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안에 계신 한 분 하나님
그리스도 안에 계신 한 분 하나님
성경의 첫 문장은 변론이 아니라 선언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성경은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증명하려 애쓰지 않는다. 그저 그 사실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누구신지에 대해, 사도적 신앙은 아주 분명한 자리에 선다—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그 한 분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셨다는 것이다.
창조주는 반드시 계셔야 한다
우주의 존재를 설명하는 방법은 셋뿐이다. 우주가 스스로 영원히 존재했거나, 스스로 자신을 만들어냈거나, 아니면 하나님이 창조하셨거나. 어느 쪽을 택하든 과학적 증명을 넘어서는 믿음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주의 정교한 질서, 생명의 놀라운 복잡성, 그리고 모든 인간 사회에 예외 없이 존재하는 도덕관념—이 모든 것은 이성 없는 물질의 우연보다 지혜롭고 전능하신 창조주를 훨씬 더 설득력 있게 가리킨다. 유한한 인간의 정신이 무한하고 완전하신 하나님이라는 개념을 스스로 떠올릴 수 있었을까? 오히려 하나님 자신이 그 개념을 우리 안에 심어주셨다고 보는 편이 자연스럽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은 영이시니"(요한복음 4:24). 살과 피와 뼈로 이루어진 분이 아니다. 스스로 나타내지 않으시면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분은 인격을 가지신 분이다—개별성과 이성과 성품을 지니셨다. 스스로 존재하시고, 영원하시며, 변함이 없으시다. 어디에나 계시고(편재), 모든 것을 아시며(전지), 모든 능력을 가지셨다(전능). 그리고 그분의 도덕적 성품에는 거룩함과 공의, 자비와 은혜, 사랑, 신실함이 담겨 있다. 요한일서 4:8은 단언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이토록 하나님을 사랑과 온전히 동일시하는 종교는 달리 없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신명기 6:4). 이 쉐마 고백이 사도적 신앙의 출발점이다.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나눌 수 없이 한 분이시다. 그분 외에 다른 신은 없고, 그분은 홀로 만물을 창조하셨으며, 오직 그분만이 구원자시다(이사야 44:6, 8, 24).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원한 존재 안에는 어떠한 구분도 없다. 신격 안에 복수의 인격 중심이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가리키는 모든 이름과 칭호는 동일한 한 분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아버지", "아들", "성령"은 무엇인가? 이는 세 분의 영원한 인격이 아니라,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구속 사역 안에서 나타나는 세 가지 칭호이자 역할이다. 구원 계획을 예정하시고 아들을 낳으신 분으로서 그분은 아버지시다. 죄인을 위해 죽으실 무죄한 사람으로 오신 것에서 그분은 아들이시다. 우리 안에서 일하시고 구원을 개인에게 적용하시는 분으로서 그분은 성령이시다. 비유하자면, 한 사람이 누군가에게는 부모로, 누군가에게는 자녀로, 또 누군가에게는 상담자로 존재할 수 있는 것과 같다—그 사람은 여전히 하나의 고유한 인격이다. 흥미롭게도 성경 어디에도 하나님을 "삼위일체" 혹은 "세 위격"이라 부르는 표현은 없다. 대신 성경은 그분을 자주 "거룩하신 이"라 부른다.
예수는 여호와이시다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골로새서 2:9).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자 사람이다. 그분은 삼위 중 한 위격의 성육신이 아니라, 한 분 하나님의 모든 성품과 성격과 인격이 육신 입으신 것이다. 도마가 그분을 향해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고백했을 때, 예수님은 그 고백을 그대로 받아들이셨다(요한복음 20:28-29).
하나님을 가리키는 모든 이름과 칭호는 예수께 그대로 적용된다. 그분은 구약의 여호와시다(출애굽기 3:14과 요한복음 8:58 비교). 그분은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시다(이사야 9:6).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한복음 10:30).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요한복음 14:9). 즉 예수는 아버지의 성육신이시다.
그렇다면 "아들"이라는 칭호는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것은 그리스도의 인성, 곧 성령으로 동정녀에게 잉태되신 그 인간적 정체성을 가리킨다(누가복음 1:35). "아들"은 결코 신성 그 자체를 독립적으로 가리키지 않는다. "영원하신 아들", "하나님 성자" 같은 표현은 성경적 언어가 아니다. 성령 역시 다른 인격이 아니라, 육신 대신 영으로, "너희와 함께"가 아니라 "너희 안에" 거하시는 방식으로 오신 예수님 자신이다(요한복음 14:16-18). 그러므로 우리가 예배 중에 만나는 것은 세 인격이 아니라 한 분의 영, 곧 예수의 영이다.
완전한 사람, 죄 없으신 분
동시에 예수님은 온전히 사람이셨다. 배고프시고, 목마르시고, 지치시고, 기도하시고, 시험받으시고, 죽으셨다—이 모든 것은 그분의 참된 인성 없이는 불가능하다. 동시에 귀신을 쫓으시고, 생명의 떡이 되시고, 죄를 사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셨다—이는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이 두 목록이 결코 공존할 수 없다. 그러나 성경은 이 모두를 한 분 예수 그리스도께 돌린다. 그분은 죄가 없으셨고, 아담과 하와가 타락 이전에 가졌던 것과 같은 순전한 인간 본성을 지니셨다.
나눌 수 없는 하나
신성과 인성은 예수 안에서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아버지"라는 칭호는 그분의 초월성을, "아들"이라는 칭호는 성육신을 강조할 뿐이다. 만약 아들을 신성 안의 또 다른 인격으로 규정한다면, 죽을 수 없는 영원한 신적 아들과 실제로 죽은 인간적 아들, 두 명의 아들이 생겨나는 모순에 빠진다. 예수님은 기름부음 받은 한 인간에 불과한 것도 아니고, 그저 인간의 외형을 두른 신도 아니다. 그분은 완전한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완전한 사람—본성으로, 권리로, 정체성으로 하나님이신 분이 인성 안에 온전히 거하신 것이다.
그래서, 우리 창조주가 우리 구원자시다
가장 아름다운 복음의 역설은 이것이다—우리가 죄지은 그 대상이신 창조주께서, 바로 그분이 우리를 용서하시는 분이라는 것.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대리자를 보내지 않으시고 친히 육신을 입고 오셨다. 그리고 지금도 내주하시는 성령으로서 우리와 함께하신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치유와 구원과 승리와 자유—이 있다(골로새서 2:9-10).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로 알 때, 우리는 성경적 믿음과 사도적 능력을 온전히 회복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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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David K. Bernard·Robin Johnston의 『On Being Pentecostal』 3장의 신학적 요지를 요약·해설한 것이며, 원문의 번역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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