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 성경은 어떻게 우리에게 왔는가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다. 우리는 자녀에게, 친구에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끊임없이 말을 건다. 관계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말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를 지으시고 우리와 관계 맺기 원하시는 하나님이 침묵하실 리 없다. 지적인 존재를 창조하신 분이라면, 그 존재와 소통하고 싶어하시는 것이 당연하다. 성경은 바로 그 소통의 결과물이다—하나님이 사람에게 남기신, 정확하고 지속 가능하며 널리 전해질 수 있는 기록된 말씀이다.

성경은 스스로를 증명한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다"라는 주장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성경 저자들, 곧 선지자와 사도들은 하나님의 영이 자신들 위에 임하여 그 글을 쓰게 하셨다고 증언한다. 예수님 자신도 구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셨고, 신약을 기록할 사람들에게 그 사명을 위임하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한다면, 자연스럽게 성경의 권위도 받아들이게 된다. 성경은 또한 데살로니가전서 5:21처럼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라"며 스스로를 검증해보라고 권한다. 맹목적인 믿음이 아니라, 살아보고 확인하는 믿음을 요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숨결"—영감이란 무엇인가

디모데후서 3:16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 말한다. 원어의 뉘앙스를 살리면 "하나님이 숨을 내쉬어" 만드신 것에 가깝다. 하나님이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셨듯, 성경도 그렇게 그분의 입에서 나왔다.

여기서 중요한 구분이 있다. 영감은 원저작 과정에 해당하는 것이지, 이후의 필사나 번역 작업 자체가 영감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그리고 영감은 큰 흐름만이 아니라 단어 하나하나, 심지어 문법적 형태에까지 미친다. 동시에 성경은 철저히 인간의 손을 거친 글이기도 하다. 모세, 다윗, 바울—저마다 다른 문체와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썼다. 어휘는 저자의 것이지만, 메시지는 하나님의 것이다. 신적 저작과 인간적 저작이 함께 존재하는 책, 그것이 성경이다.

오류가 없다는 것의 의미

성경이 무오하다는 말은 "실수나 거짓이 없는 신뢰할 만한 안내서"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말을 오해하기 쉽다. 무오성은 고대 저자들에게 현대적 정밀함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다. 성경 속 인물의 거짓말이나 죄된 행동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 것, 비유와 시적 표현, 다른 문헌의 인용, 당대의 표현 방식, 서로 다른 시점에서 같은 사건을 다르게 서술하는 것—이 모두는 무오성과 상충하지 않는다. 오히려 성경을 있는 그대로, 그 시대의 언어와 문학적 관습 속에서 읽어야 그 진실성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66권이 된 이유

정경이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된 책들의 목록이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정경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이미 영감된 책들을 "발견하고 인정했다"는 점이다. 구약은 유대 전승에 따르면 에스라와 느헤미야 시대를 거쳐 주전 400년경 완성되었다. 신약의 경우, 핵심 기준은 사도적 권위였다—마태, 요한, 베드로, 바울, 야고보 등 예수의 목격자이자 초대교회 지도자였던 이들, 그리고 그들과 밀접히 동역한 마가, 누가 등의 기록이 그것이다. 서기 150년경이면 이미 신약 거의 모든 책이 초대교회 문헌 속에 인용되고 있었고, 200년경에는 모든 책에 대한 명확한 증거가 남아 있다. 결국 우리는 믿음으로 이 66권을 받아들이지만, 그 믿음은 역사적 증거와 함께 간다.

오늘 내 손 안의 성경, 믿을 수 있는가

고대 문헌 중 성경만큼 정교한 전승 과정을 거친 책은 없다. 구약은 유대 서기관들의 극도로 정밀한 필사 전통 덕분에, 그리고 사해사본의 발견으로 그 신뢰성이 다시 한번 입증되었다. 신약은 방대한 양의 사본과 원본과의 짧은 시간적 간격 덕분에 오류가 서로 상쇄되며 걸러진다. 사본마다 미세한 차이는 있지만, 그것이 교리적으로 의미 있는 차이를 만들어내지는 않는다.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온 세대에 보존하겠다고 약속하셨고(시편 100:5), 그 약속은 오늘도 유효하다.

어떤 번역본을 읽어야 할까

원어를 읽을 수 없다면 번역본이 필요하다. 번역에는 크게 세 갈래가 있다. 직역은 단어 대 단어로 옮기되 자연스러운 어순을 해치지 않는 방식이다—단어 하나하나가 영감되었다는 믿음 때문에, 깊이 있는 연구에는 이런 번역이 특히 중요하다. 역동적 동등역은 사상 대 사상, 구절 대 구절로 옮겨 현대 독자에게 원독자와 비슷한 효과를 주려는 방식이다. 그리고 의역은 의미를 풀어 설명하는 방식으로, 이해를 돕는 참고서로는 유용하지만 성경 본문 자체를 대체할 수는 없다. 깊이 있는 연구를 원한다면 직역본과 역동적 동등역본을 함께 놓고 읽는 것이 좋다.

그래서, 말씀 앞에서

히브리서 4:12은 말씀이 "살아 있고 운동력이 있다"고 선언한다. 우리가 성경을 읽고 연구하고 들을 때, 우리는 오늘도 살아 계신 주님의 음성을 듣는다. 아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읽고, 연구하고—그리고 믿고 순종하는 것, 그것이 말씀 앞에 선 우리의 온전한 응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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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David K. Bernard·Robin Johnston의 『On Being Pentecostal』 2장의 신학적 요지를 요약·해설한 것이며, 원문의 번역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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