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점 해결방안: 믿음으로 돌아가자

믿음이란?

유태인의 조상이며 기독교인의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유일한 신, 하나님을 섬길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의로워서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선택하셔서 믿음을 선물로 주셨기 때문이다. 우리 또한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것은 우리나라, 가문이 좋아서가 아니다. 우리에게 어떤 달란트가 있어서도 아니다. 하나님께서 죄인 된 자리에 있는 우리를 은혜의 눈으로 보시고 선택해주시며, 믿음을 선물로 주셔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해주셨다. 우리는 이 큰 은혜에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아브라함을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이 큰 역사를 이루었던 것처럼, 이제 우리 기독교인을 통해서 하나님은 큰 역사를 이루길 원하신다.
나를 통해서 우리를 통해서 우리의 공동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큰 일을 이루시기를 원하시는데 그 일을 왜 이루지 못하는 것일까?
하나님이 유태인을 부르셨을 때 그들이 토라를 받아들였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영을 그들 속에 먼저 보내주셨서 그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믿음을 선물로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유태인들은 그들의 후손들에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시도록 맡겨야 한다. ‘하나님!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라고 고백해야 한다. 그때 하나님은 우리를 들어 쓰신다.” 라고 가르친다.
그래서 세상을 바꾸는데 있어서 그들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시려고 유태인을 선택했다고 가르친다.

선택의 의미

하나님께서 연약한 우리를 선택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려고, 은혜도 주시며 일하게 하신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친숙한 환경으로부터 완전히 떠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리고 순종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큰 은혜를 받았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내보내실 때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브라함을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이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믿음을 선물로 주시고 은혜로 구원하시어 인도하고 계신다. 이것이 마음 속에 믿어지고 입으로 고백하는 것이 믿음이다.

선택 받은 자의 기도와 기도를 들어주시는 유일하신 하나님

유태인들이 기도할 때 무엇을 위해서 기도하든지, 잘 들어보면 성경의 본문들의 연결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야다 쉐 아마드타 리프네이 엘로힘(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것을 알라)”

유태인들은 기도할 때 하나님 앞에서 기도한다. 여기서 ‘야다’는 ‘알아라’는 말인데 다음과 같은 깊은 속뜻이 담겨 있다.

첫째 하나님은 유일하시다.
둘째 하나님만이 예배의 대상이시다.
셋째 하나님은 선생님이시다.

우리의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하나님만이 예배의 대상이시며, 하나님만이 우리의 교사이시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라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교사는 하나님이시다. 유태인들은 기도할 때 ‘온전히 한 분밖에 계시지 않은 하나님’, ‘우리의 모든 것 되시는 하나님’, ‘우리의 가장 좋으신 선생이 되시는 하나님’이라고 한다.

창조주 하나님께로 돌아가자

하나님은 인간 속에 영혼을 두셨다. 영혼은 무엇을 하려고 만드셨을까? 유태인들은 말하기를 영혼은 우주의 법과 하나님의 법을 바르게 알고 사용하도록 가르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을 배워서 알고, 하나님을 닮아서 보여주고, 그 지혜를 다음 세대에 전달하기 위해서 영혼을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유태인들에게 기도와 연구가 바로 예배이다. 기도하고 연구할수록 하나님을 깨닫고 ‘나’라는 존재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일컫지 않게 된다. 입으로 찬양을 하고 있으면서 마음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살아계신 하나님, 우주의 하나님, 자연의 하나님,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 이렇게 부를 때 내가 정말 진정으로 부르는가? 하나님께서 나를 사로잡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지금 내가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것을, 지금 하나님께서 나를 보고 있다는 것을 진실로 느끼면서 하나님을 부르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즉시 바꾸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일컫지 않는 것이다.
기독교에서도 예배는 하나님과 성도가 만나는 최고의 순간이 되어야 한다. 주일은 마치 결혼식과 같다. 결혼식에서 신랑이 다른 여자 친구를 만난다는 것은, 신부가 다른 남자 친구를 만난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몸은 결혼식장에 있으면서 마음은 다른 사람에게 가 있다면 이미 깨어진 결혼식이 되어버린다.
그러므로 일주일에 단 한 번이라도 오직 하나님만을 생각하고 하나님께만 받치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교사로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의 말씀을 가르치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하나님을 가르치시고 말씀을 따라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생활방식을 가르치신다. 또한 하나님은 성경을 통하여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구원의 길을 가르치신다.
우리의 가장 좋은 스승이신 하나님께서 일상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지침을 우리에게 주고 계시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무엇을 좋아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을 숭배한다면 기도한 것, 예배한 것과 정반대의 삶을 사는 것이다.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한다.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살 수 있다.

하나님께로 돌아온 표시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장 좋은 표현, 하나님께로 돌아온 사람이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표현은 ‘믿음’과 ‘순종’이다.
구원 받은 사람은 “믿음을 내게 가르쳐주셔서, 구원의 길을 가도록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해야 한다.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역시 기도해야 한다.
믿음과 순종을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바른 생활 방식을 가르치고자 하신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답한다. 그런데 순종하는 삶은 어떤 삶인가? 유태인들은 “순종은 겸손”이라고 한다. 그리고 “한나님의 마음을 소유하는 것이 겸손이다” 고 한다. 그럼 하나님의 마음을 소유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하나님의 마음을 소유한 사람은 사랑과 동정을 표현한다. 모든 것을 향하여 동정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겸손하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지 아는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에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살아간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마음을 소유하기 위하여 기도한다. 우리가 기도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소유하면 우리는 겸손하게 되고 그러면 곁에 있는 사람들을 섬길 수 있게 된다. 그들 역시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로 돌아온 표시로서 사랑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곧 순종과 충성이다. 하나님 앞에서 충성을 맹세하는 것이다. 요즘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요구에  “이것은 법이야”라고 말하며 순종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요구를 율법이라고 하며 복음과 믿음만 강조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법을 주신 이유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구약이 하나님의 법이라고 한다면 신약도 하나님의 법이다. 또한 신약이 복음이라면 구약도 복음이다. (율법을 복음으로, 복음을 율법으로)
여기서 복음이란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가르쳐주신 것이고, 법이란 우리가 살아가야 할 생활 방식을 가르쳐주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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