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인 거듭남 - 제5장 회개
제5장 회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이와 같이 망하리라."(눅 13:3)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행 2:38)
3장에서 우리는 회개를 죄와 옛 성품에 대한 죽음이라고 했다. 4장에서는 회개가 신생에 필수적이며 물침례와 성령의 선물과 함께 동반 되어야 한다고 했다(행 2:38). 반드시 죽음이 있어야 신생이 있을 수 있다. 이것은 죽음과 연합하는 회개와 물과 성령에 연합하는 신생, 이 두 가지를 확증해 준다.
회개란 무엇인가
회개란 헬라어로는 메타노에오(metanoeo)인데, 문자적인 의미는 '이후로 깨닫다', '그러므로 마음과 삶의 목적이 변화되는 것을 나타낸다'. 신약에서는 이 단어가 항상 보다 나은 것을 위한 변화를 가리켰다.
회개에는 세 가지 필연적인 면들이 담겨 있다. 지적인 변화(관점의 변화), 감정적 변화(감정의 변화), 의지적인 변화(자발적인 목적의 변화). 이것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성경의 계명과 일치한다(막 12:30). 기본적으로 회개는 마음과 뜻과 방향의 변화이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이방인을 위한 복음 전도자로 선택하신 이유는 이방인들로 하여금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였다(행 26:18). 바울은 모든 사람에게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행하라"고 전파하여 이 사명을 다하였다(행 26:20). 교회의 기본 교리 중 하나는 "죽은 행실을 회개하는 것"이다(히 6:1). 성경이 전하는 바는, 회개란 죄로부터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것이다.
넓은 의미로 회개는 물침례와 성령의 선물을 포함하여 죄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설 때 일어나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고넬료와 그의 식솔들이 성령을 받고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다 함을 들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라고 했는데 그것은 회개가 그 모든 거듭남의 과정을 포함한다는 것을 말해 주는 한 예이다(행 11:18). 그러나 대부분의 말씀에서는 이 단어를 물침례와 성령침례에 선행(先行)하여 죄로부터 돌이켜 하나님께 나아가는 첫번째 단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좀 더 제한적인 방법으로 사용한다(행 2:38). 이러한 의미에 있어서 회개는 마음과 태도, 신념과 방향의 근본적인 변화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자발적인 행위이며, 단지 후회나 사죄(謝罪)의 감정만이 아닌 적극적인 삶의 전환(轉換)이다. 또한 회개는 도덕적 결심(決心)이나 개혁(改革)이상의 것으로서 영적 결단과 영적인 변화를 말하는 것이다.
회개는 첫번째 믿음의 행위이다. 그리고 몇 가지 중요한 것들을 의미하고 있는데 그것은 죄의 인식과 죄의 고백, 죄에 대한 통회(痛悔), 그리고 죄 용서함을 받으려는 결단이다.
죄를 인식(認識)함
사람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아야 죄를 회개할 수 있다. 예수님은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막 2:17; 눅 5:32)라고 말씀하셨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 5:3). 하나님 없이는 우리 모두 영적으로 극빈자이다. 그러나 오직 자신의 가난함을 깨닫는 자가 하나님을 찾고 천국의 부요함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사람은 자신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이 필요함을 인정하게 될 때 회개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죄를 자백(自白)함
일단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으면 그는 하나님께 죄인임을 자백해야 한다. 하나님은 이미 모든 것을 아시지만 자기 자신과 하나님께 솔직한 자백을 하기를 원하신다.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自服)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잠 28:13). 사람들이 요한에게서 '회개의 침례'를 받을 때 그들은 자신들의 죄를 자복(自服)하고 물에 들어갔다(막 1:4-5). 회심 이후에 죄를 짓는다면 자백하여 죄를 회개하여야 한다.(요일 1:9).
우리는 하나님께 직접 죄를 자백한다. 그분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기 때문이다(사 43:25; 막 2:7). 사람이신 예수님이 우리의 중보자이며 대제사장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땅에서 다른 중보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딤전 2:5; 히 4:15-16).
자백도 죄만큼이나 공개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사람이 자기가 기억하고 있는 모든 죄들을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할지라도 자백이라는 것이 반드시 생애 전체를 통틀어 범했던 모든 죄를 낱낱이 열거하라는 뜻은 아니다. 자백(自白)의 본 뜻은 자신이 죄인임을 자신과 하나님 앞에서 인정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며 앞으로 죄를 이길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이다.
죄를 통회(痛悔)함
자백할 때 통회가 있어야 하는데, 이것은 범한 죄에 대하여 진정으로 슬퍼하는 것이다. 죄인은 잘못 행한 것에 대해 후회하는 감정을 느껴야 하고 죄에 대하여 상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시 51:17).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후 7:10).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죄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은 하지만 진정으로 회개하지는 않는다. 때때로 어떤 사람들은 자신에 대하여 후회감을 느끼고 자신의 상태에 혼란을 느낄 때 제단에서 울부짖는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하나님께 전적으로 드리려고는 하지 않는다.
진정한 회개는 경건한 슬픔에서 나오는데, 경건한 슬픔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죄를 후회하도록 만들며, 그의 죄악된 생활 형태를 바꾸기로 작정하게 한다. 그리고 삶을 바꾸는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죄를 버리기로 결정함
잠언 28:13의 말씀대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얻기 원한다면 죄를 자복(自服)하고 버려야 한다. 그리고 실제로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나가야 한다. 회개는 죄에 대해 슬픔을 갖는 것 이상의 일이다. 그것은 또한 죄에 대하여 무엇인가 하겠다는 결단을 내포하고 있다. 회개는 죄를 자백하는 것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또한 하나님의 도우심을 통하여 죄를 버린다는 뜻이다.
침례 요한은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눅 3:7-8)고 말했다. 침례 요한은 그에게 나아오는 많은 사람들이 먼저 회개의 증거를 보여 주기 전에는 침례 주기를 거절했다. 그에게 있어서 회개는 정신적인 결단 이상의 것이었다. 바울도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행하라"(행 26:20)고 전파하였다. 진정한 회개는 사람의 행동에 실제적인 변화를 일으킨다.
이것은 회개가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증명해 보일 수 있는 어떤 충분한 시간을 의미한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가 죄를 버리고자 진정으로 하나님을 의뢰(依賴)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아신다. 그래서 회개와 성령을 받는 것은 한 순간에 일어날 수 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어떤 이는 성령을 받은 이후에 하나님을 이같이 의뢰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최소한 그들이 성령을 받던 그 순간에는 진정으로 죄를 버리고자 결단했었던 것이다.
회개와 배상(賠償)
죄를 버리는 것의 일부(一部)로써, 진정으로 회개한 사람은 과거에 다른 사람에게 저질렀던 죄로 인한 결과를 가능한 범위까지는 바로 잡으려고 할 것이다. 이것을 배상(賠償)이라고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배상할 때 하나님 앞에서 용서의 진정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회개와 감정
회개는 인간의 감정적인 면에 영향을 주게 된다. 왜냐하면 회개는 경건한 슬픔과 죄책감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회개할 때 보통 눈물을 흘리게 되고 이러한 감정이 외적으로 다른 여러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단지 감정을 외적으로 나타내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회개라고 말할 수 없다. 하나님은 물침례를 통하여 영원히 그의 죄를 처리하시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에게 성령을 주시기를 원하신다. 어떤 사람들은 회개의 기쁨을 맛볼 때 그 곳에서 멈춰버린다. 그러나 그들은 또다른 기쁨의 체험인 물침례에까지 나아가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을 찬양하는 중에 성령을 받게 될 것이다.
회개의 근원
회개는 구원의 일부이다. 그래서 회개할 수 있는 기회와 능력은 하나님의 은혜에서 온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사람을 인도하여 회개케 한다(롬 2:4). 생명을 얻는 회개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행 11:18; 딤후 2:25). 하나님만이 회개를 일으키는 슬픔을 주실 수 있다(고후 7:10). 누군가 회개할 때 그는 단순히 하나님의 보편적인 부르심에 응답하여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단지 회개했다고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회개는 구원얻을 자격을 갖게 해 주며 회개와 함께 구원의 역사가 시작된다. 그러므로 회개는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온다. 사람은 하나님의 임재와 그분의 말씀과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강조하는 상황 속에서 회개에 이르게 된다.
예수님은 "그(성령)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 16:8). 회개는 죄를 깨닫게 하는 성령의 능력으로부터 온다.
우리는 사람들을 회개하게 하기 위해 좋은 말로 설득하는 기술이나 두려움을 강조하는 방법을 사용하기보다 영적 분위기를 마련하는데 유의해야 한다. 말로 설득하는 것이나 경고하는 것은 다 적절한 때가 있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만이 인간을 그 분 자신에게로 이끄실 수가 있기 때문에 우리의 가장 중요한 관심은 성령이 완전히 자유롭게 역사하실 수 있도록 하는데 있어야 한다(요 6:44).
성령이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 속에 심어 주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을 회개하도록 하는 능력을 갖는다. 선포된 말씀이 사람으로 하여금 그들의 죄를 깨닫게 하고 하나님을 필요로 하게 만든다. 우리가 강조해야 할 것은 사람이 만든 아이디어나 기술에 대한 것이 아니라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에 관한 것이다.
사역자들은 죄에 대하여 설교하고 그것을 정의(定意)하여 죄인이 자신의 죄를 깨닫도록 만들어야 한다. 나단 선지자는 다윗의 죄를 상세하게 지적했고 세례 요한도 헤롯의 죄를 지적하였다. 요한은 세리들에게 "정한 세(稅) 외에는 늑징(勒徵)치 말라"고 했고 군병들에게는 "사람에게 강포(强暴)하지 말며 무소(誣訴)하지 말고 받는 요(料)를 족한 줄로 알라"고 말했다(눅 3:12-14).
말씀이 죄를 드러내는 곳에서는 우리도 분명하게 드러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 하나님은 그 말씀을 각 개인의 마음 속에 심으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믿음이 생기며(롬 10:17), 믿음은 사람을 회개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도록 해 준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본다면 회개는 인간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며, 인간의 관점에서 본다면 회개는 하나님을 믿고서 나타내는 최초의 자발적 행위이다.
회개의 명령
회개는 구원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성경은 모든 사람에게 회개하라고 명하고 있다.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족속아, 나는 너희 각 사람이 한 일에 따라서 너희를 심판하겠다. 너희는 회개하고, 너희의 모든 범죄에서 떠나 돌이켜라. 그렇게 하면, 죄가 장애물이 되어 너희를 넘어뜨리는 일이 없을 것이다. 너희는, 너희가 지은 죄를 모두 너희 자신에게서 떨쳐내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하여라.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왜 죽고자 하느냐? 죽을 죄를 지은 사람이라도, 그가 죽는 것을 나는 절대로 기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너희는 회개하고 살아라.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겔18:30-32, 새번역)
“너는 그들에게 전하여라.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내가 내 삶을 두고 맹세한다.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고, 오히려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한다. 너희는 돌이켜라. 너희는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나거라.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는 왜 죽으려고 하느냐?' 하여라.” (겔33:11, 새번역)
이러한 구절들은 하나님의 동정, 회개의 필요성, 죄에서 하나님께로 돌이킨다는 회개의 정의를 생생하게 나타내고 있다.
침례 요한은 강력히 회개를 전파했고(마 3:1-11; 막 1:4-5; 눅 3:3-9) 예수님 역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 4:17)고 선포하셨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눅 13:3, 5).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계시는 동안 그는 그의 제자들을 회개를 전파하라고 파송하셨으며(막 6:12) 승천하시기 직전에 다시금 그들에게 회개를 전파하라고 명령하셨다(행 눅 24:47). 베드로도 회개를 전파했고(행 2:38; 3:19) 바울 또한 마찬가지였다(행 26:20).
구약 시대의 이방인들은 모세의 율법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방인들이 모세의 율법에 있는 모든 계명을 지킬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양심과 자연법의 기준에 의해 그들을 심판하셨고 심지어 그 근거 위에서 그들의 죄를 찾으셨다(롬 2:12-16). 신약 시대에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같은 근거 위에 있다. 모든 사람들은 회개하라는 똑같은 부르심을 듣는다.
회개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회개의 순간에 인간은 하나님께서 그의 삶 속에서 역사하시도록 허락하기 시작한다. 인간은 죄로부터 돌이켜 떠나 하나님께 나아가기로 결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께서 그를 돌이키시도록 허락한다. 인간이 죄에서 돌이킬 때 하나님은 인간이 죄악된 습관과 욕망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도록 하실 수 있다. 인간이 하나님께로 돌아설 때 하나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 자신과 개인적인 관계를 시작하도록 허락하신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은 때부터 시작하여 죄는 인간을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켰는데, 이는 죄를 지은 인간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회개는 죄가 만든 담을 헐어 버리고 인간과 하나님이 인격적인 관계를 시작하도록 허락한다. 그리하여 회개는 물침례를 받고 성령의 내적 충만함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갖게 해 준다.
물과 성령의 침례와 회개와의 관계
회개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첫 단계로서 적극적인 감정을 느끼게 하고 제한되고 일시적으로 죄를 끊는 힘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회개 자체만으로 구원의 완전한 능력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물침례와 성령침례 두 가지가 회개에서 시작된 구원의 역사를 완성하는데 필수적이다. 침례를 받을 때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기록된 죄와 그 형벌을 제거하심으로써 죄를 씻어 주신다.
용서(forgive)와 죄사함(remit)이란 두 단어가 하나의 헬라어 아페시스(aphesis)에서 유래하여, 용서와 죄사함은 같은 용어이며 용서(또는 죄사함)는 회개와 물침례와 함께 이루어진다. 우리는 두 가지 경험을 분리해서는 안된다.
회개하므로 하나님께서는 개인의 삶 속에 현재 역사하는 죄의 통치를 파괴하시며 하나님과의 개인적 관계를 방해하는 장애물을 제거하신다. 물침례를 받음으로 하나님은 죄에 대한 적법한 기록을 제거하시고 그 죄에 대한 형벌 즉 사망을 없이 하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회개할 때 현재의 죄의 결과를 처리하시고 물침례를 받을 대 미래의 죄의 결과를 처리하신다. 둘 다 용서함을 위해 필수적이다.
회개는 또한 성령침례 없이는 불충분하다. 회개에는 죄를 이기는 일시적이고 제한된 능력만이 나타난다. 영구적이고 제한없는 능력은 오직 성령침례를 받은 후에 오게 된다(행 1:8). 구약의 성도들은 회개했지만 이것이 그들에게 영원히 죄를 이기는 능력을 가진 거듭난 성품은 주지 못했다. 모세의 율법도 인간의 정신도 죄를 이기는 능력을 줄 수는 없다(롬 7:15-25). 오직 성령만이 죄를 이기는 능력을 부여해 주며 율법이 가르치긴 했으나 줄 수는 없었던 의(義)를 성취할 수 있는 능력을 성령이 부여해 준다(롬 8:2-4). 회개시 하나님은 죄의 지배를 떨쳐 버릴 수 있는 초기적인 능력을 주시지만 내주하시는 성령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생명을 매일 삶의 실체로 만들어 주신다(롬 8:10, 13).
예수께서는 더러운 귀신이 사람을 떠났을 때 쉴만한 곳을 찾아다닌다고 가르쳐 주셨다(눅 11:24-26). 단지 죄악을 쫓아낸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죄악 대신 선한 것으로 대치해야 한다. 단지 어느 한 시점에서 자신의 생활을 깨끗케 하고 정돈한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계속해서 이와 같이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받아야 한다. 많은 종교 단체는 회개와 도덕의 필요성을 역설하지만 성령침례는 전하지 않는다. 성령침례가 기독교를 실패하지 않고 성공하게 만드는 능력을 제공한다. 성령은 공허한 삶을 채워 주고 깨끗하게 유지시키며, 돌아오는 마귀를 물리친다.
사역을 위한 지침
(1)우리는 성령의 감동하심을 강조해야지, 교묘한 방법이나 기술을 강조해서는 안된다. 특이한 말투나 몸짓으로는 회개를 대신할 수 없다.
(2)우리는 간구하는 신자의 영적인 상태를 파악해야 한다. 그가 온전히 회개하지 않았다면 너무 서둘러 그로 하여금 회개는 충분하다고 하고서 성령 받을 것을 기대하도록 해서는 안된다. 일단 그가 회개했다면 우리는 그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성령에 대해 믿음을 갖도록 격려할 수 있다.
(3)우리는 우리 자신을 간구하는 사람의 위치에 놓고 그와 함께 기도할 수 있다.
(4)간구하는 사람이 더이상 진전을 보이지 못하는 것같이 보이면 거기에는 몇 가지 문제들이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그러한 각각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마다 다른 접근 방법을 요한다. 그들의 문제점은 회개가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였거나, 하나님께 전적으로 굴복하기를 거부한다거나, 열망하는 마음이 결여되었거나(영적인 굶주림, 갈망함, 자신의 영적 위급함을 느낌), 경건한 슬픔이 부족하거나, 믿음의 부족 등일 수 있다.
(5)우리는 어떻게 방언을 말하는지 그 방법을 가르치려고 해서는 안된다. 이 표적은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나오게 된다. 단지 그가 그의 혀를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고 강조할 것이 아니라 그가 그의 모든 마음과 생활을 하나님께 굴복시켜야 함을 강조해야 한다. 간구하는 사람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완전히 그분께 모든 것을 집중하고 믿음을 가질 때 그는 그의 혀를 하나님께 맡길 수 있게 될 것이다.
(6)간구하는 사람을 마구 흔들거나 손바닥으로 때린다든지, 그에게 어떤 행동을 하도록 강요하거나, 모순된 충고를 하거나, 또는 그를 화나게 하는 등, 정신을 혼란케 하는 행동은 피하자.
간구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회개할 준비가 되었다면 그는 짧은 시간 안에 성령을 받게 될 것이다. 그가 준비되어 있지 못하다면 그가 회개나 혹은 그의 믿음에 뭔가 부족한 것이 있는 것이다. 그러한 경우 제단 사역자는 영적으로 민감하고 관련된 지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래야 간구하는 사람이 이러한 장애들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것이다.
회개와 그리스도인
우리가 거듭난 이후에 짓는 죄에 대해서는 그리스도께 우리의 죄를 자백하므로 용서함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있다(요일 1:9; 2:1). 침례는 오직 하나밖에 없으며 침례 받기 전에 지은 죄이든 받은 후에 지은 죄이든 회개한 모든 죄에 대하여 죄사함은 유효하기 때문에 다시 침례를 받을 필요는 없다. 우리가 진정으로 회개하는 한 오늘의 삶 속에 하나님의 용서하심에는 제한이 없다.
하나님은 우리가 진실한 회심자를 용서하기를 바라신다. 그러면 그는 우리에게도 그와 같은 용서를 베푸실 것이다(마 18:21-22; 눅 17:3-4).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진심으로 우리의 죄를 뉘우치고 정직하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보다 나은 생활을 하고자 결단하는 것이다.
중생한 신자의 첫번째 원칙은 "죄를 범치 말라"는 것이다(요일 2:1). 우리가 죄를 범한다면 죄를 자백하고, 용서함을 얻고, 그러므로 정죄(定罪)함이 없음을 받아들여야 한다(롬 8:1). 그러나 성령이 죄를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시기 때문에 항상 똑같은 죄를 짓고 반복해서 회개하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 회개는 기초가 되는 교리이지만 우리는 항상 이 기초적인 단계에만 머물러서는 안된다.
회개는 항상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한 것이지만 어떤 시점에서는 더이상 죄를 짓지 않으므로 회개할 필요가 없을 만큼 신앙이 성숙해져야 한다.
회개를 강조해야 할 필요성
잃어버린 영혼이 구원받기를 기대한다면 성령의 기름 부으심으로 회개를 전하고 가르쳐야 한다. 전도자들은 죄를 말하고 회개를 설명하는데 분명해야 한다. 교역자들은 실제로 회개하였는지 확실히 하기 위해 침례를 받고자 하는 사람들과 상담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회개가 없다면 침례는 헛된 상징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진정한 회개가 없이는 결단코 성령침례가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성령은 영적으로 부정한 성전에는 들어가시거나 거하시지 않을 것이다(고후 6:17-7:1). 먼저 죄에서 돌이키지 않고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없다. 우리는 회개와 성결(聖潔)이 없는 모든 영적 체험은 무가치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축복은 좋아하는 것 같은데 불경건하고 성별되지 못하며 세속적인 삶을 산다. 하나님께서 신속히 심판하시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심판을 모면했다고 생각하여(전 8:11) 하나님께서 인자를 베푸시고 오래 참으시며 인내하심으로 그들이 회개할 기회를 갖도록 하신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롬 2:4; 벧후 3:9). 회개와 회개의 삶을 사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절대 필요한 것이다.
결론
회개는 죄로부터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르는 믿음의 첫번째 반응이다. 회개는 죄를 인정하고 죄를 자백하고 죄를 통회(痛悔)하고 죄를 용서받기를 결심하는 것이다. 그것은 죄에 대하여 죽는 것이며 하나님과 영원한 관계를 가질 수 있다.
물침례는 옛 사람을 장사함으로써 영구히 죄로부터 돌아서는 것이며, 성령침례는 매일 죄를 이길 수 있는 능력과 함께 새로운 성품을 부여하여 영원히 하나님께로 돌아서게 만든다. 회개 없이는 물침례가 아무런 가치가 없으며 회개하지 않고서는 성령침례를 받을 수 없다.
우리가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기를 원한다면 회개의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도 구원받는 것을 보기를 원한다면 진정한 회개를 전파하고 가르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