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유태인들이 당면한 교육의 현실

유태인 교육의 문제점 발견

유태인 교육의 목적은 어린이들이 유태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유태인 생활을 습관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부모들은 유태인으로서의 생존과 복리를 증진시키고, 유태인들의 삶을 그들의 경험이나 관습을 통해 재해석해서 ‘어떻게 하면 후손들이 아름다운 유태인으로 생활할 수 있을까’하는 목표를 가지고 교육한다.
고대에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종교 교육이 이 역할을 하였다. 즉 가정, 회당, 공동체에서 교육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
가장 먼저 나타난 문제는 언어소통이었다. 종교 교육을 철저하게 시킬 때는 히브리어를 반드시 공부했지만, 요즘의 유태인들은 히브리어를 제대로 공부하지 않는다.
그리고 “너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너의 고향은 하늘나라이다. 너는 죽으면 하늘나라로 돌아간다.”는 추상적인 교육을 시키다 보니 실용적이고 실제적인 교육을 시키는 미국의 교육과는 차이가 너무 크게 되었다. 전통적인 유대교 교육만을 고집한다면 다른 사람들과 소통이 없어서 고립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연약한 공동체이지만 흩어지지 않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직분을 감당하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이 모든 것을 다스릴 수 있을지 방법을 찾아야 한다.

문제 해결 방법

유태인들은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 방법은 바로 “돌아가자!”이다. 다시 종교와 관습과 의식과 예배의 교육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유태인들은 스스로 자기들의 교육을 평가하며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를 묻는다. 그리고 그들 스스로 대답하기를 종교교육을 바르게 하지 못하였다고 결론을 내렸다. 바르게 하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어떻게 잘못시켰는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종교교육을 할 때 아이들에게 종교가 삶이 아닌 하나의 의식이 되었다. 또한 하나의 관습이 되었다.
진정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교육이 아니라, “너는 이렇게 살아야 된다, 너는 이렇게 해야 된다”는 식으로 강요하다 보니 아이들이 보기에는 다른 집에는 이런 의식이나 관습이 없는데 왜 우리는 이런 의식이나 관습에 얽매어 있어야 하는가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은 의식이나 관습을 강조하지 않고 유대교가 종교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다. 유대교는 종교가 아니고 바로 우리의 공동체이다. 우리의 공동체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유대교가 존재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들은 말하기를 우리의 유태인 공동체가 존재하는 것은 유대교가 존재할 때 가능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유대교가 무엇인가?

(구약) 성경은 사람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해야 바르게 살 수 있는가를 가르친다. 세상이 개방되면서 유태인들은 자신들이 별로 잘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되니까 유태인 공동체는 계속하여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고 연약해진 공동체는 많은 고통을 당하게 되고 ‘대학살이 웬 말인가?’라는 의문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그리고 ‘왜 우리 공동체를 싫어하는 원수가 많은가?’라는 의문도 일어났다. 그리하여 ‘우리가 왜 남들과 다르게 존재해야 하는가? 우리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경쟁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는가’라는 문제점이 등장하게 되었다.
BC 530년경 유태인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뒤 유태인들은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바벨론과 페르시아로부터 문화적 충격을 받은 사람들은 성경이 과연 우리의 삶의 지표가 될 수 있는가, 성경은 구시대적인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에 사로잡혔다. 이때 ‘에스라’는 성경을 읽어주고 해석해주고 설명해주는 과정을 통하여 성경으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며, 성경으로 돌아가야 하다고 가르쳤다.
성경을 바르게 교육함으로써 삶의 중심이 성경이라는 교육을 바르게 할 시점이기에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우리는 이 세상에서 잠시 사는 것이다. 이제는 이 세상에서만 바르게 사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세계까지 삶의 중심이 성경이라는 교육을 해야 한다.
그 당시, 그 시간 속에서만 바르게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전 생애 중에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표현하며 살 수 있느냐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역사를 하나님의 의지와 인간의 의지간의 상호작용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인간이 자신의 의지를 죽이고 하나님의 의지에 맞출 때에 인간이 사는 세상에는 번영이 오고, 복리가 오고, 잘 사는 세상이 되는 역사가 펼쳐지고 전개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떠날 때,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바른 삶을 살지 않을 때 고난을 당했다는 것을 가르친다.
변하는 세상 가운데 유태인의 대처방법은 ‘변화를 주도하는 것’이다. 이 세상의 일반교육은 사회의 영향을 받지만 우리 유태인들의 교육은 이 변화되는 사회의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변화되는 사회에 영향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얼마만큼 헌신하느냐에 유태인의 생존이 달려있다고 강조한다.

무엇이 이들을 하나로 묶어주는가?

이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힘은 땅에 대한 사랑이다. 이스라엘 땅에 대한 사랑이 그들을 하나로 묶어준다. 그들의 소망은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들이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좀 더 잘 섬기기 위해서이다.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간다는 말은 어떻게 하면 우리가 있는 처소에서 하나님을 잘 섬기는 환경으로 변화시킬 수 있느냐이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처해진 환경 속에서,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이 자리에서 좀 더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있는 환경으로 바꿀 수 있는가 하는 것이 교육의 새로운 목표로 등장했다.

교육 목표의 수정

유태인 역사에서 시간의 문제는 어떠한가?

수많은 고통은 그들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받은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리고 학교 수업이 끝난 후 반드시 방과후 수업으로 전통교육을 한다. 학교 교육에만 맡기면 문제점 속으로 빠져 들어가서 아이들에게 혼란이 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방과후 전통 교육을 매일 죽을 때까지 한다.

우리가 거하는 환경은 어떠한가?

우리가 있는 장소, 우리가 머무는 장소가 어디든지 이 장소를 전통 교육을  하는 장소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의 삶의 스타일은 어떠해야 하는가?

유태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게 하여 철저한 유태인으로서의 삶을 찾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교육한다.

새로운 과정을 담은 교과서

교육을 연구하는 선생님들이 내린 결론은 ‘우리의 교과서는 다시 성경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우리의 교과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라는 것이다.
첨단과학시대에 구시대적인 종교의식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행하라고 가르쳐야 할까? 하나님께서 의식을 통하여 가르치려는 원리가 무엇인지 찾아내어, 이 시대에 맞게 그 원리를 적용하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결론이다.

제사를 예배로

교회는 보통 주일 예배는 몇 번으로 나눠서 드린다. 그 이유는 예배당이 좁아서라기보다는 사회의 요구에 예배시간을 그렇게 정한 것이다. 즉 사회가 교회를 변화시킨다. 그러나 유태인들은 금요일 저녁 5:30, 8에 두 번 예배가 있고, 토요일에는 10:30이나 11시에 한 번 예배 드린다. 금요일 저녁 5:30은 주로 아이들이 모이고, 8시에는 주로 어른들이 모인다. 그리고 토요일 안식일에는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모두 함께 모여 한 자리에서 다같이 예배 드린다. 그리고 예배가 끝난 후 교육은 나이별로 나누어서 한다.

회당에서 무엇을 하는가?

교회의 예배는 설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예배의 초점이자 중심은 기도이다. 그래서 유태인들은 ‘예배는 기도이다’라고 가르친다.
기도는 하나님과 나의 직접적인 관계를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기도하는 시간을 많이 가진다. 예배라고 하면 보통 공동기도를 의미하기도 한다.

기도는 무엇을 나타내는 것인가?

기독교인들이나 다른 종교인들의 기도를 연구해보면 90%이상이 신에게 무엇을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찬양과 헌금은 드리는데, 기도는 달라고 떼를 쓴다.
유태인들은 기도할 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래서 그들은 기도할 때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자신의 언어로 마음껏 표현한다.

언제 기도하는가?

유태인들은 “우리가 정해진 시간에 회당에 왔을 때 정말 기도할 수 있느냐?”라고 묻는다. 이 말은 기왕에 왔으니까 습관적으로 하는 기도가 아니라, 정말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하나님 앞에 표현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는 기도를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유태인들은 정해진 시간에 회당에 와서 진정한 기도를 하기는 어렵다고 한다. 매일매일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북받쳐 올라올 때, 바로 그때가 기도할 수 있는 최상의 시간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그 시간을 절대로 놓치지 말라고 가르친다. 이 시간은 개인적인 시간이다.

기도의 방법

700년 전에 랍비가 자기 학생에게 기도를 가르쳤다.
“기도할 때 너의 기도를 기계적으로 만들지 말라. 우리의 기도를 한 번 생각해 보자. 내 기도가 기계적으로 하는 것은 아닌가? 내 기도가 중얼거림이나 단순한 말의 반복은 아닌지 한 번 돌아보자.”

기도는 감정이 기초이다. 기도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진정 사랑하는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 입만 열면 요구하는 말만 할 수 있을까?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의 표현이 기도라고 한다면, 우리가 하나님에게 언제나 달라는 요구만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표현이 기도라고 한다면 “하나님, 이렇게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하나님 오늘도 나와 함께 해주시니 고맙습니다. 하나님 정말 고맙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고맙다는 말밖에는 없습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법과 하나님의 사랑이 마음에 감동되는 순간, 바로 그 순간이 기도를 위한 순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기도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유태인들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라고 답한다.

기도는 어디서 해야 하는가?

유태인들은 기도는 우리가 머무는 곳 어디에서나 해야 한다고 말한다. “기도하는 장소가 회당(교회)인가, 성전인가, 아니면 집인가?”라는 질문에 기독교인은 보통 교회라고 답할 것이다. 그러면 유태인은 “교회당은 다른 장소보다 더 거룩하냐?”라고 묻는다. 왜 기도를 하기 위하여 꼭 그곳에 모여야 하느냐는 것이다.
건물이 기도를 거룩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도가 건물을 거룩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모여서 기도함으로써 기도하는 그 장소가 거룩해진다.
유태인들은 회당(교회)을 ‘만남의 장소’라고 부른다. 회당의 기능은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 성도가 서로 만나는 장소이다. 그리고 회당은 그들의 삶의 중심지, 생활의 중심지에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한두 시간씩 차를 타고 간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다.
유태인 예배 중에 랍비가 하는 설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랍비의 설교는 리터지(liturgy)라고 해서 절기별로 주어지는 설교 본문이 있다. 그러면 그 절기에 맞는 설교를 선택해서 하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회당에서 거의 같은 내용의 설교가 선포된다. 리터지는 전통파, 보수파, 개혁파로 3가지 종류가 나온다.
우리의 주일학교와 비슷한 샤바트스쿨이 있는데, 모든 프로그램은 다 한 군데서 나온다. 그러니까 전 세계 모든 유태인들은 주마다 언제나 똑 같은 내용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다. 똑같이 교육하므로 비슷하게 성장하게 된다.
회당은 3년마다 성경 전체를 낭독하게 된다. 유태인들은 회당에 모이면 맨 먼저 기도를 한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공부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공동체의 문제점을 찾아 그것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다룬다. 일상의 문제까지도 종교적인 방법으로 해결한다.
예배하기 위하여 모이는 곳을 ‘회당’이라고 하는데 히브리어로는 이곳을 ‘슐’이라고 한다. 이 말은 ‘학교’와 비슷한 뜻인데 연구하는 장소라는 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곳이다. 그래서 유태인들은 “Study is worship, Pray is worship(공부가 예배이고 기도가 예배이다)”라고 한다. ‘슐’은 곧 학교인데 성경을 배우는 학교이다. 그래서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먼저 기도하는 것부터 가르치고, 그 다음으로 성경을 연구하는 것을 가르쳐서 다섯 살 때 성경, 열 살 때 미쉬나, 그리고 열다섯 살이 되면 탈무드를 연구하기 시작한다. 탈무드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탈무드를 연구하기 시작하는 단계이다. 탈무드의 첫 장과 마지막 장은 비어 있다. 그 이유는 연구에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는 것이다.
기독교의 교회(Church, 키르케)는 ‘키르아케’라는 말에서 나왔는데, ‘주님의 집’이라는 뜻이다. 주님의 집은 주님을 알아가고 주님을 연구하는 장소이다. 그리고 주님과 대화하는 장소이다. 그러므로 ‘키르아케(주님의 집)’에 왔으면 주님 앞에 와서 주님을 배우고 주님과 만나서 교제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래서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주일학교를 열심히 해야 한다.

유태인들은 기도가 가장 중요하며 기도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한다. 특히 ‘기도할 때 어디에 서 있느냐?’ 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기도할 때는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 앞에 서 있어야 한다.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기도하라는 것이다. 이 말은 우리가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태인들은 기도할 때 ‘바룩 하셈’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하나님이여 찬양을 받으소서’라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을 먼저 높여드리며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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