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두날개 전국 축제
2010년 두날개 전국 축제
김성곤 목사님의 말씀
[본문] 겔 36:26-27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주제] 새 마음을 주노라
{부산세계선교협의회(BWMA) 축사}
모든 사람이 탁월함을 말하는 이 시대이지만, 한국교회는 끊임없는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교회 신뢰도는 최저치에 머물고 있다. 두날개양육시스템은 회복이 요구 되는 이 시대 한국교회의 유일한 대안이며, 재림의 때를 준비하는 것이며, 교회들을 재복음화시키는 것이다. 이미 한국교회의 33%가 두날개국제컨퍼런스를 다녀갔으며, 한국교회의 12%가 6단계집중훈련을 수료하고 두날개 사역을 시작하였다. 앞으로 이 수치는 더욱 많아져야 하며, 그러할 때에 한국교회는 다시금 재림의 때를 준비하는 교회로 일어서게 될 것이다. 한국교회와 열방을 품는 하나님의 전략이 두날개 안에 있기 때문이다.
{설교말씀}
(김성곤 목사님께서) 지난해 전도하여 27명을 교회 등록시켰고, 올해는 37명을 교회에 등록시켜 현재 우리 교회 전도 4등이다. 내가 먼저 전도에 본을 보여야 한다. 꿈에도 소원인 재생산은 "나를 본 받으라!"라고 해야 이루어 지는 것이다.
두날개의 세계비전제자대학을 졸업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제대로 하려면 하루에 평균 3시간 이상을 투자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자는 대량생산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3대 사역(가르치고, 전파하고, 치유하는)을 어디에서든지 온전히 감당할 수 있는 양질의 제자가 탄생할 수 있도록 더욱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으로 수고하여 1년 6개월의 제자대학을 졸업했는데도 성품과 성격 등에서 여전히 변화되지 못 한 모습을 너무도 많이 발견하게 된다.
가장 큰 딜레마는 누구보다도 많이 방언하고, 은사와 능력이 나타나는 사람인데도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전히 부패하고 타락한 성품과 성격으로 도리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다는 것이다.
방언, 은사, 능력이 나타나는데도 사람이 변화되지 못 할 때, 성도는 곁길로 가게 된다. 신비주의나, 은사주의, 이단에 빠지게 된다.
왜 그럴까? 왜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 못 될까?
이것은 굳은 마음을 없애지 않고는 양육이 제대로 안 된다는 것이다.
아무리 은사와 능력이 나타나더라도 굳은 마음을 가진(부드러운 마음을 가지지 못 한) 그는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이 될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의 통치가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는 사람이며, 여호와의 율례가 통하지 않는 사람이다.
(마 7:22-23)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우리 안에 신앙의 자리는 어디인가? 바로 마음이다. 성령과 하나님의 역사가 표출 되는 자리도 마음이다. 그러므로 마음이 굳은 사람은 안 되는 것이다. 말씀의 통치를 받지 않으니 자기 마음대로 자기 생각대로 가는 것이다. 굳은 마음을 제하지 않으면, 아무리 훈련을 받아도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도리어 수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수많은 사람들이 이 사람에게 미혹 되는 것이다. 굳은 마음은 쓴물인데, 한 마음에서 두 물이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마음에서는 단물이나 쓴물 중 하나만 나오는 것이다.
(마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그래서 두날개는 굳은 마음을 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전인적치유수양회'를 통하여 내 안의 쓴뿌리와 견고한 진, 굳은 마음을 먼저 제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이것은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 예수께 복종시키는 것이다.
사단은 가롯 유다에게 예수 팔 생각을 후 불어넣었다. 염려, 근심, 걱정 등의 굳은 마음에서 부패하고 타락한 마음, 열등감, 교만이 나오는 것이다. 하나님은 지금 이 시간도 나를 향하여 '사랑한다' 하시고, 나를 '걸작품'이라고 부르시지만, 사단은 나로 하여금 이 세상의 풍속을 따르게 하고, 부패하고 타락한 부정적인 마음을 품게 만든다.
이 모든 것은 굳은 마음을 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패하고 타락한 마음을 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잠 4: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언제나 양육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양육 받은 것을 적용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변화가 없다. 배우면 즉시 적용해야 한다. 두날개의 탁월함은 그 무엇보다도 적용이 강하기 때문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성령의 충만을 배우면 성령을 받아 방언을 하게 하고, 전도를 배우면 열린모임을 열어 영혼을 살리게 하고, 치유를 배우면 기도하여 병을 고치라고 하는 것이다.
사생결단(死生決斷)으로, 일사각오(一死覺悟)로 기도해야 한다.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으로 온전히 변화하기 위해서는 지정의(知情意, 지성(知性)·감정(感情)·의지(意志))가 달라져야 한다.
1) 지성-생각의 변화
내 안의 부패하고 타락한 생각들을 두루뭉술이 아닌 구체적으로 하나씩 하나씩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대적하여 쫓아내는 선포기도를 해야 한다. 그러나 이보다 더욱 적극적인 방법은 하루 1시간 이상씩 주야로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것이다. 생각 자체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 채우는 것이다. 그리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의 견고한 진이 되어 사단의 공격으로부터 지키신다. 그리하여 우리 모든 생각의 결론 '여호와를 경외'하는 최고의 생각을 품게 되는 것이다.
2) 감성-감정의 변화
부패하고 타락한 감정은 사랑까지도 결국 정욕적인 것으로 이끈다. 사람 중에 순한 사람이 과연 있을까? 모든 사람 안에는 미움, 열등, 교만 등이 감추어져 있을 뿐 부패하고 타락한 사람의 감정에 순한 것이란 없다.
(롬 3: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렘 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우리 주님은 기독교를 창시하셨고, 사도바울은 기독교를 집대성하였다. 사도바울은 율법이 아닌 "믿음으로 죽고, 믿음으로 산다"는 기독교의 핵심, 기독교의 비밀을 끊임없이 말하였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그렇다면 내가 죽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이것은 굳은 마음; 부패하고 타락한 마음을 제한다는 것이다. 굳은 마음을 제하지 않으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살지 않으신다. 그리하면 예수님께서 내 안에서 일하지 않으신다. 예수님께서 내 안에서 역사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굳은 감정; 부패하고 타락한 감정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대적하여 쫓아내라. 그러나 이보다 더욱 적극적인 방법은 '항상 기뻐하고 항상 감사하는' 것이다.
(살전 5:16-18) 16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내가 환경에 따라서 기뻐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한다면, 이는 여전히 내 안에 굳은 감정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즐거움으로 양육하고, 양육 받는 것이 즐거움이 되도록 가르쳐야 한다. 웃음, 기쁨, 평안, 희락이 정말 중요하다.
돈 받쳐 예수 믿고, 시간 받쳐 예수 믿고, 몸 받쳐 예수 믿는데 기쁨이 없다? 이것이 바로 삼류신앙이다.
예수 믿는 것이 최고로 제일로 행복한 일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일류신앙이다.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 안에서 기쁨이 넘쳐야 한다. 항상 잘 되고 있습니다. 항상 기쁩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한번도 '안 됩니다'가 없다. 감정은 성령이 표출되는 것이다.
잘 되고 있습니다. 행복합니다. 기도하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3) 의지의 변화
어느덧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간이 되었다. 올 초에 품었던 것들을 되돌아 보면 지금 어떠한가? 사람이 의지가 참 약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심지가 견고한 사람이 적다는 것이다. 하나님 안에서 '심지가 견고하다'의 반대되는 것이 '완고한 사람'이다. 세상 일은 달려가서 하지만, 하나님의 일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심지가 견고한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그러나 이보다 더욱 적극적인 방법은 금식하며 기도하는 것이다. 금식은 연약한 심지를 굳건한 심지로 바꾸는 탁월한 방법이다. 감리교를 창시한 요한 웨슬리는 한주에 이틀씩 수금에 금식하였다. 최소한 일주일에 하루는 금식하며 기도해야 한다.
예수 믿어도, 세월이 가는데도 성격과 성품의 변화가 없다는 것은 빌어먹을 저주이다.
어느 누구도 자기자신의 성격과 성품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 하지만 행복의 열쇠가 관계에 있는데, 관계의 핵심이 성격과 성품에 달려 있다.
저 사람은 왜 예수 믿어도 변화가 안 될까?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품과 성격의 변화(성화)를 위하여 기도했는가? 방언을 받는 것만큼, 인생의 문제를 해결 받는 것만큼, 아닌 그 이상으로 기도해야 한다.
굳은 마음은 굳은 생각을 만들고, 굳은 의지를 만들어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다. 굳은 것도 이렇게 흐른다.
진정으로 변화를 원한다면, 먼저 굳은 마음을 없애야 한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다. 사단은 언제나 소나기처럼 불화살을 쏘고 있다. 그러므로 오직 여호와의 신으로만 가능하다.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만 가능하다.
(엡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슥 4:6)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미래는 기대와 소망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올 한해 기대만큼 잘 이루었는가? 한해를 마치며 낙심으로 가득 찰 수 있다.
한 목사님께서 한해를 돌아보며 찾아온 낙심과 공허함에 외딴 바닷가를 찾게 되었다. 무심코 바닷가 바위 위를 걷다가 그만 바위 틈에 발이 끼어 넘어졌는데, 뇌진탕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한참이 지났을까. 추적추적 내리는 겨울비에 정신을 차려보니 바위틈에 낀 다리는 부러져 있었고, 머리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하나님 살려주세요. 사람살려." 아무리 외쳐보아도 해가 진 외딴 바닷가를 찾는 이가 없었다. 살아야한다는 생각에 일어서려고 했지만, 부러진 다리로는 도저히 설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두팔로 바위 위를 기면서 차가 있는 도로로 향했다. 출혈은 계속 되고 있었고, 피와 땀에 젖은 옷은 너덜너덜 찢겼으며, 온몸은 상처투성이였다. 사방은 이미 캄캄한 밤이 되었다. 이제 더 이상 갈 수 없다고, 정신까지도 흐릿해지자 죽음이 눈 앞에까지 왔다는 것을 직감하게 되었다.
"하나님만이 나의 소망입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합니다. 나를 용서하소서. 나의 영혼을 받아주소서." 죽음의 순간에 목사님은 낙심과 공허가 어디에서부터 온 것인가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께 대한 관심보다 하나님의 선물,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 하나님이 주시는 것에 더 의지해 온 자신의 모습을 철저하게 회개하게 되었다. 그렇다. 나의 소망 나의 의지는 오직 하나님뿐이시다. 그때였다. 흐릿한 의식 가운데 빛을 본 것이다.
며칠 뒤 목사님은 병원에서 의식을 차리게 되었다. 알고보니 주변을 지나가던 의사 가족이 있었는데, 성령께서 평소에 가지 않는 길로 가라고 하시며 외딴 바닷가로 내려가라는 감동을 주셨다고 했다. 그래서 바닷가에 무엇이 있는가 찾아보려고 했다고.
병원에서 회복해 가며, 목사님은 생각했다. 진작에 구원해 주실 것이라면 빨리 그 의사 가족을 만나게 하실 것이지. 왜 하나님은 몇 시간동안이나 내가 죽음의 공포에 떨게 하셨을까라고. 하나님께서는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한다는 고백을 원하셨던 것이다. 하나님만이 나의 소망이라는 고백 말이다. 첫사랑이자 우리의 본질 말이다.
지금 이 시간도 하나님만이 나의 소망이시다. 나는 온전히 하나님만을 의지한다.
김성곤 목사님의 말씀
[본문] 겔 36:26-27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주제] 새 마음을 주노라
{부산세계선교협의회(BWMA) 축사}
모든 사람이 탁월함을 말하는 이 시대이지만, 한국교회는 끊임없는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교회 신뢰도는 최저치에 머물고 있다. 두날개양육시스템은 회복이 요구 되는 이 시대 한국교회의 유일한 대안이며, 재림의 때를 준비하는 것이며, 교회들을 재복음화시키는 것이다. 이미 한국교회의 33%가 두날개국제컨퍼런스를 다녀갔으며, 한국교회의 12%가 6단계집중훈련을 수료하고 두날개 사역을 시작하였다. 앞으로 이 수치는 더욱 많아져야 하며, 그러할 때에 한국교회는 다시금 재림의 때를 준비하는 교회로 일어서게 될 것이다. 한국교회와 열방을 품는 하나님의 전략이 두날개 안에 있기 때문이다.
{설교말씀}
(김성곤 목사님께서) 지난해 전도하여 27명을 교회 등록시켰고, 올해는 37명을 교회에 등록시켜 현재 우리 교회 전도 4등이다. 내가 먼저 전도에 본을 보여야 한다. 꿈에도 소원인 재생산은 "나를 본 받으라!"라고 해야 이루어 지는 것이다.
두날개의 세계비전제자대학을 졸업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제대로 하려면 하루에 평균 3시간 이상을 투자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자는 대량생산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3대 사역(가르치고, 전파하고, 치유하는)을 어디에서든지 온전히 감당할 수 있는 양질의 제자가 탄생할 수 있도록 더욱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으로 수고하여 1년 6개월의 제자대학을 졸업했는데도 성품과 성격 등에서 여전히 변화되지 못 한 모습을 너무도 많이 발견하게 된다.
가장 큰 딜레마는 누구보다도 많이 방언하고, 은사와 능력이 나타나는 사람인데도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전히 부패하고 타락한 성품과 성격으로 도리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다는 것이다.
방언, 은사, 능력이 나타나는데도 사람이 변화되지 못 할 때, 성도는 곁길로 가게 된다. 신비주의나, 은사주의, 이단에 빠지게 된다.
왜 그럴까? 왜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 못 될까?
이것은 굳은 마음을 없애지 않고는 양육이 제대로 안 된다는 것이다.
아무리 은사와 능력이 나타나더라도 굳은 마음을 가진(부드러운 마음을 가지지 못 한) 그는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이 될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의 통치가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는 사람이며, 여호와의 율례가 통하지 않는 사람이다.
(마 7:22-23)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우리 안에 신앙의 자리는 어디인가? 바로 마음이다. 성령과 하나님의 역사가 표출 되는 자리도 마음이다. 그러므로 마음이 굳은 사람은 안 되는 것이다. 말씀의 통치를 받지 않으니 자기 마음대로 자기 생각대로 가는 것이다. 굳은 마음을 제하지 않으면, 아무리 훈련을 받아도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도리어 수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수많은 사람들이 이 사람에게 미혹 되는 것이다. 굳은 마음은 쓴물인데, 한 마음에서 두 물이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마음에서는 단물이나 쓴물 중 하나만 나오는 것이다.
(마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그래서 두날개는 굳은 마음을 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전인적치유수양회'를 통하여 내 안의 쓴뿌리와 견고한 진, 굳은 마음을 먼저 제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이것은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 예수께 복종시키는 것이다.
사단은 가롯 유다에게 예수 팔 생각을 후 불어넣었다. 염려, 근심, 걱정 등의 굳은 마음에서 부패하고 타락한 마음, 열등감, 교만이 나오는 것이다. 하나님은 지금 이 시간도 나를 향하여 '사랑한다' 하시고, 나를 '걸작품'이라고 부르시지만, 사단은 나로 하여금 이 세상의 풍속을 따르게 하고, 부패하고 타락한 부정적인 마음을 품게 만든다.
이 모든 것은 굳은 마음을 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패하고 타락한 마음을 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잠 4: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언제나 양육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양육 받은 것을 적용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변화가 없다. 배우면 즉시 적용해야 한다. 두날개의 탁월함은 그 무엇보다도 적용이 강하기 때문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성령의 충만을 배우면 성령을 받아 방언을 하게 하고, 전도를 배우면 열린모임을 열어 영혼을 살리게 하고, 치유를 배우면 기도하여 병을 고치라고 하는 것이다.
사생결단(死生決斷)으로, 일사각오(一死覺悟)로 기도해야 한다.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으로 온전히 변화하기 위해서는 지정의(知情意, 지성(知性)·감정(感情)·의지(意志))가 달라져야 한다.
1) 지성-생각의 변화
내 안의 부패하고 타락한 생각들을 두루뭉술이 아닌 구체적으로 하나씩 하나씩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대적하여 쫓아내는 선포기도를 해야 한다. 그러나 이보다 더욱 적극적인 방법은 하루 1시간 이상씩 주야로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것이다. 생각 자체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 채우는 것이다. 그리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의 견고한 진이 되어 사단의 공격으로부터 지키신다. 그리하여 우리 모든 생각의 결론 '여호와를 경외'하는 최고의 생각을 품게 되는 것이다.
2) 감성-감정의 변화
부패하고 타락한 감정은 사랑까지도 결국 정욕적인 것으로 이끈다. 사람 중에 순한 사람이 과연 있을까? 모든 사람 안에는 미움, 열등, 교만 등이 감추어져 있을 뿐 부패하고 타락한 사람의 감정에 순한 것이란 없다.
(롬 3: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렘 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우리 주님은 기독교를 창시하셨고, 사도바울은 기독교를 집대성하였다. 사도바울은 율법이 아닌 "믿음으로 죽고, 믿음으로 산다"는 기독교의 핵심, 기독교의 비밀을 끊임없이 말하였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그렇다면 내가 죽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이것은 굳은 마음; 부패하고 타락한 마음을 제한다는 것이다. 굳은 마음을 제하지 않으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살지 않으신다. 그리하면 예수님께서 내 안에서 일하지 않으신다. 예수님께서 내 안에서 역사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굳은 감정; 부패하고 타락한 감정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대적하여 쫓아내라. 그러나 이보다 더욱 적극적인 방법은 '항상 기뻐하고 항상 감사하는' 것이다.
(살전 5:16-18) 16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내가 환경에 따라서 기뻐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한다면, 이는 여전히 내 안에 굳은 감정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즐거움으로 양육하고, 양육 받는 것이 즐거움이 되도록 가르쳐야 한다. 웃음, 기쁨, 평안, 희락이 정말 중요하다.
돈 받쳐 예수 믿고, 시간 받쳐 예수 믿고, 몸 받쳐 예수 믿는데 기쁨이 없다? 이것이 바로 삼류신앙이다.
예수 믿는 것이 최고로 제일로 행복한 일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일류신앙이다.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 안에서 기쁨이 넘쳐야 한다. 항상 잘 되고 있습니다. 항상 기쁩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한번도 '안 됩니다'가 없다. 감정은 성령이 표출되는 것이다.
잘 되고 있습니다. 행복합니다. 기도하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3) 의지의 변화
어느덧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간이 되었다. 올 초에 품었던 것들을 되돌아 보면 지금 어떠한가? 사람이 의지가 참 약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심지가 견고한 사람이 적다는 것이다. 하나님 안에서 '심지가 견고하다'의 반대되는 것이 '완고한 사람'이다. 세상 일은 달려가서 하지만, 하나님의 일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심지가 견고한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그러나 이보다 더욱 적극적인 방법은 금식하며 기도하는 것이다. 금식은 연약한 심지를 굳건한 심지로 바꾸는 탁월한 방법이다. 감리교를 창시한 요한 웨슬리는 한주에 이틀씩 수금에 금식하였다. 최소한 일주일에 하루는 금식하며 기도해야 한다.
예수 믿어도, 세월이 가는데도 성격과 성품의 변화가 없다는 것은 빌어먹을 저주이다.
어느 누구도 자기자신의 성격과 성품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 하지만 행복의 열쇠가 관계에 있는데, 관계의 핵심이 성격과 성품에 달려 있다.
저 사람은 왜 예수 믿어도 변화가 안 될까?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품과 성격의 변화(성화)를 위하여 기도했는가? 방언을 받는 것만큼, 인생의 문제를 해결 받는 것만큼, 아닌 그 이상으로 기도해야 한다.
굳은 마음은 굳은 생각을 만들고, 굳은 의지를 만들어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다. 굳은 것도 이렇게 흐른다.
진정으로 변화를 원한다면, 먼저 굳은 마음을 없애야 한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다. 사단은 언제나 소나기처럼 불화살을 쏘고 있다. 그러므로 오직 여호와의 신으로만 가능하다.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만 가능하다.
(엡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슥 4:6)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미래는 기대와 소망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올 한해 기대만큼 잘 이루었는가? 한해를 마치며 낙심으로 가득 찰 수 있다.
한 목사님께서 한해를 돌아보며 찾아온 낙심과 공허함에 외딴 바닷가를 찾게 되었다. 무심코 바닷가 바위 위를 걷다가 그만 바위 틈에 발이 끼어 넘어졌는데, 뇌진탕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한참이 지났을까. 추적추적 내리는 겨울비에 정신을 차려보니 바위틈에 낀 다리는 부러져 있었고, 머리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하나님 살려주세요. 사람살려." 아무리 외쳐보아도 해가 진 외딴 바닷가를 찾는 이가 없었다. 살아야한다는 생각에 일어서려고 했지만, 부러진 다리로는 도저히 설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두팔로 바위 위를 기면서 차가 있는 도로로 향했다. 출혈은 계속 되고 있었고, 피와 땀에 젖은 옷은 너덜너덜 찢겼으며, 온몸은 상처투성이였다. 사방은 이미 캄캄한 밤이 되었다. 이제 더 이상 갈 수 없다고, 정신까지도 흐릿해지자 죽음이 눈 앞에까지 왔다는 것을 직감하게 되었다.
"하나님만이 나의 소망입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합니다. 나를 용서하소서. 나의 영혼을 받아주소서." 죽음의 순간에 목사님은 낙심과 공허가 어디에서부터 온 것인가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께 대한 관심보다 하나님의 선물,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 하나님이 주시는 것에 더 의지해 온 자신의 모습을 철저하게 회개하게 되었다. 그렇다. 나의 소망 나의 의지는 오직 하나님뿐이시다. 그때였다. 흐릿한 의식 가운데 빛을 본 것이다.
며칠 뒤 목사님은 병원에서 의식을 차리게 되었다. 알고보니 주변을 지나가던 의사 가족이 있었는데, 성령께서 평소에 가지 않는 길로 가라고 하시며 외딴 바닷가로 내려가라는 감동을 주셨다고 했다. 그래서 바닷가에 무엇이 있는가 찾아보려고 했다고.
병원에서 회복해 가며, 목사님은 생각했다. 진작에 구원해 주실 것이라면 빨리 그 의사 가족을 만나게 하실 것이지. 왜 하나님은 몇 시간동안이나 내가 죽음의 공포에 떨게 하셨을까라고. 하나님께서는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한다는 고백을 원하셨던 것이다. 하나님만이 나의 소망이라는 고백 말이다. 첫사랑이자 우리의 본질 말이다.
지금 이 시간도 하나님만이 나의 소망이시다. 나는 온전히 하나님만을 의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