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히 새로운 삶
완전히 새로운 삶 — 회개, 침례, 그리고 성령의 충만함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오신 이유는 단 하나, 십자가로 가시기 위해서였다. 성육신은 속죄를 위한 것이었다. 예수님은 죽으시고, 장사되시고, 다시 사심으로써 우리를 죄의 권세와 그 결과에서 건져내시고, 완전히 새로운 삶을 주셨다.
모든 사람에게 구주가 필요하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죄의 삯은 사망이요"(로마서 3:23, 6:23). 거룩하신 하나님은 죄와 함께하실 수 없다. 그 분리가 곧 죽음이며, 생명의 근원에서 끊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 유일하게 죄 없으신 분이 우리 대신 죽으심으로 그 형벌을 대신 짊어지셨다. 그래서 성경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대속, 구속, 화목제물, 화해라는 언어로 설명한다. 그리고 그분은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심으로 죽음을 이기셨다—그 부활 때문에 우리도 새 생명과 미래의 부활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다.
은혜로, 믿음을 통하여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에베소서 2:8-9). 은혜란 구원이 선물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노력해서 얻는 것도, 자격을 갖추어 받는 것도 아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받는다.
그런데 여기서 "믿는다"는 것은 단순한 지적 동의나 말뿐인 고백 이상이다. 믿음은 신뢰와 헌신과 실천을 포함한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로 죽은 것이다(야고보서 2:14-26). 그러므로 참된 믿음과 순종은 서로 떼어낼 수 없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그분의 말씀을 믿는 것이고, 그분의 말씀을 믿는다는 것은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포함한다.
그날, 예루살렘에서
복음이란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라는 좋은 소식이다(고린도전서 15:1-4). 그렇다면 우리는 이 복음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그 답은 사도행전 2장에 있다.
오순절, 곧 신약 교회의 생일이 되는 그날, 예루살렘에 모여 있던 약 120명의 제자들이 갑자기 성령으로 충만해져 다른 언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무리가 모여들었고, 베드로가 일어나 첫 복음 설교를 전했다. 그는 이 현상이 선지자 요엘이 예언했던 성령 부으심의 성취임을 설명하며, 십자가에 못 박히셨던 그 예수가 하나님이 다시 살리신 주와 그리스도이심을 선포했다.
말씀에 찔린 무리가 외쳤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사도행전 2:37). 베드로의 답은 명확하고 구체적이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사도행전 2:38). 이것이 복음에 응답하는 방식이며, 예수를 주와 구주로 믿는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보여주는 답이다.
이것은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과도 정확히 맞닿는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한복음 3:5). 물로 나는 것은 물침례이고, 성령으로 나는 것은 성령침례다. 회개하고 물침례를 받을 때 우리는 옛 죄의 삶을 장사 지내고, 성령을 받을 때 하나님의 능력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그렇게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고린도후서 5:17).
회개란 무엇인가
회개는 죄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것이다(사도행전 26:18-20). 여기에는 지성의 변화, 감정의 변화, 그리고 의지의 결단이 함께 있다.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께 고백하고, 그 죄에 대해 진심으로 슬퍼하고, 그것을 버리기로 결단하는 것—이 모든 과정이 회개다. 가능하다면 지난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의지도 뒤따른다. 회개는 믿음의 첫걸음이며, 구원에 반드시 필요하다.
예수의 이름으로 받는 침례
물침례는 구원의 일부다(베드로전서 3:21). 성경이 말하는 침례의 방식은 잠기는 것—곧 침례(浸禮)다. 물속에 완전히 잠겼다가 나오는 이 행위만이 침례가 상징하는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됨"이라는 의미를 온전히 담아낼 수 있다(로마서 6:4).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회개가 전제되어야 하므로, 유아 침례는 성경적 근거가 없다.
여기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침례를 베푸는 이름이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신약 교회의 침례 사례들—2:38, 8:16, 10:48, 19:5, 22:16—은 모두 예외 없이 예수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었다고 명시한다. 마태복음 28:19의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라는 대위임령의 표현은 이 예수 이름 침례 공식에 대한 또 다른 서술로 이해할 수 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라는 구속사역의 모든 나타나심을 아우르는 그 단일한 이름이 바로 예수이기 때문이다(사도행전 4:12; 빌립보서 2:9-11). 초대 사도들은 이 명령을 문자 그대로 실천했고, 그것이 오늘 우리가 따라야 할 본이다.
성령의 침례—방언이라는 표적
성령침례 역시 신약 구원의 필수 요소다(요한복음 3:5; 로마서 8:1-16). 사도행전은 이 경험을 "침례를 받다", "충만해지다", "임하다", "부어지다" 등 다양한 언어로 묘사하는데, 공통점은 이것이 분명하고 실제적이며 압도적인 체험이라는 것이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다섯 차례의 성령 받음 사건 중 세 번은 방언이 성령을 받는 최초의 증거로 명시적으로 나타난다—오순절 날, 가이사랴의 고넬료 집에서, 그리고 에베소의 제자들에게서. 나머지 두 사례(사마리아, 바울)에서도 방언은 암시적으로 나타난다.
방언은 배운 적 없는 언어로 성령이 주시는 대로 말하는 것이다. 이는 단회적 표적일 뿐 아니라, 믿는 자의 삶을 지속적으로 세워가는 은사이기도 하다. 성령침례는 사도 시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하나님이 부르시는 모든 사람에게 약속된 것이다(사도행전 2:39).
그래서, 완전히 새로운 삶
우리의 믿음과 실천은 성경의 온전한 패턴을 따라야 한다. 복음에 반응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우리는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성령의 선물을 받는다. 이것이 사도행전 2:38이 담고 있는, 신약이 말하는 구원에 대한 온전한 응답이다. 우리는 아직 이 전체 경험에 이르지 못한 이들을 배척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도행전 18장의 아볼로나 19장의 에베소 제자들처럼, 더 깊은 진리로 나아가도록 함께 이끌어야 할 사람들이다. 결국 각 사람은 자신의 믿음의 응답에 대해 하나님 앞에 책임을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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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David K. Bernard·Robin Johnston의 『On Being Pentecostal』 4장의 신학적 요지를 요약·해설한 것이며, 원문의 번역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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