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함 (성결)
거룩함(성결)
제1과 성화
A. 성화(SANCTIFICATION):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sanctification)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데살로니가전서 4:3).
성화(聖化)란 악에서 분리되어 하나님과 그를 섬기는 일에 헌신하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은, 성화는 영혼과 몸을 더럽히는 모든 죄악된 것으로부터 돌이키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밝힌다. 그런데 그것은 분리(separation from)일 뿐만 아니라 또한 구별(separation unto)을 의미한다. 성화되기 위해서는 죄로부터 분리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또한 거룩함으로 구별되어야 한다. 부정한 것으로부터 거룩한 용도로 분리해 놓은 것은 무엇이든지, 오직 하나님을 예배하는데 헌납된 것은 무엇이든지 성화되어진다.
¶관련구절 역대하 29:5 레위기 27:14-16 에스겔 36:2 출애굽기 19:20-22 민수기 8:17 히브리서 9:3
저희에게 이르되 레위 사람들아 내 말을 들으라 이제 너희는 성결케 하고 또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성결케 하여 그 더러운 것을 성소에서 없이하라 (개역한글판 대하 29:5)
열국 가운데서 더럽힘을 받은 이름 곧 너희가 그들 중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찌라 내가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로 인하여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열국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개역한글판 겔 36:23)
B. 과거, 현재, 미래
성화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로 보여 질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즉각적(instantaneous)고 점진적(progressive)면서 완성된(complete) 성화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고린도전서 6:11).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히브리서 10:14).
이러한 성경 구절들에서는 성화가 이미 과거에 있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첫번째 구절에서 바울은 칭의(justification)전에 성화를 말했다는데 주의하라. 그러므로 구원을 경험할 때 일찍이 분명한 성화의 역사가 있다. 어떤 이들은 사람이 죽은 후에야 그 사람들을 성인으로 추대하였지만, 신약 성경은 살아 있을 동안에도 성인이라 말한다. 모든 참 신자들은 성도(saint)이며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구별(성화)되었다. 그렇지 못하다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C. 점진적인 성화(PROGRESSIVE SANCTIFICATION)
칭의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성화와 다른 점이 있다. 전자는 점진성이 없는 즉각적인 사건이지만 반면에 후자는 과정(process)이라는 관점을 가진 국면(crisis)(정점) 즉, 즉각적이면서 동시에 완전으로의 성장이라는 개념을 수반하는 사건이다.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베드로후서 3: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changed into)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고린도후서 3:18).
여기서는 동사의 시제가 흥미를 끈다. 우리는 성질상 또는 영광에 있어서 일단의 단계에서 다른 단계로 변화(changed)하고 있다. 우리가 권고받는 점진적인 성화는 (1)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며(데살로니가전서 3:12); (2)형제 사랑을 더 많이 하고(데살로니가전서 3:12); (3)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다(고린도후서 7:1).
D. 어떻게 성화되는가?
하나님과 사람 모두 원하는 목표를 향해 기여하며 협력한다. 우리는 죄로부터 돌이켜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헌신해야 하지만 실질적으로 성화시키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이것은 마치 추위에 떨고 있는 사람이 몸을 따뜻하게 하고자 불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과 같다.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sanctify)” (에베소서 5:25-26).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sanctified)” (히브리서 10:10).
제2과 거룩함
A. 하나님은 거룩하시다:
하나님의 거룩하심(holiness)은 그의 절대적인 도덕적 정결함을 뜻한다. 그는 죄를 짓거나 묵인하실 수 없다. “거룩”이라는 말의 어근(語根)은 “구별”(separate)이라는 뜻을 갖는다.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은 구별되는가? 하나님은 완전하시다. 그러나 사람은 불완전하다. 하나님은 신(神)이지만 사람은 인간(人間)이다. 그는 도덕적으로 완전하지만 인간은 죄가 있다. 거룩함은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를 구별하는 속성임을 알게 된다. 그것은 단지 하나님의 특징뿐만 아니라 신적 성질 그 자체를 나타낸다. 또한 하나님께서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로 기억하게 하시려고 하는 하나님의 속성인데 그 이유는 거룩함이 하나님과, 교제를 방해하는 인간 사이에 큰 구별을 만들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의 신으로 인간을 감동하시어 자신을 계시하실 때, 그는 스스로를 성화시킨다고 하는데 즉, 자신을 거룩한 자로서 계시하시는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을 신으로서 존귀를 돌리며 경외감을 가질 때 하나님을 성화케 하는 것이라 한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그를 불명예스럽게 할 때 그를 모독하는 것이다.
¶관련구절 여호수아 24:19 시편 145:17 누가복음 1:49 에스겔 26:23 출애굽기 15:11 사무엘상 2:2 이사야 6:3 야고보서 1:13 민수기 20:12 레위기 11:44-45 시편 5:4 이사야 43:14 베드로전서 1:15-16 레위기 10:3 레위기 20:26 시편 111:9 예레미야 23:9 계시록 4:8 이사야 8:13
B. 오직 하나님만 스스로 거룩하시다:
거룩한 백성, 건물, 물건들이 거룩하다고 묘사된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거룩하게 만드셨거나 정결케 하셨기 때문이다. 사람에게나 물건에 적용된 “거룩”이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따로 분리되어 있다는 사실-를 표현하는 용어이다. 따로 분리된 물건은 정결해야만 하며 사람은 자신을 헌신하여 성결의 법을 따라 살아야 한다.
죄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방해하며 결국은 회개하지 않는 죄인은 하나님의 존전(presence)으로부터 영원히 쫓겨난다. 이것이 “둘째 사망(the Second Death)”이다.
여러 경우에 있어서도 이 관계는 계약(covenant)으로 알려진 협정으로 재확인 되면서 확대되었고 해석되었다. 계약을 준수하려면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가운데 있어야 하는데, 왜냐하면 의로운 자는 오직 올바른 자와 교제를 누릴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교제 가운데 있다는 것은 생활을 언급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성경은 순종과 생활은 함께 하는 것이라는 진리를 선언했다.
“두 사람이 의합지 못하고야 어찌 동행하겠으며” (아모스 3:3).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Blessed are they that do his commandments) 이는 저희가 생명 나무에 나아가며” (계시록 22:14) (역자주: 영어성경(KJV)에는 “그의 명령을 행하는 자는 복이 있으니”라고 번역되어 있다)
다음 질문에 대한 답은 무엇인가? 무엇이 땅을 거룩하게 만들었나?(출애굽기 3:5). 거룩한 처소(sanctuary)는 왜 지성소(the most holy place)라 불리웠나?(출애굽기 26:33-34). 무엇이 성전을 거룩하게 만들었나?- 교회는 어떻게 거룩해 지는가? (고린도전서 3:17).
C. “거룩”의 뜻
이 말은 “하나님을 위해 따로 두다”라는 의미를 가진 히브리어 “쿠오데쉬(quodesh)”에서 번역되었다. 이 용어는 “거룩한(holy), 봉헌하다 (consecrate), 성화하다(sanctify)”로 번역된다. 또한 언제든지 거룩하고 봉헌되고 구별되고 성화된 사람 또는 물건-하나님을 위해 따로 둔 것-이라는 기초적인 개념이 된다.
D. 거룩함의 아름다움: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in the beauty of holiness)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시편 29:2).
거룩함의 아름다움과 비교될 수 있는 어떤 아름다움도 없다. 이 세상은 아름다움을 매우 의식하지만 세상이 참 거룩함의 올바른 개념으로부터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그들의 아름다움의 개념은 더욱 더 왜곡(歪曲)된다. 이런 경향을 소위 “현대 예술”에서 볼 수 있다.
교회는 거룩한 교회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에 의해 성화되므로 아름다워진다. 이와 같이 진정으로 아름다운 사람은 거룩하며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한 사람이다. 거룩함의 아름다움은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나오며 발산된다.
E. 사람은 어떻게 거룩해지는가?
인간의 생명 안에 거룩함이 이루어 지는데는 두 작인(作因)이 있다: 성령의 임재와 사람이다.
1. 신적 작인(Divine Agency):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요한복음 17:17).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고린도후서 3:18).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에베소서 5:26).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데살로니가전서 5:23).
불붙은 가시떨기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가 광야의 모래를 “거룩한 땅”으로 만든 것처럼 인간의 생명 속에 하나님의 임재가 그를 거룩하게 만드는 것이다. 성화의 역사는 복음의 메시지를 들음으로 생명 가운데서 시작되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은 듣는 자의 마음속에 정결케 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성화의 역사는 믿음과 회개와 예수 이름의 물침례의 단계들을 통해 계속된다. 그러나 성화의 역사는 주로 성령 침례로 완성된다. 하나님의 성령이 생명 가운데 들어오실 때 그의 임재가 그 생명을 거룩하게 만들며 그 역사는 이 세상에서 옮기어질 때까지 계속된다.
율법 아래 있는 의로운 자는 의를 행함으로 의롭게 되었지만 은혜 아래에서는 의롭게 되었기 때문에 의를 행한다. 구약에서 의는 전가되었지만 신약교회에서 의는 성령의 능력으로 전가되면서 직접적으로 부여되었다. 구원에 있어서 사람은 성령으로 거듭나자마자 완전하다. 왜냐하면 주님이 하시는 모든 일은 완전하기 때문이다.
2. 인간적 작인(Human Agency): 이것은 두 가지 견해로 나누어질 수 있을 것이다.
(a)예수님께 나아오는 것: 자신을 굴복시키고 성별케 하며 세상으로부터 구별시키며 헌신하므로 자신을 성령의 성화의 능력아래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예로써, 추위에 떠는 사람은 자신을 불에 가까이 가게 하면 몸이 따뜻해진다. 그러므로 거룩하지 못한 사람이 예수님께 나아가면 거룩해진다. 굴복과 성별과 믿음을 통해 성령의 성화의 능력 아래 머물러 있게 된다. 이것이 구원과 관계가 있다. 이러한 일을 하는 것은 단지 합당한 일을 한 것이지 칭송이나 상급이나 특별대우를 받을 만한 공적을 쌓는 것이 아니다.
(b)성도의 행실, 충성됨, 청지기직: 이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이다. 이 개념 속에는 갓 회심한 사람은 아기에 불과하며 은혜 안에서 자라갈 필요가 있다. 믿음과 생활에 있어서 불완전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야 한다. 성도의 행실과 충성에는 공로와 칭찬과 진급 과 상급이 있다. 하나님 나라에서의 지위는 이것에 달려 있다. 이것은 교회인 몸 안에서 어떤 지위를 가질 자격을 주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교회의 몸 안에서 충만케 할 지위를 결정하는 것이다.
¶관련구절 계시록 2:3 마태복음 10:42 계시록 22:12 고린도전서 3:5-15 마태복음 25:14-30 고린도전서 9:24-25 누가복음 19:11-27 디모데후서 4:6-8
F. 그리스도의 심판대
고린도후서 5:10. 이것은 죄에 대해서가 아닌 성도의 행위의 심판대이다. 모든 죄는 갈보리에서 이미 심판을 받았고 보혈 아래 있다. 하나님의 자녀의 마음과 생활 속에 고백하지 않은 죄가 밝혀진다면 그는 그의 지위를 몰수당하고 마는데 죄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그의 나라를 세우시기 직전 그의 종들에게 상급을 주시기 위해 오실 때 이 심판이 있다. 잘못된 동기나 이해의 부족 때문에 행위는 무효로 돌아갈 수 있지만 개인은 구원받게 되어 있다. 다시 말하건대 이것은 죄와 관련되어 있지 않다.(고린도전서 3:11-15).
제3과 그리스도인의 완전함
A. 두 가지 완전함:
1. 절대적 의미: 절대적 완전은 향상될 수 없다. 이런 종류의 완전은 오 직 하나님께만 해당된다.
2. 상대적 의미: 상대적 완전은 의도한 목표를 이룬다. 이것은 사람이 얻을 수 있는 것이다.
B. 구약의 완전함: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창세기 6:9).
“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순전(perfect)하고 정직하여” (욥기 1:1).
이 뜻은 전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욕구와 결심을 말한다. 그에 대한 기록에 흠집을 낼 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다윗은 그의 인생의 최고의 목표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었기에 그는 참으로 완전한 사람 또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불려질 만 하다.
C. 신약의 완전함:
완전의 개념을 나타내고자 여러 헬라어가 쓰였다.
1. 어떤 직무 내지 목적에 적합하며 온전히 갖추어져 있다는 의미에서 완전하다는 것이다. 디모데후서 3:17.
2. 또 다른 말은 성장을 통해 얻게 되는 어떤 결과를 뜻한다. 마태복음 5:48. 골로새서 1:28; 골로새서 4:12; 히브리서 11:40.
3. 고린도후서 13:9, 에베소서 4:12, 히브리서 13:21에서는 필요한 소양(素養)을 갖추는 것(equipment)을 뜻한다.
4. 고린도후서 7:1에서의 말은 “완성하고 끝내다”는 뜻이다.
5. 계시록 3:2에 나오는 말은 “어떤 요구를 만족시키다, 채워넣다, 같은 높이가 되게 하다, 충족시키다”라는 뜻을 나타낸다.
D. 완전이 의미하는 것:
완전의 개념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일면에서는 완전함이 가능하지만 다른 문제에 있어서는 불완전할 수 있다. 완전이 의미하는 바가 다음과 같이 표현되어 있다:
1. 그리스도 안에서 지위의 완전함 - 우리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것의 결과다 (히브리서 10:14).
2. 영적인 어린 아이와는 반대되는 영적인 성숙함과 지혜. (고린도전서 2:6; 고린도전서14:20; 고린도후서 13:11; 빌립보서 3:15; 디모데후서 3:17).
3. 점진적인 완전함 (갈라디아서 3:3).
4. 특정한 사항에 대해 완전함: 하나님의 뜻, 인간의 사랑, 봉사 등등에 대하여.(골로새서 4:12; 마태복음 5:48; 히브리서 13:21).
5. 천국에서의 개개인의 궁극적인 완전함 (골로새서 1:28; 빌립보서 3:12; 베드로전서 5:10).
6. 교회, 성도의 연합한 몸의 궁극적 완전함(에베소서 4:13; 요한복음 17:23).
E. 완전함의 두 가지 일반적인 측면:
1. 완전한 지위나 신분은 은혜의 선물이다. 사람은 구원을 받든지 받지 못하든지 한다. 만약 거듭났다면, 더 이상 거듭날 수 없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신분은 완전하다.
2. 실질적으로 성도의 인격 가운데 이루어지는 완전함. 이것은 성장과 성숙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은 그가 가진 모든 지식과 빛 가운데서 완전히 행할 수 있겠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여전히 불완전할 수 있을 것이다. 그에게는 비난할 점은 없겠지만, 동시에 아직 완전 무결하지는 안을 것이다.
주의: 신약은 실제적인 거룩함(성결)의 높은 기준을 보여주고 있으며 죄의 권세로부터 해방될 수 있음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완전함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의무이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빌립보서 3:12).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완전한 데 나아갈지니라” (히브리서 6:1-2).
제4과 실제적인 거룩함(성결)
A. 실제적인 거룩함
이 과는 그리스도인의 행실을 다룬다. 어떤 이는 거룩함을 천사 같은 것, 영적이고 신비롭고 완전히 이 세상과는 동떨어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거룩함은 그렇지 않다. 거룩함의 행실은 실제적이며 현실적이며 매시간 마다 승리를 경험하는 것이며 죄를 이기는 삶이다. 우리가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해야 한다면 실제적인 거룩한 삶은 필수적이다.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거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히브리서 12:14).
B. 몇가지 그릇된 견해:
1. 완전히 근절되었다(Eradication): 이것을 믿는 사람들은 죄의 성품(sinful nature)이 근절되어 완전히 뿌리 채 뽑혔으므로 성도는 이제 죄를 지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 주장은 아주 잘못되었다. 구원받은 후에도 여전히 죄를 범할 수 있으며 죄를 짓고 영혼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2. 금욕주의(Asceticism): 어떤 형태로 자신의 몸을 학대하는 데에는 공로와 상급이 있다는 믿음이다. 성경은, 예(例)로써, 금식과 같은 올바른 금욕주의를 위한 여지는 허용한다. 그러나, 독신 생활(celibacy)과 고행(penance)과 같은 왜곡된 금욕주의에는 어떤 이득도 없다.
3. 율법주의(Legalism): 이것은 율법의 속박 아래로 들어오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데 그 이유는 그가 그분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자녀는 율법보다 높은 수준에서 사는 것이지 그 속박에 있는 것이 아니다. 거룩함에 대한 열심이 있다면, 성경적이지 못한 우리의 태도에 대해 쉽게 단호할 수 있다.
C. 거룩한 생활을 위한 실제적인 규칙들:
1. 성령을 받고 성령 충만한 생활을 하라.
2. 많이 기도하라. 기도하는 생활은 대개 거룩한 생활이다.
3. 성경을 많이 읽고 성경 공부에 참석하라. 하나님의 말씀은 생활 속에 성화케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4. 하나님이 나타내신 뜻은 그분의 말씀과 더불어 시작된다. 주저함 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라.
5. 하나님을 섬기며 그의 뜻을 따르는데 온전히 헌신하라.
6. 거룩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거룩한 생활을 정말 가능하다.
7. 하루 하루 매번 승리해야 함을 기억하라.
8. 다른 사람의 결점을 보지 말고 예수를 바라 보라.
9. 자신의 연약함을 보지 말고 예수를 바라 보라.
10.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주 간증하고 전도하라 (계시록 12:11).
11. 당신의 문제를 자발적으로 목사님과 의논하라.
12. 어떤 일을 행하는데 의심이 있을 때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라:
(a)성경이 이것을 정죄하는가?
(b)예수께 기도하여 이것을 축복해 달라고 할 수 있는가?
(c)이것을 행하는 동안 예수님과 동행할 수 있는가?
(d)이것이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가?
(e)이것이 다른 사람에게 걸림돌이 되지는 안는가?
(f)이것이 내가 예수님을 섬기는데 조금이라도 방해가 되지는 안는가?
D. 거룩한 생활에 대한 상급:
거룩한 생활에 대한 상급은 금세와 내세에 많다. 거룩한 생활을 함으로 상급을 받은 예는 요셉과 다니엘의 생애에서 볼 수 있다. 이들 두 젊은이들은 옳고 그름에 대한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죄를 짓기를 거부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과 출세와 계시로써 보답함을 보게 된다. 그리스도를 충성스럽게 섬긴 것에 대한 보답은 많다. 거룩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은 보다 나은 건강과 행복한 가정과 물질적 풍요와 변함없는 안정과 평화로운 마음을 소유한다.
거룩함의 영원한 상급은 다음 단원에서 공부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는 그 상급은 매우 많으며 주님은 후하게 삯을 주시는 주인이시라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리라.
제5과 영원한 안전
A. 영원한 안전의 의미
“영원한 안전(Eternal Security)[역자주: 성도의 견인 (Perseverance)이라고도 함]”은 한 번 구원받으면 결코 잃어버림을 당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의미한다. 때때로 “한 번 아들이면 언제나 아들”이라고 진술 한다. 이것이 공인된 교회에서 오랜 세월을 통해 내려온 커다란 논쟁의 근원이 되어 왔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이 문제에 대해 매우 명확하며 단지 성경적 가르침은 우리의 구원의 안전에 관한 것임을 의심할 필요가 없다. “무조건적인” 영원한 안전과 “조건적인” 영원한 안전 사이에는 구별이 있어야 한다. 또한 “예정(Predestination)과 선택(Election)”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이해해야 한다. 일단 이 주제를 우리 마음에 명확히 이해하게 되면 영원한 보증의 문제는 아무런 문제가 될 것이 없다.
B. 예지(FOREKNOWLEDGE)와 예정(FOREORDINATION):
하나님은 전지하시며 영원중에 거하시는 자존자(I Am)이시기에 태초부터 모든 활동과 일들을 보고 계신다. 어떤 것도 그를 놀라게 할 일이 없다. 그는 모든 것을 미리 아신다. 그러나 이것이 인간에게서 행동의 책임을 떼어놓지 않는다. 결정에 대한 책임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비록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행동하기 전에 그의 결정과 행위를 미리 아시지만 인간은 지금도 자유로운 도덕적 행위자이다. 하나님의 예정은 하나님의 예지에 국한된다. 달리 말하면 그는 그가 미리 아시는 것을 예정하신다. 이것은 성경을 명확하게 설명해 준다: “하나님이 미리아 신자들로 또한 그 이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로마서 8:29-30).
C. 선택과 예정(ELECTION AND PREDESTINATION):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the foreknowlege of God)을 따라… 택하심을 입은 자들(Elect)에게 편지하노니” (베드로전서 1:2).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chosen)…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perdestinated)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에베소서 1:4-5).
“선택”이란“택하심을 입었다”는 뜻이다. 성경이 선택함을 받은 것에 대해 말할 때는 하나님에 의해 택하심을 입었다는 뜻이다. 교회의 개개인은 하나님에 의해 선택함을 받았거나 택하심을 입었다. 그러나 이것은 각 사람의 자발적인 결정과 행위를 미리 보시는 하나님의 예지에 따른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선택하신 것에 대한 책임은 바로 개개인의 결정에 달려 있는 것이다.
교회의 개개인은 선택되는 데에 반해, 교회 즉 그리스도의 몸은 예정된 것이다. 하나님의 목적은 그의 이름을 가진 백성을 소유하심으로 성취될 것이다. 음부의 권세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주님을 고대하는 교회가 있게 될 것이다. (마태복음 16:18).
D.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은 통치자시다. 어떤 세력이나 권세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적 행위는 인간의 자유의지적 도덕성에 그분 스스로를 제한하여 왔다. 그것은 하나님의 피조물들이 그들 자신의 의지의 작용으로 그를 경배해야 한다는 하나님의 바램이다. 하나님은 사람과의 교제와 공유(公有)를 구하고 계신다. 만약 인간이 자유로운 선택을 하지 못한다면 이런 일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의 주권이 인간의 자유 선택과 결정권을 손상하도록 허용하시지 않는다.
E. 칼빈주의(CALVINISM):
칼빈주의 교리는 종교 개혁자 존 칼빈(John Calvin)에게서 나왔는데, 그가 처음 그것을 가르쳤다. 그것은, 믿는 자의 “무조건적인 영원한 안전(성도의 견인)”, “한 번 은혜를 입으면 언제나 은혜 안에 있는 것” 또는 “한 번 아들이면 언제나 아들”이라는 개념을 가진 가르침에서 나온 것이다.
칼빈주의 교리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1)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으로 부터 말미암는다. (2)하나님은 특정한 개인들이 구원받도록 예정하셨다. (3)그리스도는 “선택된 자”를 위해 죽으셨다. (4)하나님의 자녀는 불가항력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보호된다. 그러므로 결코 잃어버림을 당할 수 없다. (5)한 번 아들이 되면 언제나 아들이다.
칼빈주의를 입증하기 위해 사용되는 성경구절들은: 요한복음 10:28; 요한복음 17:6; 로마서 8:35; 로마서 11:29; 고린도전서 3:10; 고린도후서 5:10; 빌립보서 1:6; 베드로전서 1:15.
F. 신앙지상주의(ANTINOMIANISM):
이 말은 ‘반대’라 뜻을 가진 헬라어 “anti” 라는 말과 ‘법’이라는 뜻을 가진 “numos"에서 발생했다.
진정한 칼빈주의는 영원한 안전에 대한 오류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 삶의 행실과 표준을 강력하게 가르친다. 진정한 칼빈주의자는, 자신이 구원을 받았다면 결코 실족될 수 없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는 영원에 들어가기까지는 구원 받았는지 받지 못했는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비난받지 않도록 살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지금 무조건적인 영원한 안전의 믿음과 결합된 구원의 보증을 믿는 사람들이 있다. 이 신앙은, 필연적으로 무분별한 세속적 생활에 빠져들게 하는 “극단적 은혜”의 가르침으로 자연히 유도한다. 이것을 믿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율법주의(legalism)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한다. 이것은 “신앙지상주의(도덕률 폐기론)”라고 알려져 있다.
G. 무조건적 영원한 안전은 왜 잘못 되었는가:
1. 이 가르침은 최초의 거짓말이다. 이것은 정확히 사단이 하와에게 한 말이었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창세기 3:4).
2. 이것은 하나님을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분으로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것은,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분이 아니라는 것이 다(사도행전 10:34).
3. 이것은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 수 있다. 복음은, 예수님이 말씀한 “저를 믿는 자마다(whosoever)”(요한복음 3:16)를 위한 것이기보다는 오히려 선택된 소수만을 위한 것이 되어버릴 것이다.
4. 하나님께서 명하신 사실에도 불구하고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닐 것이다(마가복음 16:15).
5. 인간이 자유 의지적 도덕적 행위자가 아니라면, 하나님을 죄에 대해 책임을 지게 만든다. 이것은 있을 수 없다.
6. 이것은 하나님을, 어떤 기회나 선택도 없이 수많은 무고한 희생자들을 정죄하여 마귀의 지옥에 던져 넣는 잔인하고 터무니없는 폭군으로 만들 것이다.
7. 이것은, 불신자의 죄는 정죄하면서 신자의 생활 속에 있는 죄는 눈감아 주므로 하나님을 모순되게 만들 것이다.
8. 영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있다. 예수님이 마음속에 거하신다면 영생 또한 마음에 존재한다. 그러나 그가 깨끗지 못한 그릇(마음)에서 떠나신다면 영생 또한 사라진다.
9. 구원과 관련될 때의 아들의 신분은 양자됨의 법적 용어이다. 그리스도는 아버지의 “독생자”이시다. 따라서 “한번 아들이면 언제나 아들”이라는 말은 여기에 적용되지 않는다.
10. 결국, 성경의 증거는 압도적으로 이 교리에 반대되어 있다.
H. 알미니안주의(ARMINIANISM):
이 교리는 알미니우스(Arminius)의 네델란드 신학자 야곱 헤르만(Jacob Hermann)에 의해 처음 가르쳐졌다. 이 가르침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하나님의 뜻은,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셨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구원받는 것이다. (2)하나님은, 거부되어 영원히 잃어버림을 당할 수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그의 은혜를 베푸신다. (3)하나님은 예지하심으로 믿음과 불신을 근거하여 선택하신다. (4)진정으로 거듭난 사람도 불순종과 죄의 생활로 돌아가면 잃어버림을 당할 수 있다.
알미니안주의를 증명하는데 사용된 성경 구절은: 디모데전서 2:4-6; 요한복음 6:40; 베드로후서 2:21; 히브리서 2:9; 히브리서 6:4-6; 고린도후서 5:14; 히브리서 10:26-30; 디도서 2:11-12; 베드로후서 1:10 외 다른 여러 구절이 있다.
I. 성경적 진리:
알미니안주의적 견해는 우리가 극단적인 율법주의에 기울지 않았음을 성경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타락한 사람은 잃어버린 영혼이다. 우리는 구원을 얻으려면 하나님과 동행해야 한다. 동시에, 영혼을 지켜 주기에 충분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