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가 만나는 최초의 교육기관 ‘가정’

유태인 가정과 유대교 가정

유태인과 유대교인은 완전히 다르다. 유태인 가정은 혈통적으로 유태인인 가정이지만, 유대교 가정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가정이며 모든 식구가 하나님을 섬기는 가정이다.

유태인 자녀가 만나는 최초의 선생님

유태인 교육과 유대교 교육은 다르다. 유태인 교육은 특별한 것이 없으며 유대교 교육은 그들만을 위한 특별한 교육을 하기 때문이다.
자녀가 태어나 특별한 교육을 받는 최초의 교육 기관이 가정이며 자녀가 만나는 최초의 선생님은 부모이다.
유대교 가정에서 부모는 자녀들의 부모이기 이전에 훌륭한 선생님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겨주신 의무를 다하기 위하여 노력한다. 자녀에게 생명을 주었다고 부모가 아니라 자녀가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자라며 하나님께서 그 자녀를 세상에 보내신 목적을 바르게 이루어 나가도록 인도하는 선생님으로서 의무를 다하는 부모가 참 부모라고 탈무드는 가르친다. 바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일으켜 세우는 선생님이 부모이다.

유대교 가정은 공동체

유대교 가정은 단순한 가족 개념이 아니라 특별한 하나의 공동체이며, 유대교 역시 유대교 가정과 가정이 연결된 하나의 특별한 공동체로서의 큰 가정이다.
유대교 가정이 똘똘 뭉쳐서 회당을 이루고 회당이 모여서 지역 유대교 공동체를 이루고 회당 공동체가 모여서 거대한 유대교 공동체를 이루게 되는데 이것은 큰 가정과 같은 것이다.
유태인에게는 유대교가 가정의 중심이다. 유대교는 유태인의 가정 구성요소 중에서 가정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한다.

유대교 가정이 자녀에게 가지는 하나님을 향한 첫 번째 의무

유대교 가정에서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유대교 가정에서 가르치는 것 가운데 가장 크고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아이가 말을 하고 알아들을 수 있을 때까지는 가정에서 유태인이 행하는 유대교 전통을 보여주는 것을 통해 가르친다. 그러므로 아이는 먼저 유태인의 전통에 익숙해진다.
그런데 아이는 ‘우리 집만 이러한 것을 행하는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할 수 있다. 가정에서 홀로 가르치는 것은 충분하지 못하고 다른 가정과 공동체를 이루며 다른 가정에서도 우리 집에서 행하는 것과 같은 것을 행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서 유태인의 전통이 자기 집에서만 행하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 모든 가정에서 다 그렇게 행하고 있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하여 회당으로 모인다. 회당에서는 토라와 유태인의 전통을 날마다 그리고 안식일에 가르친다.
유대교의 교육 중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캠프 레마’이다. 아이들이 걸을 수 있고 대소변을 가려 스스로 화장실에 갈 수 있으면 바로 그때 캠프 레마에 보낸다. 이르면 보통 18개월짜리 아이들도 온다.
캠프 레마의 기간은 길게는 2개월의 과정도 있다. 캠프에서 토라를 가르치기 시작하며, 선택 받은 민족 이스라엘 나라에 대해서, 히브리어, 친구, 스포츠, 인간의 존재 등에 대해서도 가르친다. 또한 캠프에서는 이 세상에서 인생을 살아가는데 엄마나 아빠보다 더 중요한 분이 계시는데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라는 것을 가르친다. 그러니까 이 캠프 레마에 다녀오면 지금까지 부모들이 행하던 유태인의 전통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나의 삶과 나의 과거 현재 미래를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캠프에서 철저하게 가르친다.
캠프 레마에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표현이 기도이고, 말씀을 연구하는 것이고, 경건한 생활이라는 것을 이때부터 배우게 된다. 이런 캠프 레마는 다섯 살이 될 때까지 매년 참가한다. 이렇게 일 년에 두 달씩 캠프에 들어가서 훈련을 받고 나면 정말 확실한 유대교인이 된다.

유대교 가정에서는 어린이를 왜 캠프에 보내는가?

첫째, 캠프는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를 배우는 장소가 된다.
캠프에서는 제일 먼저 기도하는 것을 가르치는데, 기도를 가르치기 위해서 하나님을 가르치고 하나님을 가르쳐 나를 알게 하고 나를 알아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알도록 인도한다.
이런 어린 아이에게 가르칠 때도 ‘하나님은 너보다 중요한 분이시다’ 라는 것을 가르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존재하시기 때문에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가르친다. 하나님이 없는 나는 생각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는 어떻다는 것인가? ‘하나’이다. 이것은 자신을 바르게 보는 사람이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말이며, 하나님이 내 속에 살아서 역사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므로 없어졌고, 이제는 하나님만이 남아서 나를 통해서 보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과 나는 하나이다.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이다. 철저하게 하나님을 떠날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간다.

둘째, 캠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을 배우는 장소이다.
캠프에서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가르친 다음 기도를 가르친다. 그러면 유대교에서 말하는 기도는 무엇인가? 유대교인들은 적어도 하루에 한번 정한 시간에 마음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이다. 여기서 마음으로 기도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뜻을 찾는 기도를 한다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뜻을 돌이킬 수 있는 길이 기도 밖에 없다고 하여 내 뜻을 정해 놓고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이것은 기도를 잘못 이해한 것이다.
그런데 이 기도를 가르치는 사람이 누구인가? 바로 그의 부모이다. 기도의 선생님은 바로 그들의 부모라는 것을 아는 것은 유대교 가정을 이해하는데 반드시 필요하다. 부모가 날마다 기도하는 것을 보니까 그 아이도 기도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기도하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그 자녀들은 기도하는 습관을 배우고, 기도하게 된다.
기도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할 때,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실천적인 삶 자체를 연습하는 훈련이다. 그러므로 기도하지 않으면서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은 거짓이라고 유대교는 가르친다. 그래서 매일매일 회당에 가서 기도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하나님과 함께 하는 즐거움을 누린다고 한다. 타 종교인들이 예배 드리러 간다고 할 때 유대교인들은 기도하러 간다고 한다. 이들은 기도하러 모일 때는 오로지 기도하기 위해서 모이는 것이지 다른 것은 하지 않는다.

셋째, 캠프는 기도를 배우는 장소이다.
유대교는 모든 종교들이 기도하는데 그 기도라는 것이 무엇이고, 기도의 목적이 무엇이고, 기도의 성취가 무엇인가를 연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유대교인들이 정기적으로 기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신명기 4:29에 “거기에서 당신들은 당신들의 하나님이신 주님을 찾을 것입니다. 당신들이 하나님을 찾되 마음과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찾으면 만날 것입니다.”고 했다. 기도의 목적은 주 하나님을 찾아서 만나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곳에 계시는데 우리가 왜 기도해서 찾아야 하는가? 유대교의 『하나님에 관해서 물었을 때』 라는 책은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는 부모님을 사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부모님은 항상 우리 마음 속에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캠프에 가 있을 때 부모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습니까? 이러한 질문에 아이들은 ‘편지를 쓰거나 전화를 한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편지나 전화를 하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과 떨어져 있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 ‘있을 수 없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아니 계신 곳이 없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찾아서 자꾸 부르고 기도하는 것은 어머니나 아버지에게 전화를 하거나 편지를 쓰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렇게 전화를 하거나 편지를 쓰면서 부모님을 생각하듯이 기도할 때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과 더 가까이 있으려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장소에서 배우는 기도의 목적 1

하나님은 언제나 어디에서나 우리와 함께 계신다. 그러나 우리가 육체적으로 하나님의 존재 앞에 있다는 것을 나타낼 수 없다. 그것은 하나님은 보이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시 139:7,8, 새번역) 내가 주님의 영을 피해서 어디로 가며, 주님의 얼굴을 피해서 어디로 도망치겠습니까? 내가 하늘로 올라가더라도 주님께서는 거기에 계시고, 스올에다 자리를 펴더라도 주님은 거기에도 계십니다.
(시 139:12, 새번역) 주님 앞에서는 어둠도 어둠이 아니며, 밤도 대낮처럼 밝으니, 주님 앞에서는 어둠과 빛이 다 같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은 우리와 멀리 떨어져 계실 수 없는 분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그리고 우리는 이와 같은 사실을 먼저 깨닫고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야 된다. 그것은 우리가 만약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입술 위에 하나님의 이름을 두지 않는다면, 우리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두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서 기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기도할 수 없게 되면 하나님은 우리와 너무나 멀리 계시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지만 우리가 하나님과 멀리 느껴지는 것은 우리 자신 때문이다.
그러므로 유태인들에게 “왜 기도하느냐?”고 물으면 “나는 하나님을 생각하기 때문에 기도하며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기 위하여 기도한다.”고 한다. 따라서 그들의 기도의 목적은 하나님 앞으로 더 가까이 나아가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하나님의 마음이 자신의 마음을 점령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순간순간 기도할 수밖에 없다고 그들은 가르친다.
시편 145:18의 말씀에 “주님은, 주님을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가까이 계시고, 진심으로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가까이 계신다.”라고 하였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장소에서 배우는 기도의 목적 2

유태인들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생각을 알고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기도할 때에 자신의 생각을 알 수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기도한다.”고 말한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내적인 면과 외적인 면이 분명히 같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내적인 면과 외적인 면이 같도록 하기 위해서 매우 신경을 써야 한다. 내적인 사상과 외부적인 행동을 고상한 인격으로 바꾸려면 인간의 생각은 허무하고 악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자신을 바르게 알면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생각을 바꾸는 방법이 바로 기도라고 유태인들은 가르친다. 유태인들은 기도를 통해서만이 인간의 내면을 바꿀 수 있다고 가르친다. 그들은 기도를 통해서 생각을 하나님 생각으로 충만하게 채울 수 있으며, 하나님을 생각하므로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고, 하나님께 가까이 감으로 말미암아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나의 생각은 악하고 더럽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나의 모든 생각을 하나님 앞에 내어 맡김으로써 나의 내면적인 사상이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친다. 따라서 그들은 기도를 통해서 인간의 생각이 바뀌기 때문에 인간의 내면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어릴 때부터 기도를 가르친다.
자주 기도할수록 하나님께 더 자주 나아가게 되고, 그렇게 할 때에 자신의 내면에서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부끄러움이 없는 생각을 가질 수 있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부끄러움이 없는 생각이 자신에게 있을 때만이 자신의 기도에 응답이 오며 자신의 생각과 사상이 변하게 된다. 그러므로 시편은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고 말한다.
“너는 기도를 통해서 진실해지고, 신실해져야 한다.” 이것이 유태인들이 제일 먼저 기도를 가르치는 또 하나의 이유이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장소에서 배우는 기도의 목적 3

하나님은 기도를 통해서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배운다. 기도를 통해서 자신의 소원을 들어주시는 하나님이시기에 피조물인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해야 하는데, 하나님의 뜻을 찾아 자신의 뜻을 하나님의 뜻으로 바꾸어 기도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며 응답하시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기도를 가르친다.
기도를 통해서 우리 마음이 소원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거룩함으로, 고귀함으로, 순수함으로, 깨끗함으로 가까워지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과 가까워지기 때문에 하나님을 더 많이 닮으려고 기도하게 된다.
유태인은 사람은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마음을 소유할 수 있다고 한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장소에서 배우는 기도의 목적 4

유태인이 자녀들에게 어릴 때부터 열심히 기도를 가르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사람과 함께 하시며 도와주시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도움의 통로가 기도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생각과 마음은 물론 우리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아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그것이 있어야 할 것인지, 없어도 될 것인지를 누구보다 더 잘 아신다.
그래서 그저 하나님 앞에 맡겨 놓고 “하나님이여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라고 이야기할 때, “하나님이여 언제 내가 그 일을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하고 하나님께 맡길 때 하나님으로부터 도움이 온다는 것이다. 이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그들은 기도를 가르친다.
기도의 응답은 반드시 나타나는데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장 좋은 대로 응답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것을 요구하시는지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유태인들은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으로, 복이 되는 것으로, 꼭 필요한 것으로 응답하신다고 말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응답하시는 방법은 우리가 말할 수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만이 아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무엇을 아느냐고 물으면 “하나님은 나의 주인이시고, 하나님은 나의 모든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나에게 모든 것을 완벽하게 주신다.”는 것 외에는 모른다고 한다.
유태인들이 아주 좋아하는 말은, “나는 당신의 백성이고, 당신은 나의 왕이십니다. 나는 당신의 어린 아이입니다. 당신은 나의 아버지입니다. 나는 당신의 양입니다. 당신은 나의 목자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당신은 지키는 자입니다. 나는 당신의 사랑을 받은 자요, 당신은 나를 사랑하는 자입니다.”
사람들이 진정 하나님의 사랑을 덧입었다는 것을 아는 때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를 안성맞춤으로 도와주시는 것을 느끼고 체험했을 때이다. 그때 사람들은 하나님 앞으로 점점 더 가까이 갈 수 있다. 이 때문에 유태인들은 가능한 빨리 자녀들에게 하나님 앞에 서는 방법인 기도를 가르치려고 노력한다.

유대교 문헌에 나타난 유대교 교육의 원리

첫째, 연구하고 공부하고 배우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의무이며 삶의 본질이다.
둘째, 개개인의 인격은 교육에 의해 향상될 수 있다.
셋째, 배우는 것은 실천을 위한 것이다. 배움과 삶은 분리될 수 없다.
넷째, 교육은 끝이 없다.
다섯째, 교육은 사회와 공동체를 위한 것이다. 자기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여섯째, 교육은 아주 어릴 때부터 시작하여야 한다.
일곱째, 학생의 달란트를 발견하는 교육을 해야 한다. 개인의 능력을 발견하여 개발하는 교육을 해야 한다.
여덟째, 교육은 가정과 회당과 유대교 공동체에 의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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