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몸, 여러 지체

한 몸, 여러 지체 — 성령의 은사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하나의 몸이지만 지체는 여럿이고, 각 지체마다 맡은 기능이 다르다(로마서 12장, 고린도전서 12장). 그래서 우리는 하나 됨을 추구하는 동시에 다양성을 기뻐한다. 하나님은 이 몸의 각 지체에게 특별한 능력과 사역을 나누어주셨고, 우리는 저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를 찾아 최선을 다해 활용해야 한다.

세 가지 목록, 한 분 하나님

성경은 은사를 몇 가지 목록으로 소개한다. 로마서 12장은 몸을 섬기는 실제적 능력들—가르침, 권면, 나눔, 인도함, 긍휼 베풂 같은—을 나열한다. 이 중 상당수는 사람의 타고난 재능과 겹쳐 보이지만, 그것이 영적 영역에서 작동하게 하시는 분은 언제나 하나님이시다.

에베소서 4장은 조금 다른 성격의 목록을 준다—사도, 선지자, 전도자, 목사, 교사라는 직분들이다. 이들은 교회 전체를 온전케 하여, 모든 성도가 저마다의 자리에서 섬길 수 있도록 세워주는 역할을 한다.

아홉 가지 표적적 은사

고린도전서 12장은 세 번째 목록을 제시한다. 성령의 직접적 개입으로 나타나는 초자연적 은사들이다.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특정한 필요를 위해 주시는 통찰), 특별한 믿음, 병 고치는 은사, 능력 행함, 예언(성령이 즉석에서 주시는 메시지), 영들 분별함, 각종 방언, 그리고 방언 통역—이 아홉 가지다. 이 은사들은 교회 안에 하나님이 지금도 일하고 계심을 보여주는 표적이며, 동시에 교회의 사명을 힘 있게 감당하도록 돕는 도구다.

은사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몇 가지 원리가 이 은사들의 사용을 이끈다.

먼저, 은사의 근원은 오직 성령이시다. 그리고 그 은사가 누구에게, 언제 나타날지는 성령의 뜻에 달려 있다—사람이 마음대로 켜고 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은사들을 사모하고, 성령의 인도에 민감하도록 스스로를 준비시켜야 한다. 하나님은 이 은사들이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 교회 안에서 계속 나타나기를 원하신다.

은사가 겨냥하는 궁극적 목적은 언제나 주님을 높이는 것이다. 만약 어떤 모임이나 사역이 치유나 기적 자체에만 집중하고 구원의 메시지를 소홀히 한다면, 그것은 은사를 주신 본래 목적에서 벗어난 것이다. 또한 은사는 특별한 필요가 있을 때 나타나는 것이지, 항상 끊임없이 작동하는 것이 아니다. 사도행전과 복음서에서도 수많은 사람이 치유받았지만, 결국 초대교회의 모든 성도가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했다.

무엇보다, 은사를 행사하는 사람은 스스로를 통제할 책임이 있다(고린도전서 14:32). 모든 것은 질서 있게, 사랑으로 행해져야 한다. 사랑 없이 행해지는 은사는 아무 가치가 없다(고린도전서 13장). 그리고 누군가에게 은사가 나타났다는 사실 자체가 그 사람의 영적 성숙을 보증하지는 않는다. 우리의 시선은 은사를 받은 사람이 아니라, 그 은사를 주신 분께 향해야 한다.

치유—보이는 은혜

치유는 성경에서 유독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은사다. 아마도 그것이 가장 눈에 띄고, 가장 절박한 인간의 필요에 직접 응답하며, 전도에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스도의 속죄에는 육체의 치유도 포함되어 있다(이사야 53:4-5). 그러나 치유가 항상 즉각적이거나 자동적인 것은 아니다. 신약의 몇몇 성도들도 한동안 병으로 고생했다. 어떤 치유는 즉시, 어떤 치유는 점진적으로 임한다. 병이 낫지 않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고, 우리가 그 이유를 항상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방식이든—즉각적 치유든, 의학적 도움을 통한 회복이든, 혹은 고난 중의 은혜든—하나님이 응답하신다는 확신을 갖고 믿음으로 기도하고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발언의 은사—질서 있게

예언과 방언, 그리고 방언 통역은 공개적으로 나타나는 은사이기에 오해와 오용의 여지도 크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4장은 이 은사들의 적절한 사용법을 구체적으로 다룬다. 사람은 완전하지 않기에, 때로 자신의 생각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예언을 들을 때 회중은 그것을 스스로 분별해야 한다. 공적 모임에서 방언의 메시지가 주어졌다면 통역을 구해야 하며, 통역이 없다면 그 발언자는 조용히 개인적으로 기도하는 편이 낫다.

그래서, 은사를 사모하라

우리는 교회 전체에 유익이 되는 모든 성령의 은사를 사모해야 하며, 어떤 은사도 금하거나 억누르지 말아야 한다. 동시에 모든 것을 품위 있고 질서 있게 행함으로,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고 그분의 몸을 세우는 궁극적 목적을 이루어야 한다. 특별한 필요가 있을 때마다,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일하실 수 있다는 단순한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그것이 성령의 은사가 교회를 강하게 세우고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강력한 도구가 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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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David K. Bernard·Robin Johnston의 『On Being Pentecostal』 7장의 신학적 요지를 요약·해설한 것이며, 원문의 번역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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