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생활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생활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갈 3:11)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갈 5:22-23)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대한 기본 개념.

그리스도인들이 거룩함에 대해 말할 때, 규칙과 규정, 해야할 일, 하지 않아야 할 일 등을 강조하기가 쉽다.
이런 것을 구체적이고 분명하며 정직하게 표현하면 율법주의적으로 보이는 것을 피하기가 어렵다.
이 장(章)에서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근본 특징을 기술함으로써 모든 것을 올바르게 조명해보려고 한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믿음과 자유의 삶이며, 율법주의나 고역의 삶이 아니다.
단지 잘못 행동하지 않으려고 애쓴다기보다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열매를 맺으려고 애쓴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기를 원한다.
이 장(章)에서는 그리스도인의 경험의 본질을 정의할 것이다.
이어지는 장(章)에서는 중요한 문제가 되는 분야에 대해 분석해볼 것이나, 여기에 제시된 개념들은 책 전체에 입각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즉,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산다는 것, 그리스도인의 경험은 죄와 율법으로부터의 개인적인 자유함의 경험이라는 것, 하나님께 성별된 개인의 삶이라는 것,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고 성령의 열매를 맺음으로써 거룩함을 나타낸다는 것 등이다.

우리 생활 속에서의 거룩함의 목적

거룩함의 첫 번째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 즉 하나님 자신의 목적이다.
그분은 우리를 자신의 보혈로 사셨고,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아니라 그분에게 속한 것이다(고전 6:19-20; 벧전 1:18-19).
그래서 우리는 자신을 위해서 살지 않고 그리스도를 위해서 사는 것이다(고후 5:15).
거룩함의 두 번째 목적은 그리스도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통해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해야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생활은 우리 인생을 위한 최선의 계획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것은 이생에서뿐만 아니라 오는 세상에서도 우리에게 득(得)이 될 것이다.

믿음과 행함

하나님을 위해 살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선행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받았다는 것을 이해해야만 한다(갈 2:16; 엡 2:8-9).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회개함에 이르게 한다.
참 믿음은 우리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만든다.
그것은 우리를 물 침례와 성령침례로 인도한다(막 16:16-17; 요 7:38-39).
행함이 아니라 믿음이 거룩한 삶을 살겠다는 동기(動機)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그것이 진리이며 또한 그것이 우리에게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
거룩함을 좇는 것은 노력으로 구원을 취득하거나 하나님의 호의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거룩하게 하거나 우리 자신을 구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구원은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들 자신과의 관계에 의한 것이다.

비록 우리가 우리의 선행에 의해서 구원받는 것은 아니지만,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어떤 일들을 하게 만들 것이다.
그것은 밖으로 드러나는 어떤 것일 것이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약 2:17)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우리의 행동과 일상 생활로 보여준다.
야고보는 이렇게 말했다: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약 2:18).
바울은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 하여금 조심하여 선한 일을 힘쓰게"(딛 3:8) 하기 위하여 디도에게 편지를 썼다.
결론은 이렇다.
우리는 자신의 노력으로는 거룩해질 수 없다.
그러나 예수께 대한 믿음을 가지고, 그의 성령이 우리 안에서 역사 하시게 한다면, 우리는 거룩해질 수 있다.

예수께서는 행동 지침으로서의 율법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다.
그분은 또한 죄의 속박으로부터도 우리를 구하셨다.
우리는 더 이상 죄와 율법의 종이 아니며, 자유롭게 결정을 내릴 수가 있다.
우리는 자유의지로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으며, 죄를 이기는 삶을 살 수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자유가 있지만, 육신적인 일에 빠지는 기회나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는 방식으로 그 자유를 사용해서는 안된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갈 5:13).
우리에게 율법이 필요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만일 성령을 따라 살려고 노력한다면 율법이 우리에게 줄 수 없었던 모든 의(義)를 자동적으로 성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 사람들은 자신들의 행위와 노력으로 율법을 이루려고 애써왔다.
그러나 그들은 육신 안에서 약하였고 죄에 속하여 있기 때문에 실패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오신 후에 우리는 죄의 권세와 육신의 야함으로부터 해방되었다.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를 수 있고, 따라서 율법의 의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롬 8:1-4).

성령의 사역

성령침례를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이 된다(고전 12:13).
그리고 성령은 우리를 하나님의 가족이 되게 한다(롬 8:15-16).
다시 말해서, 성령은 우리에게 새로운 본성을 갖게 해준다.
이 새로운 본성이란 다름아닌 그리스도의 영-즉,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인 것이다(롬 8:9; 골 1:27).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고전 2:16; 빌 2:5).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진 것이다(갈 4:19).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게 하신 것이다(롬 8:29).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인격과 뜻이 우리의 마음과 인격과 뜻을 대신하게 함으로써 우리는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가게 하기 위해서 이 땅에서 33년을 사셨다(벧전 2:21-24).
그분은 죄와 사망의 권세를 멸하고 또한 그 본을 따를 수 있는 힘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돌아가셨고 또한 부활하셨다(롬 8:3-4).

거룩함은 한 마디로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영과 인격이 우리를 통해서 나타나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분의 성령을 나타내기를 원한다.
우리는 그분을 기쁘게 해드리고 그분과 같이 되기를 원한다.
우리는 그분이 살았던 그런 삶을 살기를 원하며, 그분이 할 그런 일을 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과 특성을 나타내기를 원한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기독교 신앙의 살아있는 본보기가 된다.
우리는 성령으로 쓰여진,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보내신 열린 편지가 되는 것이다(고후 3:2-3).
그분이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선한 행위는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할 것이며, 그들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것이다(마 5:16).

그리스도인의 특성

그리스도인이 나타내는 특성은 어떤 것인가?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은 성령의 열매라고 불리는, 훌륭한 목록을 우리에게 제시해준다.
만일 우리가 성령을 우리 안에 모시고 있다면, 우리는 이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다른 방언으로 말하는 것이 성령침례를 받는 것에 대한 첫 증거인 반면, 성령이 생활 속에 거하신다는 데 대한 지속적인 증거는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9가지의 성령의 열매를 열거하고 있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등이다.
사도 베드로는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열매맺게 해주는 8가지 자질(資質)을 열거한다.
믿음, 덕, 지식, 절제, 인내, 경건, 형제우애, 사랑 등이다(벧후 1:5-10).
믿음(혹은 충성)과 절제는 두 경우 모두에 등장하고 있다.
덕과 경건은 선함(또는 양선)의 일면이며, 형제우애와 사랑(charity)은 사랑(love)의 일면이고, 인내는 오래 참음과 유사한 것이다.
또한 베드로전서 2장 21-24절에서는 우리가 닮아가야 할 그리스도의 성품을 기록하고 있다.
이 성구에서, 사도 베드로는 그리스도는 죄나 궤사가 없다고 말하고 있고, 우리의 죄를 위해 고난을 받으시는 동안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사랑, 인내, 절제와 믿음을 서술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이 모든 태도와 특성에 대해 살펴 볼 것이다.
그 초석을 놓기 위해 갈라디아서에 기록된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에 대해 간단하게 논의해보고자 한다.
책을 읽어나가는 동안,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맺기를 원하시는 열매라는 것과 죄인들을 복음으로 이끌어줄 열매라는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사랑

사랑은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다.
이것은 유일하게 하나님을 섬기는데 대한 만족스러운 동기가 된다.
우리는 다른 그리스도인들, 우리의 이웃들, 심지어는 우리의 원수들까지도 사랑하라는 계명을 가지고 있다.
만일 우리가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세상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사랑은 참된 그리스도인임을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
만일 우리가 사랑이 진실로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한다면, 우리는 거룩함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성취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에 대한 사랑은 시기, 싸움, 험담, 불평, 그리고 신랄한 비난 등을 없애줄 것이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속된 마음과 반역하는 마음을 없애줄 것이다.
반면에,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람을 다 사랑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관점에서 우리를 옳게 만들어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올바른 가르침과 선행이 사랑을 대신할 수는 없다.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면 질수록, 우리는 더 많은 사랑을 갖게 될 것이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롬 5:5).
이것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이 책 3장에서 사랑에 대해 다시 한번 배울 것이며, 강도 높은 참조 성구들을 제시할 것이다.

희락

성령의 열매의 다른 요소들과 함께, 우리는 성령을 받을 때 희락(즐거움)을 얻는다(롬 14:17).
우리가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은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벧전 1:8)이다.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이러한 기쁨은 세상이 주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기쁨은 상황에 의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외적인 조건에 상관없이, 우리는 항상 우리의 구원과 구원의 하나님을 기뻐 할 수 있다(눅 10:20, 합 3:17-18).
기쁨은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무기이며, 시련의 때에 힘의 근원이다.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느 8:10).
낙담할 때에, 우리는 성령의 기쁨을 끌어냄으로써 다시 힘을 얻을 수 있다.
이겨내는 길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는 "(약 1:2) 것이다.
승리로 향한 우리의 길을 찬미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필요할 때에 우리는 어떻게 기쁨을 얻을 수 있는가?
방금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는 항상 우리의 구원으로부터 기쁨을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그 날에 너희가 또 말하기를 여호와께 감사하라"(사 12:3-4).
시편은 우리에게 두 가지 기쁨의 근원을 설명해준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시 126:5).
만일 우리가 눈물과 기도로 좋은 씨를 뿌린다면, 우리는 기쁨으로 좋은 결실을 맺게 될 것이다.
또한 시편 기자(記者)는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시 16:11)하다고 말하고 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고 그의 임재 가운데로 들어간다면, 우리는 온전한 기쁨을 얻게 될 것이다.
우리는 찬송과 감사와 찬미로 그의 임재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화평(평화, 평강)

성령 안에서 우리는 평화를 누릴 수 있다
-모든 이해를 초월하는 평강이요, 세상이 알 수 없는 평강이다(롬 14:17; 빌 4:7).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우리는 내적인 평화를 누릴 수 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마음의 평화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의 사이에서도 평화를 누릴 수 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서 이것을 기대하고 계신다.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히 12:14; 참조 롬 12:18).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즉, 평화가 없는 곳에 평화를 만드는 사람, 불안한 사람이나 불안한 상황에 평화를 가져오는 사람들을 가리켜 말씀하셨다(마 5:9).

우리는 어떻게 생활 속에서 평화를 얻으며 또 유지할 수 있는가?
만일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집중하고 그분을 신뢰하면, 우리는 완전한 평화를 얻을 수 있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사 26:3).
또한 우리는 주를 기뻐하는 것, 절제하는 것, 아무것도 염려하지 않는 것, 기도와 간청을 통해 우리의 필요를 하나님께 알리는 것 등을 배워야만 한다.
만일 우리가 이렇게 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평강을 누리게 될 것이다(빌 4:4-7)

오래 참음과 인내

인내는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매우 중요하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눅 21:19).
우리는 인내로 결실하게 되고(눅 8:15), 인내로써 우리의 경주를 경주하며(히 12:1),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을 얻게 된다(히 6:12).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히 10:36).

오래 참음이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인내와 관용을 포함한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권면하여 말하기를 우리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 4:2-3)고 했다.
오래 참음은 온유함과 사랑, 연합(통일)에 대한 소망, 평화에 대한 소망 등과 함께 오는 것이다.
인내는 시련과 환난을 통해 온다(롬 5:3.약 1:3).

자비(친절함)

자비(친절)는 약함을 뜻하지 않는다.
자비롭다는 것은 정중하고, 예의바르며, 친절하고, 인내하며, 침착하고, 가혹하거나 폭력을 사용하거나 또는 거칠지 않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을 대하실 때 자비로우셨으나, 필요할 때는 단호하며 과단성이 있으셨다.
주님은 우리가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온유(친절)하기를 원하신다(딤후 2:24).
그분의 온유함(친절함)이 우리를 크게 하실 것이다(시 18:35).

양선(선함)
이 말은 의로움, 덕행, 미덕, 그리고 선행 등을 포함한다.
우리는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막 10:18)는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가진 모든 좋은 것은 다 그분으로부터 온 것이다(약 1:17).
그분의 눈에는 우리의 의가 더러운 옷 같은 것이며(사 64:6) 오직 그리스도의 의(義)만이 우리를 구언하신다.
우리가 그분에 대한 믿음이 있을 때,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에게 덧입히신다(롬 4:5-6).
우리가 하나님의 인자(선함)에 거할 때에만 우리는 구원을 얻게 될 것이다(롬 11:22).

충성(믿음)

구원과 관련된 믿음에 대해서는 이미 논의한 바 있다.("믿는자"의 정의에 대해서는 13장 참조).
구원을 받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도 믿음이 필요하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히 11:6).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롬 8:28).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며 시험 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주신다는 것을 확신하게 해준다(고전 10:13).
믿음은 기도의 응답과 필요의 공급과 약속의 성취를 가져다준다.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마 21:22; 참조 막 11:22-24).
충실(신실)은 또한 충성스러움, 진실함, 변하지 않음, 지조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어떻게 믿음을 얻는가?
먼저,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믿음의 분량을 주셨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롬 12:3).
우리는 모두 믿음이 조금은 있을 것이다.
진실로 우리에게 겨자씨 만한 믿음이 있고, 그만큼의 믿음을 실천하면, 불가능한 일은 없을 것이다(마 17:20).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
우리는 첫째로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 속의 약속을 읽음으로써 믿음을 세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간증을 듣고 또한 우리들 자신이 과거에 하나님을 체험한 것을 통해 믿음을 더할 수 있다.
믿음은 또한 중요한 위기의 순간에 성령의 초자연적인 선물로 올 수도 있다(고전 12:9).

온유함

온유하다는 것은 인내심이 있고, 관대하며, 화를 내거나 분을 내는 경향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 역시 약함이나 결단력이 없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온유함은 하나님이 없이는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며 그분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깨닫는 겸손을 포함하는 것이다.
온유함은 지도자가 지녀야할 중요한 자질이다.
모세는 당대에 가장 온유한 사람이었고(민 12:3), 예수께서는 자신을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말씀하셨다(마 11:29).
예수께서는 또한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얻을 것이라고 하셨다(마 5:5).
주께서는 우리가 모든 사람에게 온유함을 나타내기를 원하신다(딛 3:2).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바 온유함으로 해야할 것들은 다음과 같다.
말씀을 전하는 것(고후 10:1), 말씀을 받는 것(약 1:21), 범죄하는 형제를 도와주고 바로잡는 일(갈 6:1), 지혜를 나타냄(약 3:13), 우리의 삶을 단장하는 것(벧전 3:4) 등이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주 앞에서 낮추라"(약 4:7,10).

절제

이것은 자제, 자기조절, 중용 등을 포함한다.
어떤 즐거움이라도 과도할 경우에는 고통스럽게 되며, 어떤 좋은 일도 지나칠 경우에는 피해가 될 수 있다.
고린도전서 9장 24-27절에서 사도 바울은 경주하는 주자의 예를 들어 절제의 개념을 잘 예시하고 있다.
경주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주자(走者)는 "모든 일에 절제"해야 한다.
그는 수양과 자기 조절이 필요하다.
그는 잘 균형 잡힌 훈련 계획이 필요하고, 모든 활동이 적당해야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도 바울은 훈련과 억제력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고 했으며, 자신의 몸을 복종시켰다.
절제는 우리가 항상 나타내야할 속성이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빌 4:5).(절제에 대한 더 깊은 내용은 13장을 참조)

목회 사역 중의 지혜

이 장을 마무리하기 전에,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해 가르치는 사역의 역할에 대해 논의해보고자 한다.
목회자로서 우리는 이 부분에 대해 가르치고 설교하는 데 있어서 지혜가 필요하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를 원해서 어떤 일을 하는 것이며, 누군가가 우리에게 강요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다.
거룩함은 적극적인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와 닮은 자질을 소유하는 것,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 성령의 권세를 행사하는 것, 죄의 속박에서 해방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책을 계속해서 읽어갈 때에 보게 될 것이지만, 우리는 개인적으로 거룩함에 대해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타협하지 않을 것을 주장한다.
거룩함을 가르치지 않는 사람들과 세상의 압력에 의해 자신들의 믿음을 기꺼이 바꾸게 될 사람들에 의해 많은 해를 입어 왔다.
그러나, 또한 부정적인 것을 강조하는 사람들과 방문객들이나 새 신자들을 다루는 데 있어서 지혜가 부족한 사람들에 의해서 위장된 성결의 가르침으로 많은 해를 입어온 것도 사실이다.

일반적인 규칙으로서, 설교자는 자신의 설교 속에 거룩함이라는 기본적인 주제를 지키고 있어야하며, 복음의 긍정적인 본질을 강조해야 한다고 믿는다.
거룩함은 격렬한 비난으로 가르쳐서는 안되며, 사랑과 인내와 이해로 가르쳐야 한다.
우리는 신약성경에서 거룩함에 대해 사용하는 것과 같은 접근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우리는 사람들에게 겸손과 절제를 따를 것을 권고할 수 있으며, 거짓말이나 간음 같은 죄를 피하라고 권면할 수 있다.
특정한 문제 영역은 상담이나 권면의 목회사역에 맡겨둘 수 있다.

방문객들에 관해서는, 그들을 있는 그대로 환영하고 사랑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그들을 심판하거나 정죄해서는 안된다.
판결은 하나님이 하셔야 한다.
결국, 사람들을 회개로 이끌고 그들의 삶의 방식을 바꿀 수 있는 힘을 주시는 것은 성령이다.
성도는 방문객들에게 무엇을 하라고 말하는 것을 삼가야 한다.
그들이 질문을 해오면, 성경적인 답변을 해주어야 한다.
지혜가 있어야 하며, 미묘한 상황에서는 그들을 목회자에게 인도해야 한다.
만일 그들이 회개하는 중이라면, 목회자는 그들에게 그들의 삶 속의 죄악에 대해 조언을 해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회개, 믿음, 변화하려는 의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든지 행하고자 하는 소망 등을 강조한다면, 그는 즉시 성령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만일 그들이 이런 태도를 보인다면, 그들이 어떤 주제나 가르침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을 수 있다.
성령을 받고 난 이후에는, 그들이 문제를 가려내고, 하나님에 대해 배우고, 그들의 삶을 깨끗케 하는 것이 훨씬 더 쉬울 것이다.

새 신자를 대하는 데에 있어서는, 인내와 관용을 보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들에게는 긍정적인 가르침, 격려, 그리고 이해가 많이 필요하다.
그들은 성령의 인도에 민감해지는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으며, 시련과 유혹을 이겨내기 위해 성령을 사용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진실로 하나님을 경험했으나, 목회자나 다른 성도의 가혹함이나 인내심의 부족, 지나치게 시기하는 듯한 훈계, 지혜의 부족 등으로 인해 교회로부터 멀어지는 사람들을 많이 보아 왔다.
그들은 우유와 성장할 시간을 진실로 필요로 할 때에 강제로 먹인 고기로 인해 질식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성령, 말씀의 선포, 성도들의 본보기를 통해 역사 하시도록 시간을 드려야 한다.
목회자들은 특별한 상황에서 특별히 다루어야 할 절대적인 필요가 있다고 느낄 경우에, 명령이 아니라 개인적인 제안을 해야 한다.
가능하다면, 어떤 일이 왜 유익한 지를 설명해야 하며, 협박을 해서도 안되고 어떤 일을 강제로 하게 해서도 안된다.
인생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권능을 절대로 과소평가하지 말라.
새 신자를 가르치는 좋은 방법은 그들을 위해 특별한 학습시간을 마련하여 그 시간을 통해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모든 질문에 대해 전통이 아니라 성경을 사용하여 예의바르게 대답해주는 것이다.
그들이 투표권을 가진 구성원이 되기를 원하거나, 교사나 안내자 또는 성가대원이 되기를 원할 때, 그 때가 그들에게 어떤 자질을 갖출 것을 요구할 좋은 때인 것이다.

기존 성도들은 대개 개인적인 대화의 기초 위에서 다룰 수 있다.
교회의 어떤 기준을 설정하기에 좋은 때는 성가대 모임이나 주일학교 임원회의, 또는 교회의 재직회의 등이다.
어떤 것을 고쳐주어야 할 경우에는, 조용히 개인적으로 하라.
이렇게 함으로써, 교회의 높은 성결 기준을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방문객들을 몰아내지도, 새 신자들을 떨어져나가게 하지도 않게 될 것이다.

생활방식으로서의 거룩함

마지막으로, 책을 쓴 사람으로서 독자(讀者)인 당신에게 어떻게 행하라고 말해줄 수는 없다.
우리는 단지 제안을 할뿐이며, 우리들의 기도와 연구와 경험의 결과를 함께 나눌 뿐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과의 긴밀한 개인적인 관계이다.
그것은 거룩함에 대한 끊임없는 추구이며,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며 더욱 그분과 닮아 가려는 꾸준한 시도이다.
만일 우리가 성령이 우리를 이끌어 가시게 하고 성령의 열매를 계발한다면, 거룩함은 자연적인 것이 되고 또한 쉬워질 것이다.
그것은 짐이나 부담이 아니라 기쁨이 될 것이다.
그것은 일상적인 삶의 방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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