속은 어떻게 볼 수 있는가?
열매로 그것을 판단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그럴 수 없다.
참 선지자는 좋은 나무로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거짓 선지자는 못된 나무로 나쁜 열매를 맺는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말씀은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19절)"이다.
비록 처음에는 좋은 나무였더라도 그 열매가 아름답지 못 하다면,
좋은 나무가 어느새 못된 나무로, 참 선지자가 어느새 거짓 선지자로 탈바꿈한 것이다.
이것이 변질이고, 이것이 타락이고, 이것이 이단이다.
반면에 비록 처음에는 못된 나무였더라도 아름다운 열매를 맺었다면,
못된 나무가 좋은 나무로, 거짓 선지자가 참 선지자로 탈바꿈한 것이다.
이것이 회개이고, 이것이 성화이고, 이것이 구원이다.
중요한 출발이 무엇이었느냐가 아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도록 사모해야 한다는 것이다.
날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좋은 나무로 한걸음씩 자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아름다운 열매란 무엇일까?
이는 예수님의 3대 사역을 통하여 살려진 결과물들이다.
살려진 영혼이 아름다운 열매이고
살려진 마음이 아름다운 열매이고
살려진 몸이 아름다운 열매이고
살려진 환경이 아름다운 열매이다.
그저 '선지자'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고 하여, 주어진 권위를 다 믿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의 3대 사역을 감당하여 열매를 맺는 자가 선지자이다.
가르치고 전파하고 치유하여 생명을 살리는 자가 획득된 권위를 받은 참 선지자이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라는 말이 있다. 그 원인에는 그에 걸맞는 결과가 나오기 마련이다는 것이다. 콩을 거두었다면 "콩을 심었구나"라고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뿌린 것과 거둔 것에 대해서 새뮤얼 스마일즈(Samuel Smiles)는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생각의 씨를 뿌리면 행동을 거둬들일 것이요
행동의 씨를 뿌리면 습관을 거둬들일 것이요
습관의 씨를 뿌리면 성품을 거둬들일 것이요
성품의 씨를 뿌리면 운명을 거둬들일 것이다.
결국 생각의 작은 씨앗이 운명의 수레바퀴를 돌린다고 할 수 있겠다.
우리는 어떤 씨앗을 뿌리고 있으면, 어떠한 열매를 맺고 있는가?
본문의 말씀은 선지자에는 거짓 선지자와 참 선지자가 있다는 것이다.
이 시대에 목회자, 사역자, 리더자 등으로 불리는 사람을 가리킨다.
지금 나는 평신도인가? 하지만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가 재생산을 통하여 세계비전을 감담해야 할 후보생들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에.
우리 모두가 예비 사역자란 말이다. 그러니 이는 현재 목회자에게만 해당하는 말씀은 아니다. 앞날의 우리 모두에게 주신 말씀이다.
말씀에서 거짓 선지자는 겉은 양이지만, 속은 이리이다. 겉과 속이 다르다.
물론 겉이 이리이고 속도 이리라면, 겉과 속은 같지만 이들은 명벽한 거짓 선지자이다.
그렇다면 참 선지자는 당연히 겉도 양이고 속도 양인 자이다.
그런데 겉은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지만 속은 어떻게 볼 수 있는가?
열매로 그것을 판단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그럴 수 없다.
참 선지자는 좋은 나무로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거짓 선지자는 못된 나무로 나쁜 열매를 맺는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말씀은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19절)"이다.
비록 처음에는 좋은 나무였더라도 그 열매가 아름답지 못 하다면,
좋은 나무가 어느새 못된 나무로, 참 선지자가 어느새 거짓 선지자로 탈바꿈한 것이다.
이것이 변질이고, 이것이 타락이고, 이것이 이단이다.
반면에 비록 처음에는 못된 나무였더라도 아름다운 열매를 맺었다면,
못된 나무가 좋은 나무로, 거짓 선지자가 참 선지자로 탈바꿈한 것이다.
이것이 회개이고, 이것이 성화이고, 이것이 구원이다.
중요한 출발이 무엇이었느냐가 아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도록 사모해야 한다는 것이다.
날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좋은 나무로 한걸음씩 자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아름다운 열매란 무엇일까?
이는 예수님의 3대 사역을 통하여 살려진 결과물들이다.
살려진 영혼이 아름다운 열매이고
살려진 마음이 아름다운 열매이고
살려진 몸이 아름다운 열매이고
살려진 환경이 아름다운 열매이다.
그저 '선지자'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고 하여, 주어진 권위를 다 믿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의 3대 사역을 감당하여 열매를 맺는 자가 선지자이다.
가르치고 전파하고 치유하여 생명을 살리는 자가 획득된 권위를 받은 참 선지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