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사도적 특징

우리의 사도적 특징


사도적 오순절 운동 또는 유일성 오순절 운동의 특징은 무엇인가? 무엇이 우리를 다른 기독교 그룹들과 다르게 만드는가? 이 질문을 살펴보기 위해, 역사 속의 주요 기독교 운동과 현대 문화에 대한 기독교의 반응을 간략히 살펴보자.


우리는 네 부분으로 구성된 신약 성경에서 기독교 교회의 원형을 발견한다. 복음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는데, 그분의 삶과 사역, 죽음, 장사, 부활로 교회의 기초를 놓으셨다. 사도행전은 신약 교회의 창립을 기술하는데, 1세기 지중해 부근의 많은 지역 교회들을 포함한다. 서신서는 교회에 주는 가르침이며, 요한계시록은 교회에 주는 예언적 메시지이다. 이 27권의 책은 1세기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택하신 지도자들 곧 사도들과 그 동역자들에 의해 쓰여졌다. 그리하여 그들은 사도의 권위를 가지고 우리에게 와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사도들을 통해 세우신 교회의 정확한 모습을 우리에게 전한다.


이후 수세기 동안 교회와 세계는 큰 변화를 겪었다. 오늘날 모든 기독교 그룹들은 교회 원형의 메시지와 사명을 계속 이어가려고 하지만, 20세기 후 어떻게 그렇게 할 것인가가 문제이다. 세 가지 기본 방법이 시도되었다.


전통(Tradition). 이 방법은 로마 카톨릭과 동방 정교회에 채택되었다. 이 교회들은 사람의 전통에 의존하는데, 이를 성경의 권위와 동등하다고 여긴다. 그들은 교회의 진정한 교리가 권위있는 공회와 신조를 통해, 그리고 로마 카톨릭의 오류없는 교황들을 통해 가장 고대의 교회와 주교들로부터 끊임없이 전수되어왔다고 믿는다. 이 공회와 신조는 신약의 마지막 책 이후 2세기가 넘은 325년 니케아 공회에서 시작되었다.


성경에 근거한 전통이 좋을 수도 있지만, 이 방법은 틀리기 쉬운 사람의 전통에 의존하고 종종 성경 자체의 메시지를 모호하게 만들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 예수님은 이 문제에 대해 유대인들에게 이사야서에 나온 하나님의 말씀을 일부 인용하여 경고하셨다: “‘그들은 사람의 훈계를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예배한다.’ 너희는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고 있다… 너희는 너희의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도 저버린다… 너희는 너희가 물려받은 전통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헛되게 하며…” (막7:7-9, 13, 새번역).


인간이 진리를 단순히 대대로 물려주려고만 하면 틀림없이 왜곡하게 된다. 비유를 하자면, 같은 길이의 판자 20개를 자르려고 할 때, 첫 번째 판자를 사용하여 두 번째를 자르고 두 번째 판자로 세 번째 판자를 측정하고 그리고 계속 이렇게 하는 것은 실수이다. 이 과정에서 작은 변화가 마지막에 현저해질 때까지 누적된다. 대신 우리는 원래의 기준에 따라 각 판자를 측정해야 한다.

실제로 교회 역사의 지난 50년 동안, 우리는 성도덕에 대한 관점의 변화 등 주류 교회들의 신념과 관행에 중대한 변화를 목격했다.


개혁(Reformation). 또 다른 방법은 1517년에 시작된 프로테스탄트 종교 개혁에 의해 채택되었다. 로마 가톨릭 수도사인 마틴 루터는 중세 천주교 제도에 도전하고, 대신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는 성경적 가르침을 선언했다. 그와 그의 추종자들은 비성경적인 로마 가톨릭 교리에 항의했기 때문에 “항의자(Protestant)”라고 불렸고, 그들은 이러한 문제에 있어서 기존의 교회를 개혁하려고 했기 때문에 “개신교(Reformed)”라고 불렸다. 그러나 그들은 모든 면에서 1세기 교회의 가르침으로 돌아 가지는 않았다. 신조, 전례, 교회 정부, 교회와 국가의 연합, 생활 방식과 같은 많은 문제에서 그들은 수세기에 걸쳐 발전해 온 전통을 유지하는 것에 만족했다. 루터는 행위에 의한 구원은 거부했지만,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자발적이고 순종적인 응답이라는 성경적 개념의 믿음으로 되돌아가는 대신에 개인 예정(individual predestination), 무조건적 선택(unconditional election), 무조건적인 영원한 보장(unconditional eternal security)이라는 어거스틴의 5세기 교리를 수용했다. 그는 교회가 원래는 물속에 완전히 잠기는 침수식으로 사람들에게 침례를 주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물을 뿌리거나 붓는 중세 관행을 이어갔다. 그의 시대에 어떤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기 시작했는데, 아마도 그가 교리의 최종 권위로 성경을 강조한 것에서 영감을 받았을 것이다. 루터의 추종자들 중 일부가 이 사람들을 책망해달라고 요청하자, 루터는 “우리가 사도행전에서 읽은 것처럼 사도들이 침례에 이 식문을 사용한 것이 확실합니다”라며 거절했다. (교회의 바빌론 유수 The Babylonian Captivity of the Church, 1520, in Luther ’s Works, ed. Abdel Wentz, vol. 36, p. 63.) 그러나 놀랍게도, 그는 이 원래의 침례를 회복하지 않고 전통적인 삼위일체 식문을 계속 사용했다. 그는 또한 그의 시대에 성령의 은사를 구하는 사람들을 광신자라고 부르며 반대했다.


회복(Restoration). 오순절은 세 번째 방법을 따른다. 단지 일부 전통을 개혁하는 대신 원래의 사도적 교회로 회복하려고 한다. 20세기 초 캔자스 토페카에 있는 작은 성경학교의 설립자인 찰스 파함과 로스앤젤레스 아주사 거리 부흥의 설립자인 윌리엄 세이모어와 같은 지도자들은 방언 표적의 성령 침례를 전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심지어 이 경험을 직접 받기 전에도 그렇게 했다. 이것은 그들의 종교적 전통과 그들 자신의 경험에 어긋난 것이었지만, 신약에서 이것을 발견했기 때문에 그들은 전했다. 그들은 교회 원형의 경험과 메시지를 회복하려고 노력했다. 그들은 사도들이 이 경험을 받아들이고 전했다면, 그들 역시 그렇게 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 복원주의자의 충격은 현대 오순절 운동으로 이어졌다. 마찬가지로, 많은 초기 오순절 지도자들은 사도들이 항상 예수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었다는 것을 발견하여 그들은 이 실제를 회복하고 그 이유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회복에 대한 열망은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받는 물침례, 예수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의 유일성, 그리고 사도행전 2:38에 따른 거듭남으로 이끌었다.


오순절은 모든 세대가 말씀과 성령으로 새롭게 되기 위하여 신약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믿는다. 그들은 예수의 주되심을 영화롭게 여겨 복원주의적 방법을 채택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도들에게 교회를 세우고, 제자로 삼고, 제자들에게 그가 명하신 모든 것에 순종하도록 가르치라고 명하신 분이다(마 28:19–20; 요 17:20; 유 3, 17). 다시 말해, 우리가 사도들의 가르침을 회복할 때 예수님께서 제정하신 계획을 실현하는 것이다. 요컨대 오늘날 교회는 신약 교회가 확립한 전형을 따라야 한다.


초대 교회의 전형. 사도행전 2장은 오늘날 교회의 모델로서 예루살렘의 교회 원형을 묘사하고 있다. 우리는 회복하고 본받아야 할 최소 6가지 요소를 확인할 수 있다.


• 사도적 경험(2:4, 17–18, 41).

• 사도적 메시지(2:42). 이 메세지는 하나님과 사람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포함한다(2:21–22, 36); 그리스도의 죽음, 장사, 부활의 복음(2:21–26); 회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받는 물침례, 성령의 선물을 받음으로 복음에 대한 우리의 반응(2:37–39); 그리고 그 이후의 거룩함의 삶 (2:40).

• 교제와 연합(2:42–45): 신자들 사이의 수평적 관계. 그들은 교제의 식사와 성만찬에 참여했고, 가정과 성전 뜰에서 만났으며, 교회의 필요에 희생적으로 기부했다. 모든 개인의 재산은 박탈되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많은 집과 다른 소유를 보유하고 있었고 또한 이후에도 여러 차례 기부했다. 교회가 여러 지역으로 확장하고 해가 거듭될수록 그들은 주간 기부 체계를 구축했다(고전 16:2).

• 기도와 찬양 (2:42, 46–47): 하나님과의 수직적 관계.

• 성령의 은사를 포함한 기사와 표적(2:43).

• 전도와 교회 성장(2:47).


21세기의 1세기 교회. 오늘날의 문화는 점점 더 세속적이고, 후기 기독교적이고, 포스트모던적인데, 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리를 상대적이며 조건부로 여긴다는 의미이다. 그들은 (성경과 같은) 권위와 논리적인 논증을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다른 신념과 생활 방식을 동등하게 유효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간증과 경험에 개방적이다. 여러 면에서 우리의 문화는 1세기처럼 이교도의 가치와 도덕으로 되돌아갔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문화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우리는 최소한 5가지 현대적 접근 방식을 확인할 수 있다. (아래의 구별은 일반화하여 설명한 것으로 특정 그룹을 비난하기 위한 것이 아니며, 이 목록은 전부를 다 포함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 근본주의자(Fundamentalist): 이 접근 방식은 성경의 권위를 크게 강조하지만 성령의 동시대 사역을 최소화한다. 이것은 성경적 합리주의와 세속적 합리주의에 맞서 싸우는데, 종종 포스트모던한 사람들과는 관련이 없어 보인다. 이러한 교회들은 세속 문화를 공격하고 거부하는 경향이 있으며, 결국 사회도 일반적으로 그들을 조롱하거나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 자유주의자(Liberal): 이 접근 방식은 세속 문화의 가치를 포용한다. 이러한 교회들은 교리를 진화하는 것으로 보고 현재의 심리적, 사회학적 이론에 비추어 도덕적 견해를 다시 해석한다. 우리는 이들이 문화에 맞기 때문에 빠르게 성장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쇠퇴하고 있다. 그 이유는 그들이 달리 제공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세속 문화를 완전히 수용하는 사람들은 인정을 받기 위해 교회에 갈 필요가 없고, 세속 문화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은 답을 얻기 위해 다른 곳으로 간다.

• 은사주의자(Charismatic): 이 접근 방식은 하나님과의 경험을 크게 보여주지만, 일반적으로 견고한 교리적 책임이나 생활 방식에 대한 열심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든 하나님을 만나지만, 성경적 체계가 부족하기 때문에 높은 비율로 떠나간다. 뼈대가 없는 몸이나 기초가 없는 건물처럼 이런 교회들은 사람을 세우고 성숙하게 키우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접근 방식은 새 포도주(하나님의 운행)를 낡은 가죽 부대(낡은 교리와 생활 방식)에 넣는 것과 같다.

• 이머전트(Emergent): 이 접근 방식은 권위를 무시하고 문화적으로 관련된 방법을 받아들여 포스트 모더니즘을 수용한다. 몇 가지 새로운 방법이 도움이 되지만, 이러한 교회는 전형적으로 구원, 생활 방식의 선택, 성도덕, 하나님의 심판, 지옥에 대한 확고한 입장을 취하지 않는다.

그들은 전통적인 교회 즉, 보수적이고 자유주의적인 교회들이 포스트모던 사람들과 잘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복음의 변화시키는 힘보다 포장과 마케팅을 더 강조한다. 이 접근 방식은 낡은 포도주(전통 개신교)를 새 가죽 부대(새로운 방법과 접근법)에 넣는 것과 같다.

• 사도적(Apostolic): 앞서 언급한 접근 방식 대신에 새 포도주는 새 가죽 부대에 담을 필요가 있다(막 2:22). 우리는 새로운 교리 체계와 새로운 삶의 방식이라는 맥락에서 성령의 새롭게 하시는 사역이 필요하다. “새롭다”는 것은 현대적이고 비성경적인 계시가 아니라 원래의 사도적 메시지를 재건한다는 의미이다. 단순히 전통을 받아들이거나 개혁하는 것이 아니라, 신약 교회의 패러다임을 회복해야 한다. 1세기 교회는 성경에 근거한 유대교 문화에서 태어났지만, 성령의 능력으로 로마 제국의 이교 문화에서 급속히 확장되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사도적 양식을 따름으로써 21세기 후기 기독교 문화에서 큰 부흥을 이룰 수 있다. 포스트모던 문화를 포용하거나 공격하는 대신에 사도적 접근 방식은 소망, 구원, 완전한 변화 및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제공한다.


사도적 세계관. 요약하자면, 유일성 오순절(Oneness Pentecostals)은 주변 세계와 대조적으로 다음과 같은 독특한 관점을 가지고 있다. 그 결과 독특한 사도적 세계관과 삶의 방식이 탄생했다.


• 한 분 참 하나님, 곧 우리의 창조주이시며 아버지가 계신다. 그는 생명의 기초이자 근원, 진리, 도덕, 옳고 그름, 정의, 영원이시다.

•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주가 되시고자 육신으로 나타나신 한 분 참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는 완전한 하나님이시며 완전한 사람이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 그분의 진리와 사랑과 은혜를 나타내셨다. 하나님은 접근할 수 없거나 멀리 떨어져 계시지 않는다; 예수 안에 초월하신 하나님이 우리 안에 내주하시게 되었다.

•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은 구원과 그리스도인의 삶을 위한 길잡이로서 우리에게 틀림없는 진리의 근원이다. 우리는 성경에 비추어 전통과 방법을 평가한다.

• 사도적 권위(복원주의): 신약 교회는 오늘날 교회의 패러다임이다. 사도적 경험, 가르침, 실천은 우리에게 규범이다.

• 구원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이루어지며 사도행전 2:38에 따른 거듭남, 구체적으로 죄로부터의 회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받는 물침례, 방언으로 말하는 첫 표징이 따르는 성령 침례를 포함한다.

• 성령의 능력으로 거룩함의 새 생명을 추구해야 한다. 거룩함은 내적이며 외적이고, 개인적이며 사회적이다. 우리는 태도, 관계, 말, 의복, 일상 활동을 포함하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실제적인 신약의 가르침을 따라야 한다.

• 성령은 오늘날 우리 삶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성령 안에서 행하고, 성령으로 충만하며, 성령의 열매를 맺고, 성령의 은사를 행사할 수 있다. 또한 그렇게 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메시지와 일치하는 경험과 간증이 있어야 한다.


Pentecostal Herald, July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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