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신으로 나타나신 하나님
육신으로 나타나신 하나님
제1과 하나님은 인격체이시다
A. 인격체(PERSON)
“인격체”라는 단어를 정의하는 데는 어느 정도 이해의 차이가 있다. 어떤 사람은 사람이란 육신 혹은 사람의 용모 즉, 가시적으로 나타난 모습을 뜻한다고 이해한다. 만약 우리가 이 정의를 받아들인다면, 그때는 분명 하나님 아버지는 인격체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영이시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어떤 사람들은 인격체는 인품, 개체, 자아의식, 자기 결정 등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이 정의를 받아들인다면 하나님 아버지는 한 인격체이시다. 그러나 이것이 결코 신성 안에서 둘 내지 셋의 위격들을 이루지는 않을 것이다. 오직 한 분 하나님만이 계시며 오직 하나의 신적 인격(=神格)만이 존재한다. 이 인격은 하나며 구약의 여호와와 신약의 예수는 같은 한 인격이시다.
B. 하나님의 인격체
구약에서든 신약에서든 인간은 하나님과 교제를 나눌 수 있다. 인간은 하나님과 대화하며 그의 조물주와 교통할 수 있다. 우리는 절대로 하나님을 단지 비인격적인 힘이나 영향력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해 죽으시기 위해 육신으로 자신을 나타내신 인격적인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그는 인격을 가지고 계시지만 여전히 한 분 하나님이시며 한 분이신 신적 인격체(Divine Person)이시다.
C. 인간은 육 ․ 혼 ․ 영으로 되어 있지만 한 인격체이다
아버지, 아들, 성령이라는 명칭은 성경에서 자유롭게 사용되었으나 이것이 세 인격 혹은 세분 하나님을 뜻하지 않는다. 성경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한 인격체라고 선언한다.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 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요한1서 5:7-8)
이 진리를 이해하기 위해 사람에 대해 생각해 보자. 사람은 영과 혼과 육을 가지고 있지만 한 사람이며 하나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몸과 혼과 영이 세 인격을 만들지 못하듯이 더 이상 세 개의 칭호가 세 인격을 만들지 못한다. 골로새서 1:3에서 우리는 이 말씀을 읽을 수 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 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주목하라: “하나님 곧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로마서 15:6),” 이 말이 두 인격을 뜻하고 있나?
D. 육신으로 나타나신 하나님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하나님)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디모데전서 3:16)
미국의 한 성경(상술 성경)은 기록하기를: “그(하나님)는 인간의 육신으로 가시화 되었다.”라고 한다.
이 진리는 오직 계시에 의해 이해될 수 있는 핵심 구절 중 하나이지만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신성을 깨닫게 된다면 이 진리도 틀림없이 이해되어질 것이다.
과거에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신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나타내셨다. 창조시에,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현현(Theophanies)으로, 성막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어느 정도 나타내셨고 인간은 하나님께 대한 어떤 지식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나타나신 하나님을 말씀하는 한 성경에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므로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이 되신다는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지식을 가진다.
이 사상 위에 요한복음 17:6을 설명한 아담 클라크(Adam Clarke)의 주석을 인용해 보자. “하나님의 신성은 창조의 작품들에 의해 조금 알려졌으며 모세의 계시에 의해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하나님의 완전한 출현, 그의 성격, 그의 속성은 오로지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하여 나타났다.” (아담 클라크)
E. 경건의 비밀
경건의 비밀(디모데전서 3:16)은 자신을 육신으로 나타내신 하나님이다. 불법의 비밀(데살로니가후서 2:7)은 자신을 하나님으로 나타내는 인간이다. 이들은 성경에서 서로 대조되며 인간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한다. 경건의 비밀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이 불법의 비밀을 받아들여야 한다.
F. 로고스(LOGOS)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매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한복음 1:1)
“말씀”은 헬라어 “로고스(Logos)”에서 번역된다. 이 헬라어 “로고스”는 내부의 사상의 표현뿐만 아니라 그 사상 자체를 의미한다. 이 말은 번역하지 말고 그대로 두는 것이 더 낫겠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로고스”의 뜻을 정의해 보도록 하자. 로고스의 뜻은 신성(神性)이 말로 표현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바꿔 말하면, “로고스”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표현이다. 스코필스 성경(The Schofield Bible)은 “신성이 말하여지다”라고 말한다.
마치 사람의 생각과 그 생각의 표현이 그 사람 자신에게서 따로 분리될 수 없고 다른 인격이 아닌 바로 자신의 존재의 본질적인 부분에 있는 것처럼, 로고스도 하나님과 함께 있다. 또한 다른 인격이라는 그릇된 이론에서 보호하기 위해, 감동 받은 사도에 의해 기록된 성경은 명확하게 기술하고 있다: 로고스는 하나님이셨다.
G. 예수 그리스도의 이중적 속성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이중적인 속성을 소유하셨다: 신성과 인성. 예수님은 두 위격도 아니며 두 인격체를 소유한 것도 아니었다는 것에 주의하라. 그러나 그는 신인(神人)이시며 성육신한 말씀이며 육신을 입고 나타나신 하나님이셨다. 인간으로서 그는 아들(the Son)이셨고 하나님으로서 아버지(the Father)셨다. 아들로서 그는 여러 번 사람처럼 말씀하셨고 행동하셨다. 아버지로서 그는 여러 번 하나님처럼 말씀하시고 행동하셨다. 일단 이 진리가 이해되면 문은 열리고 진실로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분명하게 이해하게 된다: 그리스도 안에 계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여호와-구원자
H.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아들이 아니다
“영원한 아들(Eternal Son)”이란 이론은 성경적이지 못하다. 이 교리는 삼위일체 교리의 결과로 나온 것이며 신성 안에 두 번째 위가 있다고 가르친다. 육신으로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는 나신 바 된 아들(the begotten Son,요한복음 3:16)이셨다. "나신 바 되다(begotten)"라는 말과 "영원하다(eternal)"라는 말은 서로 아주 반대되며 대립되는 뜻을 나타낸다.
사도행전 13:33에 대한 아담 클라크의 주석을 인용해 보자 -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우리의 영광스러운 주님의 인성(人性)은 축복 받은 처녀의 태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나신 바 되었다. 그의 신성(神性)에 있어서는, 하나님이 되셨으므로 그 신성은 창조될 수도 나신 바 될 수도 없었다. 그리스도의 영원한 아들의 신분에 관한 교리는 이성적으로 조화가 되지 않으며 모순된 것이다. 영원성(eternity)은 시작도 없고 시간과 관계해서 이루어질 수 없다. 아들에게는 시간과 출생과 아버지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러한 출생 이전에도 또한 시간은 존재한다. 그러므로 아들(Son)과 영원성(eternity), 이 두 단어는 본질적으로 서로 다른 반대되는 개념을 내포하고 있으므로, 이 두 단어를 이치에 맞게 결합시킨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 (아담 클라크)
또한 클라크의 누가복음 1:35에 대한 주석을 인용한다: "…그리스도의 영원한 아들의 신분에 관한 교리는, 나의 견해로는, 성경에 반(反)이며 매우 위태한 교리이다…영원한 아들의 신분에 관한 교리를, 나는 무서운 이단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아담 클라크)
제2과 성육신
A. 성육신(INCARNATION)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그 말씀이 육체(인간․성육신成肉身)가 되어 우리 중에 장막(tabernacle)을 치셨으매" (요한복음 1:14, 확대 성경(Amplified New Testament)
"성육신하다"의 사전적인 의미는 "육체로 구체화되다"이다. 성육신으로 로고스 (Logos)는 육신이 되었고(요한복음 1:14) 하나님은 육체 가운데 나타나셨다(디모데전서 3:16). 이것이 올바른 성경적 용어이다. 하나님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실 수 없었지만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육체 가운데 자신을 나타내셨다. 탄생한 육체는 성육신한 로고스였다. 로고스는 하나님이셨기 때문에 이것은 두 인격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챨스 웨슬레(Charles Wesley)처럼 말할 수 있다. "육체의 휘장에 가려진 신성이 보이도다! 만세, 성육신한 신성이여!"
B. 엔드류 어션(ANDREW URSHAN) 의 글
성육신의 사상은 고(故) 앤드류 어션 목사님의 글을 인용해 설명할 수 있다: "육체로 오시기 전 우리 주님은 영원히 "하나님이시자 말씀으로(God-and-Word)"으로 존재하셨다. 주의할 것은, 그의 사랑하는 제자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말했듯이, 그는 하나님의 말씀이셨을 뿐만 아니라 또한 바로 그 하나님이셨다. 여기서 우리 주님은 하나님과 말씀으로 선포되신다. 독자는 또한 하나님께서 육체가 되신 것이 아니라 그 육체 가운데 나타나셨다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성육신한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나신 바 되거나 여자에게서 출생하실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육신한 말씀과 하나님을 말하는 것은 세상을 자신과 화해시키는 인격화 된 말씀에 관한 것이었지만, 그의 영광스럽고 무소부재하신 존재에 있어서는 어떤 변화도 없이 여전히 하늘에 거하신다고 말하는 것이 성경적인 가르침이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제한된 인간의 성품을 가지고 있었기에 정말로 아들(말씀)이셨을 뿐만 아니라 더더욱 무한한 성품에 있어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영존하시는 아버지셨다." 이사야 9:6과 요한복음 1:1등을 보라. 여기에는 위대한 경건의 비밀에 있다. "그(하나님)는 육신으로(육신에 의해서가 아닌 육신 안에서) 나타난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음이니라"(하나님의 증인 The Witness of God, 1958년 12월, 앤드류 어션) (연합 오순절 교회 국제 총회장인 나다니엘 어션 목사님의 부친, 위대한 유일신 복음의 선교사이자 부흥사, 페르시아에서 선교하고 1915년 구소련에 들어가 선교했다: 역자 주)
C. 어디에?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태초니라"(미가 5:2)
베들레헴은 팔레스틴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인데, 이방인들이 베들레헴을 다스리던 동안에는 에브라다(Ephratah)라고 불렀다. 우리는 "베들레헴" 과 "에브라다"가 "성육신"에 다 함께 연관되어 있음에 주목한다. 이것은 유대인이나 이방인 모두가 구속의 계획에 함께 참여된 것을 보여준다.
베들레험은 예루살렘에서 대략 10Km정도의 거리에 있다. 이곳은 다윗의 고향이며 룻의 이야기가 나오는 곳이기도 하다. 베냐민이 여기에서 태어났고 라헬이 여기서 죽었다.
D. 언제?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아래 나게 하신 것은" (갈라디아서 4:4)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로마서 5:6)
마태복음 1:17, 3번째 구분에 속하는 14대째 자손
우리 주님의 초림은 하나님의 예정 속에서 계획된 바로 그 정확한 때에 있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그의 재림도 또한 바로 그 계획된 정확한 때에 있을 것임을 말해 준다.
D. 왜?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한복음 10:10)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디모데전서 1:15)
성육신의 목적은 속죄를 위한 희생양을 주시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스도는 갈보리에서 죽으시기 위해 나셨다.
제3과 그리스도의 완전한 인성
A. 완전한 인성
예수 그리스도는 신인(神人)이셨다: 바로 하나님이자 완전한 사람이셨다. 우리는 신성에 대하여 "완전"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께는 어떤 완전의 정도가 없고 다만 인간에게 완전의 정도가 있을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은 바로 하나님이시면서 완전한 사람이셨다고 말한다.
예수님은 완전한 사람이셨지만, "마리아는 전능한 하나님의 어머니셨다" 혹은 "갈보리의 피는 하나님의 피였다"라는 그러한 진술은 옳지 못하며 제한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출생하고 죽는 육신 가운데 나타나셨으며 성육신한 말씀은 하나님이셨다는 진리가 있다. 전능한 하나님은 나실 수도 죽으실 수도 없었다. 예수님의 육체가 우리와 다른 육체였다는 사실을 증명할 성경말씀은 없다. 오직 그 육체 안에서 주님은 자녀들과 같이 혈육에 속하셨다(히브리서 2:14). 이 구절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의 자녀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육체 가운데 자신을 나타내셨음을 증명한다.
B. 그는 사람이라 불리셨다
복음서에서 80번 이상을 예수님은 자신을 "인자(人子)"라고 부르신다. 관련된 말들을 언급하면: (1)아브라함의 자손, (2)다윗의 자손 (3)다윗의 혈통, (3)여인의 자손 등이다.
¶관련구절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디모데전서 2:5)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빌립보서 2:8)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마태복음 2:11)
C. 그는 인간의 모습을 가지셨다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요한복음 4:9)
"당신은 예루살렘에 우거하면서 근일 거기서 된 일을 홀로 알지 못하느뇨?" (누가복음 24:18)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로 알고 가로되" (요한복음 20:15)
D. 그는 죄를 제외한 인간의 모든 약함을 경험하셨다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요한복음 4:9)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마태복음 26:38)
"사십일을 밤낮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마태복음 4:2)
"…예수는 주무시는지라" (마태복음 8:24)
"…예수께서 행로에 곤하여" (요한복음 4:6)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요한복음 11:35)
"이 후에 예수께서…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요한복음 19:28)
E. 사람으로서 그는 아들이셨다
아들의 직분은 시작이 있음을 의미하며 또한 시간과 장소와 관련이 있다. 오직 그가 인간이 되셨을 때 독생자가 될 수 있었다. (요한복음 3:16) 영원한 아들도 아니요 피조된 아들도 아닌, 오직 마리아의 태에서 잉태된 아들이셨다. 아들로서 그는 성장하고 성숙하여지고 하나님 아버지께 복종하셨다. 아들로서 그는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맛보셨고 모든 일에 시험을 받으셨다.
F. 그의 인간되심과 아들의 직분의 목적
아들의 직분의 목적은:
1. 우리의 구속자가 되시기 위해서이다. 속죄의 필요성은 우리를 대신하여 드려질 죄 없는 희생 제물을 요구했다. 오직 하나님만이 그러한 희생 제물을 주실 수 있었다. (히브리서 2:14)
2. 우리의 중보자가 되시기 위해서이다. 우리의 중보자는 그의 전지하심을 통해 그리고 실제로 경험하심으로 우리의 연약함을 아신다. (히브리서 4:15)
3. 우리의 왕이 되시기 위해서이다. 왕국이 서려면 왕이 있어야 한다. 그는 지금 우리의 마음속에서 통치하시지만 곧 이 땅을 다스리시러 오실 것이다. (마태복음 26:64)
4. 우리의 심판자가 되시기 위해서이다. (사도행전 17:31)
제4과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
A. 그는 하나님이라 불리셨다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한복음 1:1)
"아들에 관하여는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가 영영하며…" (히브리서 1:8)
"나의 주시오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요한복음 20:28) 절대적인 신성이 여기 그리스도에게 묘사되어 있다. 이것은 놀라움의 표현이 아닌 믿음의 고백이다. 예수님은 이 믿음의 고백을 인정하신다. 예수님은 도마에게 이 고백과 경배를 받으신다.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 시니라 아멘" (로마서 9:5)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 (디도서 2:13)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유다서 25)
"그는 참 하나님이시오 영생이니라." 이 구절은 만세로부터 숨겨졌었는데 이제 우리에게 계시된 비밀을 밝혀준다: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자기와 화해시키시는 하나님이시며 여러분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시니 영광의 소망이시다 (골로새서 1:27)
B.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리셨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마태복음 16:16). 예수께서 그의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은 그의 신성의 진리, 즉 베드로가 고백했던 이 계시 위에서였다.
"하나님의 아들이여" (마태복음 8:29). 이 말은 귀신이 그가 누구였는지 알고 있음을 보여준다.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마태복음 14:33)
"다 가로되 그러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대답하시되 너희 말과 같이 내가 그니라(I am)" (누가복음 22:70)
C. 그는 처음과 나중이라 불리셨다
이 칭호는 구약의 여호와와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께 주어졌다. 삼위일체 교리는 예수님이 신성의 제2위라고 설명한다. 성경은 예수께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심을 보여주는 처음과 나중이라고 말하므로, 분명히 이 교리를 거부한다.
"나는 처음이요 또 마지막이라" (이사야 48:12)
"태초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 (이사야 41:4)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이사야 44:6)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계시록 1:8)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계시록 1:17)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계시록 22:13)
D. 예수님은 "스스로 있는 자 (I AM)" 시다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I am)" (요한복음 8:58)
이 말이 뜻하는 것은: 아브라함은 예수님께 속해 있었지만 예수님은 그의 존재를 위해 아브라함에게 속해 있지 않았다. 아브라함은 어떤 한 시점에 존재하게 되었지만 예수님은 영원히 현존하시는 분(영원한 현제 가운데 거하시는 자존하시는 분)이시다. "내가 있느니라(I am)"고 하는 이 칭호는 구약의 여호와께서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시라는 것을 적극적으로 분명하게 증명하는 말이다.
E. 예수 그리스도의 선재성(PRE-EXISTENCE)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한복음 1:1)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히브리서 7:3)
선재한 것은 그의 인성이 아니라 그의 신성이었다는 것에 보다 주의하라. 성령이 마리아를 덮으시기 전에, 아들은 오직 하나님의 생각과 계획 속에 존재했다. 영원한 아들의 직분의 교리를 위한 어떤 성경적인 근거도 절대 없다.
F.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지신 신적 속성
전능성과 전지성과 편재성의 신적 속성을 예수 그리스도는 모두 소유하신다. 두 명의 전능한 자가 있는가? 신성 안에 전지하고 무소부재한 두 위가 있는가? 우리는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 아니라면 세 가지의 신성의 속성을 소유할 수 없다.
1. 전능성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마태복음 28:19)
● 질병에 대한 능력 - 누가복음 4:38-41.
● 죽음에 대한 능력 - 요한복음 11.
● 자연에 대한 능력 - 요한복음 2.
● 폭풍우에 대한 능력 - 마태복음 8:23-27.
● 귀신에 대한 능력 - 누가복음 4:35, 36, 41.
● 만물에 대한 능력 - 히브리서 2:8.
2. 전지성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또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시므로" (요한복음 2:24-25)
"우리가 지금에야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요한복음 16:30)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 있느니라" (골로새서 2:3)
3. 편재성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마태복음 18:20)
G.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지신 신적 특권
우리는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소유하신 세 가지의 신적 특권이 있음을 언급할 것이다: (1)경배 받으실 권세; (2)죄를 사하실 권세; (3)창조할 수 있는 권세와 능력.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 가지 특권을 소유하고 계신다면 그는 바로 하나님이시다. 실로 더 이상 계속 연구할 필요가 없다. 반대하는 모든 회의론자들과 불신자들의 논쟁에도 불구하고,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신성의 유일성은 결정적으로 증명이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특권들을 소유하고 계시는가? 다음의 주해(註解)는 그가 어떤 분인지 보여줄 것이다:
1. 예수 그리스도는 경배를 받으셨고 원하셨다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여…" (마태복음 14:33)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마태복음 15:25)
"저희가 그에게 경배하고…" (누가복음 24:52)
그리스도께서 경배를 받으실 때 조금도 주저하심이 없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든지 아니면 사기꾼이었을 것이다. "오직 하나님만 경배하라"고 말한 사람이 그분이시며 만약 그가 하나님이 아니셨다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할 어떤 권한도 갖지 못했을 것이다. 천사조차도 그를 경배하도록 명령을 받는다. (히브리서 1:6; 빌립보서 2:10)
2. 예수 그리스도는 죄를 사하셨다: 모든 죄는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이므로 오직 하나님만이 죄를 사하실 수 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신성모독으로 고소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를 사하실 수 있다면 그는 분명 하나님이심에 틀림없다.
"그런즉 내가 어찌하여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 하리이까?" (창세기 39:9)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시편 51:4)
"예수님은 죄가 그를 거슬려 저질러지는 것임을 보여 주신다" (누가복음 7:41-42)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얻었느니라 하시니" (누가복음 7:48)
3. 예수 그리스도는 창조주시다: 예수님을 자신이 위대한 창조주이심을 다음에 의해 보여주셨다
(a)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킴으로 - 요한복음 2:1-11.
(b)오천 명을 먹이심으로 - 요한복음 6:1-13.
(c)물 위를 걸으심으로 - 요한복음 6:19.
(d)폭풍을 잠잠케 하심으로 - 마가복음 4:39.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요한복음 1:3)
두 창조주들이 있는가? 오직 한 분뿐이다 - 예수 그리스도.
¶관련구절 시편 104; 잠언 30:4; 골로새서 1:16-17; 히브리서 2:10
제5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계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A. 그리스도 예수 안에 계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고린도후서 5:19)
일단 성경 말씀에 나타난 진리를 이해하게 되면, 신성의 유일성과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의 계시가 명확해진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시자 사람이심과, 육체로 자신을 나타내신 하나님과,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려고 인간된 성전 안에 거하신 하나님을 보게 된다. 우리를 자신들과 화목하게 하고 계시는 두 위(persons)가 있나? 분명 그렇지 않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고린도후서 5:18).
B. 신성의 충만함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신다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골로새서 2:9)
다른 두 번역 성경을 인용해 보자: "이는 그분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함이 계속해서 육체의 모형 안에 거하심이라" (상술성경 Amplified New Testament). "이는 완전한 신성의 존재가 육체화 되어 거하시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 안에 서이다." (새영어성경 The New English Bible)
실질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유일성에 관한 진리를 결정적으로 입증하기 위해 골로새서 2:9 외에 다른 성경 구절을 찾을 필요가 없다. 삼위일체 교리를 주장하는 사람은 먼저 그의 성경에서 이 구절을 잘라 내야만 한다.
우리는 몇 가지 질문을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 봄으로 이 구절을 연구해 보자.
1. 예수님이 신성 안에 거하시는가 아니면 신성이 예수 안에 거하시는가? 삼위일체론 자들은 말하기를 예수께서 신성 안에 거하신다고 한다. 성경은 신성이 예수 안에 거하신다고 말한다. 우리는 누구를 믿어야 하나?
2. 세 신성의 충만들이 있는가? 분명히 아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시는 유일한 신성의 충만만이 거한다.
3. 예수 안에 신성의 충만의 일부만이 거하는가? 성경은 단지 충만의 일부가 아닌 모든 충만을 말한다.
4. 이 구절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가? 이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모든 직임과 출현, 그의 속성과 바로 자신의 존재의 본질 등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말한다. 이 구절은 우리가 아들과 성령을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것을 말해 준다.
C.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 됨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요한복음 10:30)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요한복음 14:9)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요한복음 17:22)
유대인들은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더 잘 예수님을 이해했다. 그들은 예수님이 아버지와 하나인 것을 주장한 것으로 이해했고 그것이 그들이 주님을 돌로 치려했던 이유였다. 예수님은 우리가 그분 자신을 보았을 때 아버지를 본 것이라고 빌립에게 말씀하셨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분리하여 아버지를 볼 수 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D. 예수 그리스도는 여호와이시다
1. 다소 출신의 사울은 예수님을 여호와로 보았다
"대답하되 주(여호와)여 뉘시오니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사도행전 9:5)
여기서 예수님은 그가 구약의 여호와이심을 증명하셨다.
2. 스데반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보았다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사도행전 7:59)
스데반은 몇 명을 보았나? 분명히 한 분 뿐이다. 누구를 보았나? 예수 그리스도다. 그는 하나님을 부를 때 무슨 이름을 불렀나? 주 예수다. 많은 사람들은 이 구절이 삼위일체론을 입증한다고 생각하고자 할 것이다. 그러나 이 구절은 결정적으로 하나님의 유일성의 진리를 보여주고 있다.
제6과 모든 질문에 대해 하나님의 유일성의 진리가 주는 해답
A. 삼위일체 교리의 오류는 혼란을 일으킨다
신성 안에는 구별된 삼위가 있다는 잘못된 가르침은 대답할 수 없는 많은 의문을 남긴다. 로마 가톨릭 교회의 초기에 공식화된 인간이 만든 교리에는 혼동과 모순이 있다. 물론 이러한 이유는 그 교리가 성경이 아닌 인간의 자연적인 이성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삼위일체론 자들이 답변하지 못하는 몇 가지 의문들을 언급할 것이다.
1. 베들레헴 구유 안에 있는 아기의 아버지는 누구였나? 하나님 아버지, 아니면 성령이셨나? 아기인 그리스도에게는 두 아버지들이 있었나?
2. 아버지와 아들이 둘 다 동등하다면 어떻게 아버지가 아들보다 클 수 있나?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니라." (요한복음 14:28).
3. 하나님도 기도하시나? 어떻게 그가 하나님이신데 기도할 필요가 있나?
4. 하나님이 죽으실 수 있나? 아들이 하나님이시라면 어떻게 죽으실 수 있었나?
5.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인가? 그러면 "하나님의 피"라는 용어에 무슨 잘못이 있을 수 있을까?
6. 신성 안에 이미 삼위가 있다면, 네 번째 위를 더한들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왜 마리아는 신성화하지 않는가?
7. 우리는 누구를 섬기게 되어 있나?
8. 우리는 누구에게 기도를 하게 되어 있나?
9. 우리는 하늘에서 몇 분을 보게 되는가? 하늘에는 몇 개의 보좌가 있나?
10. 왜 예수님은 그가 언제 재림할지를 모르시는가? (마가복음 13:32)
11. 그는 아들이신데 어떻게 시작이 없으신가?
12. 그리스도인에게 충만한 성령의 중심에는 세 영들이 거하나?
명확하지 못한 질문을 계속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 될 것이다. 위의 모든 질문에 대한 올바른 대답과 설명은 유일성(Oneness)을 입증한다. 위의 질문에 삼위일체론자 쪽에서 대답하고자 시도한다면 단지 모순과 혼란을 야기할 것이다.
B. 유일성의 진리는 모든 질문에 답한다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세워진 유일성의 진리 때문에, 모든 질문에 대한 해답은 명확하고 쉽게 이해되며 모든 성경 말씀과 조화를 이룬다. 예상되는 몇 가지 질문들을 간단하게 다루어 보도록 하자
1.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실 때 삼위가 있었지 않는가?
예수님은 모든 의를 이루시기 위해 침례를 받으셔야 했다. 그는 분명히 그의 죄 때문이 아니라 구약의 성경을 성취시키고 그의 교회를 위해 실례를 세우시기 위해서 침례를 받으셨다. 그와 같은 형식으로, 구약의 제사장과 왕이 기름 부음을 받았듯이 그도 기름 부음을 받으실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마리아의 태에서 잉태한 성육신한 말씀이셨다는 것을 기억하라. 기름 부음도 침례와 같은 목적을 위해서였다. 즉, 성경을 성취하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현상들(가청적이고 가시적인)은 침례 요한을 위해서였다는 것(요한복음 1:33)을 기억하자. 다른 사람도 그 목소리와 상징들을 듣고 보았는지 어떤지 궁금하다. 오순절 날에 다락방에서 두 가지의 현상들(가청적이며 가시적인), 즉 불의 혀와 방언 말함이 있었다. 우리는 거기에 두 위(persons)가 있었다고 말해도 되나? 만약 그러했다면, 어떤 위가 불의 혀였으며 어떤 위가 방언으로 말했나? 연소하면서 나는 연기와 모터의 소리가 두 개의 엔진을 만들지 못하는 것처럼 동시에 나타난 가청적이며 가시적인 현상은 두 위들을 만들지 못한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은 제사장이시자 희생 제물이셨다. 하나님의 신성이 동시에 자신을 두 가지 내지 세 가지 모양으로 나타내는 것을 무엇이 제한할 수 있겠는가?
제한할 수 없다. 예수님의 침례시에는 오직 한 분만이 계셨다.
2.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우편(右便)에 계실 수 있는가?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보이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물질적인 몸도 없으며 그러므로 신성에는 우편도 좌편도 없다.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 하나님은 보일 수 없는데,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보이지 아니 하시는 하나님의 본체(EXPRESS IMAGE)이시기 때문이다(골로새서 1:15; 히브리서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시거나 서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언급하는 성경 말씀은 육체의 오른편을 뜻하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하나님의 우편은 무엇을 뜻하나? 성경은 하나님의 우편을 하나님의 권능과 영광이라고 부른다(출애굽기 15:6; 마가복음 16:19; 히브리서 1:3; 히브리서 8:1)
하늘에는 오직 하나의 보좌만 있다(계시록 4:2). 보좌에는 오직 유일하신 분 만이 앉아 계신다.
3. 어떻게 예수님은 기도하실 수 있나?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이자 하나님이시다. 사람으로서 그는 기도하신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명확하다. 그리스도의 인성이 신성에게 기도한다. 삼위일체가 옳다면, 한 하나님이 다른 하나님에게 기도하는 것을 보게 된다. 하나님이 기도할 필요가 있으시다면 그는 더 이상 하나님이시라 할 수 있는가? 언제나 신성이 기도할 필요가 있을 수 있겠는가? 또한 신성 안에 있는 2위가 신성 안에 있는 1위에게 기도한다면, 하나님은 나뉠 수 있고 우리는 적어도 두 분의 하나님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설명은 분명해 진다. 예수 그 리스도는 사람으로서 기도하셨다.
4. 예수 그리스도는 갈보리에서 하나님께 버림을 당했던 것이 아닌가?
다시 말하면, 그것은 육신이었고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부르짖었던 그리스도의 인성이었다. 고린도후서 5:21을 보게 될 때 그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그는 우리의 모든 죄악을 그 자신에게 담당시키셨다. 그는 우리의 속죄 염소가 되시어 그 끔찍한 죄짐을 지고서 죄의 값을 지불하셨다. 그리스도의 인성은 이 엄청난 대가를 온전히 맛보아야 했다. 죄는 거룩한 하나님과 분리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분리되는 이 처참한 느낌을 경험하셔야 했다.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신 것 은 육신이었다. 울부짖은 것도 육신이었다. 실제로 하나님은 줄곧 거기에 계셨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참 속성은 언제든지 변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바꾸어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육체 가운데 나타나신 하나님이 아닌 적 이 어느 한 순간에도 없으셨다.
다시 삼위일체의 논쟁을 언급한다면, 신성 안에 있는 1위가 또 다른 위를 버릴 수 있다면 분명 하나님은 나뉠 수 있고 적어도 두 분의 하나님이 있게 된다. 우리는 이러한 일은 있을 수 없음을 안다.
5. 세상이 있기 전에 그리스도께서 가지셨던 영광은 무엇이었나?
"아버지여 창세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요한복음 17:5)
여기서 예수님은, 시간과 관계하는 한, 아직 미래에 있는 영화(榮華)를 위해 기도하고 계시는데 그 영화는 창세전부터 하나님의 계획과 마음속에 있었다. 예수께서 기도하실 때 그것은 신께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인간적 속성이었음을-인성이 신성에게-기억하라. 그리스도께서 창세전에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셨던 것처럼 그리스도는 창세로부터 영화롭게 되신 그리스도였다. 이 말씀은 영원한 아들을 뜻하지 않는데, 아들의 직분은 시간과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영원 가운데 거하신다.
C. 신성에 관한 모든 질문들을 풀어 주는 열쇠
이 열쇠는 간단히 다음과 같다: 예수 그리스도는 두 가지 속성을 소유하고 계신다. 바로 인성과 신성이다. 그는 이전에도 지금도 바로 하나님이시며 완전한 사람이시다. 하나님으로서 그는 영원 속에 거하신다. 사람으로서 그는 시간 속에 거하신다. 시간적 요소에 제약을 받는 아들의 직분은 세 가지 목적을 위해서이다: (1) 속죄(Redemption); (2)중보(Mediation); (3)천년 왕국의 통치와 심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