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인 거듭남- 제13장 구원의 네 가지 요소들 & 제14장 정직한 답변
제13장 구원의 네 가지 요소들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고전 6:11).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은 죄로 말미암은 모든 문제를 치료한 것이다. 그것은 아담과 다른 이들에 의해서 잃어버린 바된 모든 것들을 회복시킬 것이며(롬 5:5-21),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게 하실 것이다(롬 8:29; 요일 3:2). 이 장에서는 칭의, 중생, 양자됨 그리고 성화 등 구원의 네 가지 요소에 대해서 언급하고자 한다.
칭의(稱義, Justification)
칭의는 하나님이 죄인을 의롭다고 선포하시는 과정을 말한다. 죄인은 사실상 본성적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가 과거에 지은 죄와 상관없이 그를 '의롭다고' 보시는 것이다. 칭의는 법적인 용어로서 사람이 하나님께 어떤 식으로 보여지느냐에 대해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칭의는 두 가지 요소로서 이루어진다.(1)하나님이 죄인을 용서하시는 것. 그의 죄의식과 죄로 인한 벌들을 사하시는 것(롬 4:6-8; 8:1). (2)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의를 죄인에게 전가(傳嫁, Imputes) 시키시는 것. 그럼으로써 죄인이 무죄한 그리스도의 모든 것들에 참예하게 되는 것(롬 3:22; 4:3-5; 고후 5:20-21). 이러한 두 가지 요소의 결과로서 의롭다 함을 받는 사람은 완전히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게 된다(롬 5:1, 9-10). 그리고 그는 영생을 포함한 하나님의 모든 약속을 받게 된다(롬 5:9; 8:30; 갈 3:10-14; 딛 3:7).
칭의는 하나님의 은혜에서 비롯된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속하신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롬 3:24-25).
칭의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오는 것이지 결코 선행으로 얻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롬 3:28).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롬 4:5).
그리스도의 보혈은 그의 죽음과 부활을 포함하는 전체의 구속 사업을 유효하게 한다. 즉 그분의 죽으심은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를 만족시켰으며, 또한 그의 부활은 십자가에 죽으심을 유효하게 하였다.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으니라"(롬 4:24-25). 하나님의 은혜는 칭의의 원천이요, 그리스도의 피(그분의 죽으심과 장사지냄, 부활)는 칭의의 근거이며, 믿음은 우리가 그 칭의를 받는 조건이다.
칭의는 오직 믿음으로만 오기 때문에 칭의는 사람이 자신을 구원하는 믿음을 온전히 발휘할 때, 즉 복음에 순종할 때 이루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온전한 칭의는 사람이 회개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성령을 받을 때에 받게 된다.
고린도 전서 6:9-10에서 바울은 열 가지의 불의한 사람들의 경우를 나열하고 그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그러나 그는 계속해서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고전 6:11) 라고 선언한다. 즉 칭의란 그들이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성령을 받았을 때 이루어진 것이다. 이 구절이 '침례'라는 단어를 구체적으로 사용하지 않았지만 스미스 성경사전(Smith's Dictionary of the Bible)은 이 구절이 침례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임을 설명해 준다. "일반적으로 이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설명된다. …이 구절이 침례를 의미하는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한 침례교 신학자는 "이 구절을 침례와 연관시키는 학자들의 견해는 매우 일치되어 있다"고 덧붙인다.
회개와 침례, 그리고 성령 침례의 목적들을 더 자세히 살펴보면 칭의는 이 세 가지 모두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회개 할 때 사람과 하나님은 개인적인 관계를 맺게 되고, 그럴 때 물침례와 성령침례의 근원이 형성되게 된다. 물침례 시에 하나님께서는 죄를 사하신다(행 2:38). 그것은 칭의의 첫째 요소가 된다.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의 의를 사람에게 심으신다.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내주하시기 때문에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 진다(롬 8:4).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롬 8:9-10). 내주하시는 성령께서는 우리가 미래의 구원을 얻도록 도와 준다(롬 8:11). 성령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과 약속을 받는 자들이 된다(롬 8:15-17; 갈 3:14). 간단히 말해서 성령의 침례는 칭의의 두번째 요소가 된다.
칭의는 처음에 죄를 회개함으로 시작되고 물 침례와 성령의 침례로 완성된다. 그러므로 칭의는 거듭남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칭의를 거듭남의 한 요소에만 연관시키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왜냐하면 거듭남은 하나의 사건으로 간주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칭의는 거듭남이 이루어진 후에 죄를 짓고 자백을 거듭하는 모든 신장에게 계속적으로 적용된다.
중생(重生,Regeneration)
중생은 거듭남을 의미한다. 그것은 이전의 성품을 개혁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중생한 사람은 이전의 죄성을 이길 수 있는 거룩한 성품을 받는다. 거듭남은 두 가지 요소로 이루어지다. (1)이전의 옛 성품을 끝내는 것(고후 5:17). (2)하나님께로부터 새로운 성품을 받는 것(엡 4:24; 골 2:10; 벧후 1:4).
새로운 성품은 사람의 욕구와 태도에 변화를 가져 온다(엡 4:23-32). 그리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힘을 준다(행 1;8; 롬 8:4). 거듭남은 우리에게서 죄성을 제거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두 가지 법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육신의 법이고(죄성이나 육욕적인 성품) 다른 하나는 성령의 법이다. 만약 그가 육신의 요구를 따라 행하거나 육신을 의지한다면 그는 죄를 이기는 거룩한 삶을 살수가 없다(롬 7:21-25; 8:12-13; 갈 5:19-21). 그러나 만일 그가 성령을 따라서 살면 그는 죄를 이기는 삶을 영위하게 될 것이다(롬 8:1-4; 갈 5:22-23; 요일 3:9). 어떤 사람도 거듭남의 역사 없이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요 3:3-7; 갈 6:15).
거듭남은 하나님의 은혜로서 시작된다(요 1:13; 딛 3:5; 약 1:18). 그리고 사람의 믿음을 통해서 온다(요 1:12-13).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태어난 바 되었다(고전 4:15; 약 1:18; 벧전 1:23). 말씀을 듣는 것으로 우리 구원의 씨가 뿌려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거듭남으로 태어나기 위해 우리는 사도행전 2:38을 순종함으로써 믿음으로 응답해야 한다. 회개와 물 침례를 받을 때 우리의 옛 사람은 죽고 묻힌다. 그것은 우리의 옛 생활 습관과 죄가 주관하던 삶의 행태가 파괴된 것을 말한다(롬 6:1-7). 성령의 침례는 새로운 성품을 우리에게 주고 옛 사람이 죽은 것을 완전하게 해 준다(롬 8:8-9,13). 그러므로 물 침례와 성령의 침례는 중생의 두 가지 요소와 일치한다. 두 가지 모두 거듭남의 일부이다. 따라서 중생은 우리가 회개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성령의 침례를 받을 때 일어난다. 거듭남의 역사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동안 하나님의 뜻을 알려 주고, 영적인 인도와, 매일의 죄를 이길 수 있는 힘을 공급해 줌으로서 우리에게 유익이 된다.
양자(養子)됨(Adoption)
양자됨이란 아이를 선택해서 새로운 가족과 연결하여 자리를 잡아주는 것을 의미한다. 중생은 우리가 새로운 영적 탄생에 의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말한다. 양자됨은 우리가 하나님의 선택에 의해서 그분의 장성한 아들과 상속자가 되었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양자됨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과 그에 따라서 그 위치에 관련된 모든 권리를 함께 부여받는 것을 말한다. 갈라디아서 4장 1-7에서 바울은 율법 아래에서의 삶과 그리스도가 오신 후의 성령 안에서의 삶을 대조시킨다. 그리스도의 죽으심 이전에는 사람들이 세상에 매여서 살았다. 마치 다 자라지 못한 자녀들이 보호자와 개인교사들의 영향하에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사람들은 율법에 매인 채로 살았다. 그리스도께서 구속의 역사를 이루신 후에 하나님의 자녀들은 성숙해진 것이고 그리스도의 영을 받았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유업을 받을 자들이 되었다. 바울은 양자됨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이러한 신분의 변화를 설명했다. 왜냐하면 양자됨은 사람이 이전에는 전혀 누릴 수 없었던 권리와 특권을 부여해 주기 때문이다.
로마서 8:14-17에서 바울은 양자됨의 비유를 조금 다르게 사용한다. 우리가 회심할때,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형제가 된다. 그리고 양자로서 우리는 친가가 누리는 모든 법적인 권리와 특권을 받게 된다. 그리스도는 독생자이시며 또한 유일한 상속자이시다. 그러나 우리가 양자로 받아들여짐으로서 우리 또한 아버지의 상속자가 되고 그리스도와 함께 유업을 누리는 자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아직 양자됨의 모든 유익을 누리지는 못했다. 우리는 아직도 하나님의 자녀로서 몸의 구속과 함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리고 있다(롬 8:23).
양자됨은 하나님의 은혜와 선택에서 비롯된다(엡 1:4-5). 그리고 믿음을 따라서 온다(갈 3:26). 성경은 양자삼음이 물 침례와 성령의 침례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가르친다. 왜냐하면 이것이 우리를 하나님의 가족으로 편입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갈 3:26-27),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 12:13),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롬 8:15). 결국 성령은 하나님의 양자가 되기 위한 중보인 동시에 양자로서 얻는 첫 이득이 된다.
하나님의 가족으로 편입되는 것은 거듭남과 동시에 일어난다. 다른 말로 하면 거듭난 자는 이미 하나님의 자녀라고 불리므로 거듭남과 동시에 이미 양자됨은 과거의 일이 되었고(요일 3:1), 또한 거듭남과 동시에 이미 하나님의 유업의 첫 열매로써의 성령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롬 8:23; 갈 4:6; 엡 1:13-14). 그리고 우리는 미래의 유업에 대한 확증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양자됨은 아직 미래의 일이기도 하다. 우리는 아직 모든 피조물 앞에서 우리의 위치가 드러나는 것과 우리 몸의 구속, 그리고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때 받게 될 모든 우리의 유업을 기다리고 있다.
성화(聖化, Sanctification)
성화는 문자적으로 '구별(Separation)'을 의미한다. 우리가 앞에서 이야기한 문맥으로 설명하자면 성화는 거룩함과 같은 뜻이고 그것은 죄로부터의 분리와 하나님께로 헌신되는 것을 의미한다. 성화는 의로운 사람, 즉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이 되어 가는 과정을 말한다.
우리가 거듭났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죄로부터 분리하신다(고전 6:11). 그러나 그것은 단지 시작일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계속 역사하시고 우리가 거룩해지도록 인도하신다. 성경은 우리가 성숙함과 온전함을 이 삶에서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고후 3:18; 7:1; 엡 4:11-15; 벧후 3:18).
이것은 그리스도처럼 완전한, 죄가 전혀 없는 상태의 온전함이 아니라 상대적인 온전함이다. 왜냐하면 죄의 속성과 죄를 지을 가능성은 항상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절대적인 의미로의 온전함에서는 다른 단계에 있을지라도, 상대적 의미에서의 온전함에는 이를 수 있다. 그것은 마치 두 어린 아이들이 성장 과정에서는 각기 다른 단계에 있으나 두 아이 모두 아주 정상적이고 건강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우리가 어떤 과거를 가지고 있느냐와 우리가 가진 능력과 가능성, 또한 그분이 우리에게 주신 것들을 가지고 평가하신다(마 13:23; 25:14-30). 그분은 우리가 자라기를 원하신다(막 4:26-29). 만약 우리가 거듭났다면 적당한 속도로 성장할 것이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들을 사용함으로 회개에 합당한다. 우리는 그분 앞에서 온전해 질 수 있다. 그분이 우리에게 주신 목표는 상대적인 온전함을 성취하시는 것이다(마 5;48). 만약 우리가 성화의 과정에 순종한다면,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그는 우리를 그분 자신처럼 온전케 변화시키실 것이다(빌 3:12-14; 살전 3:13; 요일 3:2).
우리의 성화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에서 비롯된다. 그것은 또한 그리스도의 희생에 기반을 두고 있다(행 26:19; 살전 5:23; 히 10:10)). 성화는 첫 단계는 회개와 물침례, 그리고 성령의 침례이다(고전 6:11). 그리고 계속되는 성화는 우리가 믿음으로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동안에(롬 1:17),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진다(살후 2:13; 벧전 1:2).
요약하자면, 성화는 거듭날 때 일어나는 하나님의 역사로서 우리가 죄로부터 구별되어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시작된다. 또한 성화는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계속되며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서 재림하실 때 완성될 것이다.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 계획
로마서 8:28-30은 타락한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다섯 단계의 구원계획을 기록하고 있다.
(1)예지(Foreknowledge).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죄를 지을 것과 구원 계획이 필요하게 될 것을 미리 아셨다. 또한 그분은 당신의 구원 계획에 응답할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아셨다.
(2)예정(Predestination).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응답할 이들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아셨기 때문에, 그분은 창세로부터 그리스도의 구속적 희생에 의해서 사람들을 구원할 계획을 세우셨다(벧전 1:18-20; 계 13:8).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선택한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기로 예정되었다.
교회는 성공하기로 예정되었으나 각각의 개인은 자신을 예정된 구원의 계획 속으로 포함시킬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3)부르심(Calling).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계획을 실행하시면서 모든 사람들을 부르신다. 로마서 8장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일반적인 부르심에 응답하는 자만이 교회에 속할 수가 있다(헬라어로 에클레시아-akklesia-는,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라는 뜻임).
(4)칭의(Justification).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자들을 의롭게 하신다. 그분은 그들을 의롭다고 선포하시고 그들에게 구원의 유익을 주신다.
(5)영화(Glorification). 마지막 단계는 영화이다. 그것은 성화의 완성을 의미한다. 로마서 8장은 그것을 과거 시제로서 표현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에서는 이미 이루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미리 예정된 일(Predestined event)이다. 그 때 우리는 완전하고 죄로부터 자유로운, 영광을 입은 몸을 입게 된다. 하나님의 계획이 완전히 성취될 때 우리는 죄로부터 완전하고도 영원한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
요약
(1)칭의, 하나님께서 사람을 의롭다고 칭하시는 것. (2)중생, 우리가 거듭나고 새로운 본성을 받게 되는 것. (3)양자됨,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이 되고 그분의 상속자가 되는 것. 그리고 (4)성화, 우리가 죄로부터 분리되고 실제로 의롭게 되는 과정.
이러한 모든 구원의 역사는 하나님의 은혜에서 비롯되고 그리스도의 보혈로서 이루어지며 또한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우리에게 적용된다. 더욱이 우리가 회개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며 성령의 침례를 받을 때 이 네 가지 모두는 일어난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이 더욱 명백해짐을 알 수 있다. (1)구원은 믿음을 통해 은혜로서 얻는 것이며 (2)물침례와 성령침례는 우리 구원 체험의 일부라는 것이다.
칭의, 중생, 양자됨과 성화를 이루는 첫 단계는 모두 우리가 거듭날 때 일어난다. 우리는 그것들이 동시에 일어나는 하나의 사건임을 강조하고자 한다. 성경은 물과 성령의 침례가 합하여 구원을 이루는 온전한 하나임을 강조한다(4장 참조). 따라서 우리는 두 가지의 침례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구원에 있어서 완전하지 못하다고 믿는다. 사도행전의 일반적인 패턴도 두 가지가 함께 일어나는 것이었다(행 2:38; 10:44-48; 19:1-6).
만약 사람들이 믿음을 가지고 물 침례와 함께 성령의 침례에 대해서 배운다면 그들은 사도시대와 마찬가지로 성령을 받을 것이다. 그들은 침례를 받고 물에서 나온 후에 성령의 침례를 받던지, 아니면 성령의 침례를 받은 후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받는 침례의 명령을 순종할 것이다(행 19:1-6; 행 10:44-48).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회개와 물 침례와 성령의 침례를 동시에 받은 사람의 경우에 대해서 토론하였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고안하셔서, 우리가 요한복음 3:5과 사도행전 2:38의 단순한 메시지를 순종할 때, 모든 구원의 요소들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제14장 정직한 답변
이 책을 마감하면서 우리는 이 책을 시작할 때 제기했던 원래의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 본다.
“내가 구원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에 대한 신약 성경의 답변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를 회개하고, 죄사함을 위해서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성령의 침례를 받음으로 능력을 받아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이다.
구원의 방법에 대한 참된 성경의 연구는 우리를 이와 같은 대답으로 인도한다. 성경은 구원에 관한 직접적인 질문에 대한 명백한 대답을 한다(1장). 그것은 구원하는 믿음에 대한 성경적인 정의이다(2장). 그것은 그리스도의 복음, 즉 그분의 죽으심과 장사지냄, 그리고 부활이 우리의 삶에 적용되는 것이다. 그것은 모든 신약의 설교자들이 가르친 것이다(3장). 그것은 거듭남이며, 거듭남은 물과 성령으로 이루어진다(4장).
회개는 죄에게서 돌아서서 하나님을 향하는 것이다. 그것은 지성(intellect), 감성(emotions), 의지(will)의 변화를 포함하여 자신의 죄를 깨닫고 고백하고, 애통해 하며, 그 죄를 버릴 결심을 하는 것이다(5장).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침례 방법은 물 속에 잠기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 때 죄를 회개한 사람의 죄를 씻으신다(6장). 또한 올바른 침례의 방법은 예수의 이름을 불러 외치는 것이다. 예수의 이름은 천하 인간이 구원을 받을 만한 유일한 이름이기 때문이다(7장). 성령의 침례는 구원의 일부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성령을 믿는 사람에게 주시기 때문이다(8장). 성령침례의 성경적인 증거는 방언을 말하는 것이다. 방언은 또한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성령의 은사로서, 개인적인 혹은 예배시의 방언으로 존재한다(9장).
사도들이 이 말씀을 전했을 뿐만 아니라 초대교회 이후의 교부들도 이것을 가르쳤다. 더우기 이 가르침은 교회 역사를 통해서 계속적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20세기에 이르러서는 큰 부흥을 맞는다(10장, 11장).
성경은 이러한 완전한 복음에 어떤 예외도 두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그 어떤 불완전한 가르침에도 만족해서는 안된다(12장). 칭의와 중생, 양자됨과 성화를 포함하는 다양한 구원의 역사 모두는 우리가 복음을 완전히 순종할 때 우리의 삶 속에서 나타난다(13장). 그러나 거듭남의 체험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어 나가는 첫 단계일 뿐이다. 거듭난 사람은 그 후에 믿음으로 걷고 죄로부터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아서 미래에 올 완전한 구원을 누려야 한다.
우리는 이 신약의 체험을 하지 못한 사람들을 배척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 또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선물을 받으라고 권고하고자 한다. 누구든지 "내가 그것을 꼭 받아야 합니까?" 라는 부정적인 질문을 하지 말고 "오늘 내가 그것을 받을 수 있습니까?"라고 물어야 한다. 하나님을 위해 산다는 것은 구원을 받기 위한 책임을 최대한 줄이려는 의도에서 질문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일들에서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그분의 뜻을 구하려는 질문을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경험과 교리는 완전히 성경적이고 사도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이 완전한 사도적 복음을 바탕으로 하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은 그에 대해 하나님께 대답해야만 할 것이다. 우리의 책임은 명백하다. 우리는 진리라고 알고 있는 그것을 행해야 한다.
때때로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묻는다. "만약 내가 그와 같은 신약의 체험을 받지 못한다면 지옥에 가게 됩니까?" 우리는 아무도 천국에 간다든지 지옥에 간다든지 하는 식으로 판단할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말할 수 있고 또 그것만을 말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분석해 볼 때 그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이 단순한 구원의 복음을 따르라고 명령하신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베드로의 메시지는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생생하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행 2:38-39).
우리는 지금까지 거듭남에 대한 성경적인 이해를 설명했다. 순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확인하기 위해서 공부해 오면서 우리는 성령께서 말씀을 비추어 주시기를 간구했다. 우리가 지금껏 연구한 교리들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장사지냄, 부활하심만이 유일한 구원의 반석이며,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을 재확인해 주었다. 은혜의 적용과 믿음의 표현은 우리가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물침례와 성령의 침례를 경험할 때 이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