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하신 하나님


유일하신 하나님

제1과 하나님
 
A. 하나님은 확언하신다. 하나님은 성경의 진리를 증명하고자 애를 쓰시거나 사람들과 논쟁하시지 않는다. 그는 확언(確言)하신다.
“태초에 하나님이…”(창세기 1:1).
성경을 여는 첫 번째 말씀은 하나님의 실존(實存)을 선언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실존을 증명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성경은 하나님의 지식은 우주적인 것이라고 단언하고 선포한다. 성경은 인간이 하나님의 실존을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하나님이 누구신지 좀은 이해하고 있다고 인정한다.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로마서 1:19-20)
 
B. 믿음의 시작
인간은 어디에 살든지 그가 도덕적으로 순응해야 할 절대자가 실존하고 있다고 믿는다. 이교도들도 절대자의 실존을 인정한다. 이 믿음은 인간 내면에 자리 잡고 있으며 이성적인 직관(直觀)에서 오는 것이다.
사단은 이 사실에 도전을 하며 이 점에 있어서 우리는 오늘날 이 세상에서 믿음과 불신이라는 가장 큰 전쟁이 있음을 알게 된다.
여기에서 인간의 믿음이 시작된다. 인간은 선천적으로 하나님의 신성을 인식해야하며 사실을 인정하고 그의 인생의 실재하는 능력이 되도록 이 사실을 선포해야 한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브리서 11:6)
 
C. 용어의 정의
•이교도 어떤 종교, 특히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
•회의론자 종교에 대하여 회의적인 태도를 갖는 사람.
•불가지론자 하나님의 실존을 확신도 부인도 하지 않는 사람.
•무신론자 하나님의 실존을 부인하는 사람.
•범신론자 우주를 하나님과 동일시하면서 하나님이 인격적인 존재이심을 부정하는 사람.
 
D. 무신론자에 대한 성경의 묘사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시편 14:1)
이 말씀은 자칭 무신론자라고 하는 자에 대한 성경의 대답이다. 바보를 제외 하고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에 대한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어디에 진정 무신론자가 있을는지 의문스럽다. 심지어 흐루시초프와 같은 무신론자임을 자처하는 사람도 대화 가운데 하나님을 언급했었다 한다. 여하튼 모든 무신론자는 어리석은 자이다. 하나님이 계심을 부인하는 것은 인간 본성의 근본이 거짓됨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진리를 모든 인간 본성의 “씨실과 날실” 속에 새겨 넣어 오셨다.
 
E. 하나님을 부인한 결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인간을 고양시키고 정화하고 성결케 한다. 인간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계시가 크면 클수록 더 거룩해 질 것이다. 거꾸로 말해도 사실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지식을 거부할 때 그에게는 부도덕과 부정함이 만연하도록 허용하게 된다. 우리는 오늘날 미국에서 이러한 일들을 보고 있다. 우리들의 학교에서 하나님을 제거하였을 때 불가지론적이고 회의적인 세대들이 증가하고 있으며 그 결과가 법과 도덕의 완전한 붕괴임을 보게 된다. 로마서 1장은 분명하게 이 사실을 진술하고 있다.
 
 
제2과 하나님의 실존에 대한 주장
 
A. 하나님의 실존에 대한 보편적 믿음(UNIVERSALITY)
어느 곳에서든지 인간이 하나님을 믿고 있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실존에 대한 진리를 지지하는 강력한 주장이 된다. 이 보편적인 믿음은 이 믿음을 가지고 태어나는 인간 내부에서부터 나온다.
 
B. 원인을 든 논증-우주론적(COSMOLOGICAL) 논증
모든 사물에는 원인이 있다. 이 원인은 어떻게 발생하는가? 인간과 우주는 결과다; 거기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 세계는 스스로 존재하게 되었던 것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존재하게 된 것이다. 책꽂이에 수많은 책들이 꽂혀 있는 도서관을 거닐면서 이 세계는 창조주가 없다고 말하듯 책의 저자가 없다고 말한다면 더욱 이해가 빠를 것이다. 인간은 존재한다. 그러나 그의 존재는 어떤 원인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하나의 결과이다. 항상 존재해 왔던 것이 아니다. 인간은 창조되었다.
 
C. 설계를 든 논증-목적론적(TELEOLOGICAL) 논증
시계가 가지고 있는 구 조는 제조자뿐만 아니라 설계자가 있음을 보여준다. 우주와 자연은 관리하고 발생케 한 어떤 지적이며 의지적인 존재가 있음을 입증해 준다.
 
D. 존재를 든 논증-존재론적(ONTOLOGICAL) 논증
인간은 무한하며 완전한 존재에 대한 의식을 가지고 있다. 이 의식은 우리들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러한 존재는 존재하고 있음이 틀림없으며 단지 관념이라고만 할 수 없다.
 
E. 도덕론적 논증-인류학적(ANTHROPOLOGICAL) 논증
도덕성은 의무적인 것이지 선택적인 것이 아니다. 인간은 지적이며 도덕적인 특성과 양심과 감성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오직 선과 능력과 사랑과 지혜와 거룩함의 존재가 그러한 특성을 만족시킬 수 있다. 결과적으로 분명 지적이며 도덕적인 존재, 심판자이며 입법자인 창조주가 있다.
 
F. 일치론적(CONGRUITY) 논증
자물쇠에 맞는 열쇠가 있듯이 우리에게 올바른 해답이 있다. 자존자(自存子)이신 인격적인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우리의 정신적 도덕적 속성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세계와 조화를 이룬다.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창조와 종교와 자연과 인간 역사에 대한 모든 의문들이 해결된다. 무신론은 이러한 문제들을 전혀 설명할 수 없다.
 
G. 성경의 주장
유대인의 역사와 성취된 예언은 하나님 없이는 설명될 수가 없을 것이다.
이상의 주장들은 논리적인 주장이며 모두 매우 건전하다. 그러나 저자의 의견에는 다음의 주장이 더욱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H. 개인적 체험에 의한 주장
모든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인격적이며 살아 계신 하나님을 체험한 많은 경험들을 증거할 수 있다. 이 하나만으로도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입증하기에 충분하다. 이 체험은 네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1. 하나님은 기도를 응답하신다. 인간이 기도할 때 기도가 응답된다는 사실이 하나님의 실존에 대한 증거이다.
2. 하나님은 죄인의 영혼을 구원하신다. 이것은 단지 종교적인 감정만은 아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또한 죄사함 받고 죄악된 습관이 깨어지고 거듭 나는 데서 경험된다.
3. 하나님은 병든 몸을 고치신다. 매번 기적은 하나님의 실존을 입증하는 신유에서 나타난다.
4. 인간은 그의 하나님과 교제한다. 이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필요한 모든 증거를 가장 강력하게 나타내는 주장이다. 하나님과 교제를 누리는 사람은 더 이상 논쟁의 여지가 없이 그의 영혼 안에 계신 하나님의 실제 임재를 경험할 수 있다. 무신론자에게 대답할 때 가장 적절한 접근은 그에게 무신론이 그를 위해 무엇을 했는지 묻는 것이다. 산 믿음이 우리를 위해 무엇 을 했는지 불신앙이 어떠한 대가를 치렀는지 증거하는 것은 쉽다.
 
 
제3과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만이 계시다
 
A. 한 분이신 참 하나님
성경에는, 하나님은 한 분이며 다른 신이 없다는 가르침이 50군데 이상 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유일성의 진리는 가장 두드러진 진리이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신명기 6:4)
“나 외에 신이 있겠느냐 과연 반석이 없나니 다른 신이 있음을 알지 못하노라”(이사야 44:8)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디모데전서 2:5)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야고보서 2:19)
¶관련구절 이사야 45:5; 이사야 46:9; 마가복음 12:32; 고린도전서 8:4; 계시록 4:2.
 
하나님을 복수로 만드는 것은 모순이다. 오직 유일하신 절대자만이 계신다. 그 분은 유일한 하나님이시다. 그러한 존재자는 여럿이 되거나 복수화될 수 없다. 궁극적으로 오직 만유를 통일하시는 유일하신 하나님만이 계실 수 있다.
하나님의 유일성은 구약 성경의 위대한 진리요 메시지이다. 예수님이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주장하셨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돌로 치려했다. “선한 일을 인하여 우리가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참람함을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라” 구약 성경에 있는 진리의 말씀은 결코 신약 성경에서 모순되지 않으며 오히려 성취된다.
 
B. 삼위일체
“삼위일체”라는 말은 성경에 없다. 삼위일체 교리는 주후 325년에 니케아 회의에서 가톨릭 종교 회의에 의해 소개되었다. 아타나시우스 신경은 후에 삼위일체를 기초 신조로 만들었다. 이 교리는 화체설(Transubstantiation), 면죄부(Indulgences), 마리아 숭배(Mariolatry), 교황의 무오설, 연옥(Purgatory) 등 의 로마 가톨릭 교리에 포함되었다. 불행하게도, 개신교도들이 위의 거짓 교리들을 거부했지만, 로마 가톨릭 교회의 거짓되고 비성경적인 신조들과 깊이 연관된 삼위일체의 오류는 그대로 고수하였다.
‘위’(Persons)라는 말은 신성에 관하여 사용될 때 절대적인 하나님의 유일성을 침해한다. 하나님을 3위로 나누는 것은 그것을 어떻게 다른 식으로 설명하든지 상관없이 삼신론(Tri-theism)인 세 하나님들로 만들어 버린다.
 
C. 엘로힘(ELOHIM)
하나님을 뜻하는 히브리어 원어는 복수형태인 "엘로힘"이다. 삼위일체론자들은 이것이 신성의 위(位)의 복수를 의미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이 말에 대답하기 위해 우리는 스미스 성경 사전을 인용한다. "엘로힘의 복수형은 많은 논란을 불러왔었다. 엘로힘이 신성에 있어서 위들의 삼위일체를 언급한다는 허구적인 사상은 학자들 사이에서 거의 어떤 지지자도 찾기 힘들다. 이 단어는 문법학자들이 하나님의 위엄을 나타내는 복수라고 말하기도하고 또는 신적 능력의 충만함, 하나님이 베푸시는 능력의 총합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런 질문이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엘로힘이 복수임을 알면서 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유일성을 그렇게 끈질기게 고수했는가?
엘로힘은 다음과 같은 성경에서 그리스도에게 적용된다.
● 스가랴 11:4,12,13 엘로힘은 은 삼십에 팔리셨다.
● 스가랴 14:5 엘로힘은 왕으로서 오실 것이다.
● 스가랴 12:10 엘로힘은 갈보리에서 창에 찔리셨다.
 
엘로힘이 갖는 진정으로 중요한 의미는 속성과 능력의 복수성이다.
 
 
제4과 하나님은 영이시다
 
A. 하나님은 영이시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한복음 4:24)
사마리아 여인이 묻기를, "하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시온산에 계신가요 아니면 그리심산에 계신가요?"라고 말했다. 이 질문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하나님은 어느 한 장소에 제한을 받지 않으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의 말한 바 주께서 가라사대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뇨."(사도행전 7:48)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열왕기상 8:27).
하나님은 장소, 형식, 다른 어떤 감각적 한계와는 구별되시므로 영 안에서 경배를 받으셔야 하며 거짓 개념이나 잘못된 가르침과 구별하여 진리 안에서 찬양받으셔야 한다.
주의하여 고린도전서 2:6-16을 연구하라.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이 없이는 다른 방법으로 하나님을 이해하거나 알 수 없다.
 
B. 하나님은 불가시적이다
예수 그리스도와는 달리 영존하시는 하나님의 영은 볼 수 없다.
"또 가라사대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출애굽기 33:20).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으되"(요한복음 1:18)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누가복음 24:39).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골로새서 1:15).
"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시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디모데전서 1:17).
 
C. 금지된 형상
하나님의 형상을 만드는 것은 금지되었다. 왜냐하면: (1)누구도 하나님을 본 적이 없으며; (2)지구상의 어떤 것도 하나님과 닮을 수 없기 때문이다.
¶관련구절 신명기4:15-23 이사야40:25 출애굽기20:4.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이시다(히브리서 1:3). 그러므로 하나님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로 보일 수 있다.
 
D. 신인동형동성적(ANTHROPOMORPHIC) 표현들
하나님이 손과 발과 팔과 눈과 귀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 그분은 보고 느끼고 걷고…하신다. 아버지, 영존하시는 성령과 관련된 표현들은 오직 무한하신 분을 유한한 사람의 이해 가운데 나타내기 위해 사용된 인간적인 표현이라는 뜻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오직 인간적인 표현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이해한다. 인간은 몸과 혼과 영으로 되어 있지만 단지 한 사람인 것이다. 그와 같이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버지로서 나타나셨고 육신 속에서 아들로서 그리고 지금은 그의 성령의 능력 가운데 나타나셨다. 세분 하나님이나 위격들(persons)은 없다. 이 말은 비성경적인 용어이며 하나님을 언급할 때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오직 한 분 하나님의 삼중적 현현(顯現)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손과 발과 팔 등을 가지고 계시며 보고 느끼고 걸으시고 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이분은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 계신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며 육체 가운데 나타나신 하나님이신 것이다.
 
E. 요약
예수님의 신체와는 달리 하나님, 영존하시는 성령은:
1. 영이시며
2. 비가시적이며
3. 무형이며
4. 지체가 없으시며
5. 몸도 없으시며
6. 모든 제한을 초월하시며
7. 감각이 아닌 영혼에 의해 이해되며
8. 감각적으로 지각(知覺)할 수 없으며
9. 물질적인 존재가 아니시다.
 
 
제5과 하나님의 속성
 
A. 속성의 정의
속성(屬性)은 하나님의 특징과 특성을 의미한다. 물은 축축하며 불은 뜨거운 것처럼 하나님은 영원하시며 불변하시며 거룩하시다. 이러한 속성들은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곧 자연적인 것과 도덕적인 것. 그러나 신적속성의 포괄적인 연구를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므로 대략 가장 잘 알고 있는 속성 몇 가지를 언급하고 분류는 하지 않겠다.
 
B. 하나님의 전지성(OMNISCIENCE)
이것은 하나님이 지식에 있어서 완전하시다는 것을 뜻한다. 그분은 모든 것을 아신다. 하나님은 인간과 나라들 중에 일어날 모든 일에 대한 완전한 지식을 가지고 계신다. 다니엘 2, 8, 12장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사도행전 15;18).
이사야 46:9-10을 읽어라.
¶관련구절 욥기11:7-8; 37:16 시편139:2-3; 15:3 이사야40:26-27 마태복음10:29-30 요한1서3:20 잠언5:21
 
주(註) 우리는 하나님의 예지(豫知)를 그의 예정(豫定)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어떤 일을 아신다는 사실은 그것을 분명하게 만들지만 필연적으로 만들지는 안는다. 인간은 여전히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가지고 있다. 또한 하나님이 알지 못하시는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알지 아니 하신다는 것에 주의하라.
 
C. 하나님의 전능성(OMNIPOTENCE)
하나님은 능력에 있어서 완전하시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능력은 한계나 제한이 없다.
"주께서는 무소불능하시오며 무슨 경영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욥기 42:2)
"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창세기 18:14)
사단은 오직 하나님께서 허락지 아니하고서는 하나님의 어떤 자녀에게도 자신의 능력을 행사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바다의 파도의 경계를 만들어 놓으신 것처럼 사단에게 기준을 세우신다.(욥기 1:12; 욥기 2:6; 누가복음 22:31-32)
 
D. 하나님의 편재성(OMNIPRESENCE)
하나님은 언제나 어디에든지 계신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중심은 어느 곳이든 될 수 있다. 하나님의 주변이란 없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예레미야 23:23-24)
하나님께 말하라. 그가 들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지척에 있는 것보다 더 가까이에 계신다. 그는 너무도 가까이 계신다. 바로 우리 안에 계신다. 우리의 영은 하나님께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시는 집이다. 하나님의 편재하심은 탐지하는 진리이면서 또한 보호하는 진리이다(죄인은 탐지하고 성도는 보호 한다).
¶관련구절 시편139:17-18 창세기16:13 역대하2:6 마태복음28:20 사도행전7:48; 17:24-28
 
이상 세 가지 속성을 묶어 놓으면,
시편 139:1-6 하나님의 전지성(全知性)
시편 139:7-12 하나님의 편재성(偏在性)
시편 139: 13-19 하나님의 전능성(全能性)
 
그리스도는 그의 신성(神性)을 입증하는 속성들을 가지고 계신다.
요한복음 16:30과 요한복음 21:17: 그리스도의 전지성
요한복음 3:13 땅과 하늘에서: 그리스도의 편재성
마태복음 28:18 다른 권세는 없다: 그리스도의 전능성
 
E. 하나님의 거룩하심
이것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기억하도록 하시려는 속성이다. 하나님께서 욥과 모세와 이사야에게 주신 이상은 바로 이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사야 선지자는 약 서른 번이나 하나님을 “거룩하신 자”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죄인과 교제하실 수 없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이 속성 때문이다. 교제를 방해하는 것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이나 인간의 연약함도 아니며 하나님은 지식에 있어서 완전하며 인간은 제한된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아니다. 그 이유는 오히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인간의 죄악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하심의 속성을 통하여 그분을 기억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가는데 수많은 양과 염소와 수소와 산비둘기 등의 피흘림을 요구한다. 신약에서는 오직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보혈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성막은 그 구조가 성소와 지성소로 되어 있는데, 지성소는 일 년에 한 번 대제사장이 피를 가지고 들어갔다. 모든 도덕법과 함께 십계명이 주어졌고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에 관한 율법이 주어졌다 - 하나님 안에는 거룩하지 않은 것이 절대 없다.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요한1서 1:5)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며 하나님께는 죄가 혐오스러운 것이다. 죄인과 하나님 사이가 무한히 벌어져 있는 것은 죄 때문이다. 죄인과 하나님은 도덕적 우주의 서로 반대 된 극(極)에 있다. 여기에서 속죄가 필요하며 속죄를 통해 이 심각한 사이에 다리를 놓을 수 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관한 올바른 시각을 가질 때 죄에 대한 올바른 시각을 가질 수 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해서 그리고 우리가 원래 가지고 있지 않는 그리스도의 의(義)를 통하여야 한다. (빌립보서 3:9)
¶관련구절 이사야59:2; 41:14; 6:3-5 사도행전3:14 베드로전서1:15 계시록4:8
 
F. 하나님의 불변성(IMMUTABILITY)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신다는 뜻이다. 시간과 변화는 모두 하나님께 통하지 않는다. 하나님께는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없다. 모든 것은 생생한 현재이다. 하나님은 그의 속성을 한 번은 가지고 계시다가 다른 때는 버리시거나 할 수 없다.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야고보서 1:17).
"나 여호와는 변역지 아니하나니…"(말라기 3:6).
 
G. 하나님의 영속성
이 속성은 하나님의 불변성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이것은 단순하게 하나님은 영원가운데 계시며 시간이 그분에게 영향을 줄 수 없다는 뜻이다.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시편90:2)
"주께서는 만세 전부터 계시지 아니하시니이까?"(하박국1:12)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출애굽기3:14)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여호와의 칭호를 일컫는 말속에 들어 있다. 나는(I AM) 영원히 현존하는(스스로 존재하는 자) 자이다.
 
H. 하나님의 편재성과 영속성의 관계
공간과 시간은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이것은 과학적으로 상호 관련을 가질 것이다. 하나님이 스스로 계시는 분(I AM)이 아니시라면 실재로 그분은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시지 못할 것이다. 온 우주를 하나님의 존재로 충만하게 채우시는 하나님은 과거를 현재와 같이 보신다. 우리의 과거가 예수님의 보혈로 깨끗케 되었으니 얼마나 기쁘지 아니한가!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죄가 지금 하나님의 눈에 나타나듯이 계속해서 드러나 있을 것이다.
 
I. 하나님은 후회하시는가?
하나님이 불변하시다면 어떻게 후회하실 수 있는가?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 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창세기 6:6)
실지로 하나님은 결코 그의 마음을 바꾸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후회하실 필요가 없으신데 왜냐하면 그의 예지하심으로 인간 편에서 어떠한 행동을 할지 모두 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인격은 결코 변하지 않지만 인간이 경건하지 못한데서 경건함으로 불순종에서 순종함으로 돌이킬 때 인간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방법이 변한다. 즉, 어떤 사람이 바람을 거슬러 자전거를 타다가 방향을 바꾸어 바람을 타고 가면, 바람은 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같은 방향으로 불고 있지만 마치 방향을 바꾼 것처럼 느껴진다. 그것은 사람이 변한 것이지 바람은 아니다.
 
J.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요일 4:16)
사랑은 어떤 속성보다 위대함을 나타낸다. 사랑은 바로 하나님의 속성의 핵심을 나타낸다. 이 말은 "하나님은 빛이시라"(요한1서 1:5), "하나님은 영이시니" (요한복음 4:24)라는 말씀과 병행하여 생각되어야 한다. 단지 하나님의 특성 뿐 만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존재하심의 핵심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이 이해하는 것보다 위대하다. 그 사랑은 모두 다 측량할 수 없고 헤아릴 수 없다. 하나님의 사랑은 언제 어디에서나 모든 사람에게 베풀어지는 성질을 가진다. 그는 인종과 국적과 문화에 상관없이 모든 인간을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악과 습성은 미워하시지만 인간의 영혼은 사랑하시며 언제나 마음에 인간이 영육 간에 잘 되기를 바라신다.
갈보리의 십자가는 죄 없는 사람을 만드시기 위한 하나님의 최고의 사랑의 표현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한복음 3:16)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로마서 5:8)
¶관련구절 이사야38:17; 49:15-16; 63:9 요한1서4:9-10
 
K. 하나님은 미워하시는가?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 곧 그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육칠 가지니”(잠언 6:16)
사랑의 성질은 사랑하는 대상을 손상시키거나 파괴하는 것을 미워하도록 만든다. 하나님은 죄인은 사랑하시지만 죄는 미워하신다. 여기에 조화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나님이 동시에 죄인을 해치는 것을 미워하시지 않는다면 그는 오히려 죄인도 사랑하시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분노가 따르는 이러한 미움은 육신적인 인간의 감정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견지에서 나타난 죄에 대한 거룩한 하나님의 반응이다.
하나님의 성격은 복수하는 것이기 보다는 오히려 옹호적이다.
 
L. 하나님은 의로우시며 공평하시다
이러한 속성들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는 보다 구체적인 표현들이다. 하나님은 의로우시다는 사실 속에서 우리는 거룩함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된다. 하나님의 공평함에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증오를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의로우시기에 의의 법이 주어지고 그의 자녀들이 그 법을 지킬 것을 요구한다. 하나님은 공평하시기에 이 법에 해당하는 형벌이 집행된다. 하나님은 언제나 옳은 일을 하시며 그의 정의는 모든 격한 감정이나 복수심과는 무관하다. 하나님의 의는 바로 죄인이 의롭게 되기 전에 죄에 대한 화해(propitiation)를 요구하는 속성이다.
¶관련구절 시편116:5; 145:17 에스라9:15 예레미야12:1
 
 
제6과 창조주 하나님
 
A. 하나님은 우주와 사람을 지으신 창조주이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창세기 1:27)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한복음 1:3)
영원 전부터 우주가 존재했던 것이 아니며 존재하는 물질에서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그것은 무한의 공간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존재하도록 소환된 것이었다. 진실한 창조의 기록이 창세기 제 1장에 주어져 있다. 학교에서 배운 진화론은 증명될 수 없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을 파괴하도록 의도된 거짓된 이론이다. 하나님은 세상을 존재하도록 명하셨고 보이지 않는 것에서 세상을 창조하셨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히브리서 11:3)
 
B. 하나님은 우주와 사람과 일정한 관계를 유지하신다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히브리서1:3)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골로새서 1:17)
"…주께서 때를 따라 식물 주시기를 바라나이다" (시편 104:27-30)
"대저 높이는 일이 동에서나 서에서 말미암지 아니하며" (시편 75:6-7)
1. 만물은 모두 하나님에 의해 유지된다. 그렇지 않다면 이 옛 세상은 즉시로 산산조각이 나 버렸을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키를 잡고 계신 것이다.
2.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창조물들을 위한 물질적인 공급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모두 먹이신다.
3. 하나님은 역사를 주관하시고 모든 나라들의 사건들을 섭리하시고 만드신다.
4. 하나님의 관심이 아주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참새들, 백합화, 머리카락, 하나님의 자녀들의 눈물.
 
C.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세기 1:26-2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창세기 2:7)
우리는 이 주제에 대해 다시 공부할 것이다. 그 때 더 자세하게 다루도록 하겠다.
의심할 여지없이 그의 창조자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인간은 육체적인 모양보다도 하나님의 지적이며 의로운 속성을 더욱 많이 닮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을 나타낼 한 육신을 가지고 계셨는데, 말씀이 육신이 될 때 즉, 처녀 마리아의 태에서 잉태되기까지 그 육신은 단지 하나님의 마음과 계획 속에만 있었다. 즉, 육신적으로 닮았음을 언급한다면 그 형상은 하나님의 아들, 사람이 신 그리스도 예수일 것이다.
 
D. 인칭대명사 “우리가(US)”와 “우리의(OUR)”의 의미
실제로 27절이 그 의미를 더욱 분명하게 해 준다. 단수 인칭 대명사인 “그의(His)” 혹은 “그(He)”는 창조가 유일한 신적 존재의 작품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설명한다(개혁 성경에는 “하나님이(He)”, “자기의(His)”로 표기되어 있다). 또한 요한복음 1:3, 10은 이것을 명확하게 해준다. “세상은 그로(=예수)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우리가”와 “우리의”의 뜻은 창세기3:22과 이사야6:1-8과 동일하게 설명되어야 한다. 이들 구절에서 인칭 대명사는 분명 하나님과 그룹, 하나님과 스랍을 언급한다. 매 경우에 복수 대명사는 하나님과 천사들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가르침을 구하려고 천사와 상의하시지 않았다(이사야 40:12-14). 그러나 그는 그의 비밀 속에 천사들도 참여시켰다. 창조는 비밀리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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